한반도에 ‘쥬라기 공원’ 있었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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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 백악기 공룡 생태 이야기식으로 전달해 ‘재미’

 

▲ 한반도 공룡 숲 하늘 위로 익룡인 해남이크누스가 10m에 달하는 날개를 펼친 채 날아가고 있다.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에 한반도라고 공룡이 없었겠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반도가 다양한 종류의 공룡이 공존하는 낙원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해남이크누스(Haenamichnus), 부경고사우루스(Pukyongosaurus) 같은 한국 학명을 지닌 공룡들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한반도 공룡의 세계를 재현한 다큐멘터리가 선을 보인다. <한반도의 공룡>이 그것이다. <한반도의 공룡>은 8천만년 전 백악기 시대에 한반도를 누비던 공룡들의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3D 영상으로 재현해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제작된 공룡 다큐멘터리로 순수 국내 CG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한반도의 공룡>은 공룡의 소개와 전문가의 해설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구성을 탈피하고 ‘점박이’라는 공룡 숲의 제왕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의 일생을 통해 백악기 공룡의 생태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달한다. 점박이의 어린 시절, 어미로부터의 독립과 맹수로의 성장, 제왕으로서의 삶을 마치기까지의 과정을 한 편의 성장 영화처럼 풀어낸다. 이런 시도는 공룡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한반도의 공룡>을 연출한 EBS 한상호 PD는 “다큐멘터리도 재미가 없어서는 안 된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과 이야기가 가미된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해남이크누스 같은 한국 공룡 이름도 나와

<한반도의 공룡> 제작팀은 타르보사우루스를 비롯해 벨로키랍토르(Velocyraptor), 해남이크누스, 부경고사우루스, 테리지노사우루스(Therizinosaurus), 친타오사우루스(Tsintaosaurus), 프로토케라톱스(Proto-ceratops),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 등 총 8종의 공룡을 재현해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닮은 타르보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등 영화 <쥬라기 공원>, BBC의 <공룡대탐험(Walking with dinosaurs)> 등으로 익숙한 공룡도 있지만 해남이크누스, 부경고사우루스, 친타오사우루스 등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재현되었다. 전남대 공룡연구센터의 허민 소장이 참여해 고증에도 충실했다. 허소장은 “기존에 나온 논문과 과학적 검증을 우선했다. 해외의 동료 학자들에게 자문도 구했다. 공룡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소리를 재현하는 데도 뼈의 구조, 공명 현상 등을 고려해서 구현했다”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공룡>은 국내 CG 기술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CG는 올리브스튜디오가 담당했다. 영화 <유령>과 방송용 3D 애니메이션 <코코몽>을 연출한 민병천 감독이 총지휘를 맡았다. 민감독은 “순수 제작비로 16억원 정도가 들어갔다. 공룡을 구현하려면 평균적으로 70억원이 들어간다. 그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지만 결과물에는 자신이 있다. Mipcom에서 만난 관계자에게 50억원이 들었다고 말했더니 너무 적게 들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룡은 디지털그래픽 기술의 척도이다. 세계에서도 할리우드 외에 <반지의 제왕>을 만든 뉴질랜드의 WETA 스튜디오와 우리나라 정도만이 공룡을 이 정도로 구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CG 기술이 탁월하다는 얘기이다.

민감독은 1년이라는 제작 기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공룡이 지면에 발을 디딜 때 어색한 부분이 있다. 웨이트 시스템 때문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간과 비용이 더 충분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노하우를 쌓았고 앞으로의 공룡 프로젝트를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EBS는 <한반도의 공룡>을 방송하기 전에 극장 시사회를 가졌다. EBS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EBS측은 “공룡은 세계인이 관심을 갖는 소재이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도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공룡 소재 영화 등 영상 제작물의 세계 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한상호 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처음 영화를 만들었던 뤼미에르 형제와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열어준 <북극의 나누크>가 보여준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것을 던져주는 다큐멘터리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극장 시사회 가지며 자신감 보여

EBS의 설명처럼 공룡이라는 소재는 문화적 할인율이 낮아 세계로 통할 수 있다. 이 사실은 BBC의 <공룡대탐험>의 성공으로 증명되었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99년 영국에서 5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첫 방송된 이후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제작 기간 3년에 1백2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형 다큐멘터리이다. 이후 <워킹 위드 다이노서-아레나 스텍타큘러>라는 이름의 공연으로도 만들어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공룡대탐험>의 성공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의 ‘원 소스 멀티 유즈’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대형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한반도의 공룡>을 비롯해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 3부작 <북극의 눈물>, KBS의 6부작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등이 방영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해외 시장 진출까지 염두에 둔 작품들이다.

이같은 현상은 KBS <차마고도>의 성공에 기인한다. <차마고도>는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한국방송대상, AIBD 월드 우수상, NHK 주관 일본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에미상에도 후보로 올라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전세계 17개국에 판매되고 40여 개 나라에서 방영되었다. 지난 8월에는 극장판이 제작 상영되기도 했으며, 지난해 11월 출시된 DVD는 1만 세트가 넘게 판매되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08년 상반기 방송 프로그램 수출 실적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수출은 전체의 1.4%이다.  <차마고도>가 한국 다큐멘터리가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으나 드라마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다채널 시대에 새로운 킬러콘텐츠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HDTV의 보급으로 더 좋은 화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도 뛰어난 영상미를 갖춘 대형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EBS 김유열 편성기획팀장은 “멀티 플랫폼 시대에는 TV, 인터넷, 스크린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 형태를 통해 반복적으로 사용 가능한 콘텐츠가 요구된다. 다큐멘터리도 시의성에서 자유로운 참신한 아이템에 뛰어난 영상미를 가지 대형 기획물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 다큐멘터리 특별 시사회가 열린 극장을 찾은 관객들. ⓒ시사저널 임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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