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기업의 공통 유전자
  • 박건영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 ()
  • 승인 2008.11.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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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도 지속 성장하는 국내 기업 많아…재무 안전?확고한 브랜드 유지 등이 닮은꼴

▲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한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는 탄탄한 기업들은 많을 것이다. 사진은 불황을 별로 타지 않는 제품들(왼쪽,가운데)과 화장품 유통 전문점(오른쪽). ⓒ시사저널 임영무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글로벌 경제 성장은 모두 신기루였던 것일까. 지난 수년간의 이머징마켓 성공 스토리는 모두 허상이었고, ‘혁명’이라고 칭송받던 여러 금융공학 및 투자 기법들은 모두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것일까.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바로 답을 제시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당장 분명한 것은 개별 경제 주체들의 위험 관리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하는 점이다.

IMF가 조만간 우리나라의 내년도 성장률을 2%대로 낮출 것이라는 전망 역시 결코 반갑지는 않은 소식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여전히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고, 그 말은 여전히 성장을 지속하는 기업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꾸준한 이익을 기록하는 기업들은 장차 경기가 회복 국면에 돌입하게 될 때에 오히려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10년 전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며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전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미국의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 국면에서 사실 어떠한 업종도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있기는 어렵다. 이러한 불경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찾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은, 불경기에 진입하면서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기업들의 특징을 우선 파악해보는 것이다.

불황에 급격히 흔들리는 기업들의 특징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던 대다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대규모 차입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는 점이다. 물론 신규 성장 동력이나 신시장 개척,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M&A의 순기능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M&A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수 기업이 얼마나 충실히 리스크 관리를 수행했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회사의 역량에 맞는 인수를 추진했는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황에서도 충분한 잉여 현금 흐름이 창출될 수 있는지, 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한 경우 향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약정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는지 등 어찌보면 당연하고 기초적인 원칙들의 준수 여부가 현재 시장에서의 가치를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차트는 최근 워크아웃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A그룹의 해운 자회사와 조선 자회사의 올해 7월 이후 주가 추이인데, 특히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신용 경색에 대한 우려가 급증한 9월 전후로 시장 대비 하락률이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그룹 이외에도 주식시장에서 위험하게 바라보는 몇몇 그룹들의 경우,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더라도 당분간 시장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실물 경제 침체와 함께 시장에서 우려하는 기업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원자재 관련 기업이라는 점이다. 2003년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이머징 국가들의 성장 스토리와 함께 원유를 비롯한 상품 가격의 급등이 이어졌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결과적으로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며 금융시장 불안정에 큰 요인이 되었으나, 어찌되었든 그동안 원자재 관련 기업들의 이익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시기에는 지속적인 제품 가격 인상과 함께 낮은 가격에 확보해놓은 재고 효과가 결합되며 영업이익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정유 업종뿐만 아니라 철강, 화학 등 소재 산업 전반적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구 경제 산업의 부활로 인해 시작된 글로벌 설비 투자 증가는 조선, 해운, 건설 등 산업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지속적으로 원재료 가격 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오던 여러 기업들은 이제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함께 더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다가 글로벌 수요 감소까지 맞물리면서, 오히려 제품 가격 인하에 나서야 하는 형편이다. 결론적으로 앞서 언급한 과도한 레버리지 기업뿐만 아니라, 원자재 및 글로벌 설비 투자 관련 기업들이 당분간 주식시장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업들이 불황기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될지는 반대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꼽히는 항목은 무엇보다 재무 안정성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의 글로벌 신용 경색 국면에서는 일정한 차입을 통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극대화한다는 기존의 재무 이론보다는, 무조건 차입금이 없는 현금 경영 기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불황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들은 또한 그동안 원자재 가격 상승의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영향이 작은 업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매출액 대비 원자재 부담은 낮으면서 확고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소비재, 음식료, 인터넷 업종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업종의 대표 기업들은 불황기에 개인 소비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그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투자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R&D 투자로 내부 역량도 구축

또, 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의 유전자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축적한 내부 역량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최고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중 하나인 노키아를 들 수 있다. 원래 고무와 제지 업종을 영위하던 노키아의 경우, 1980년대 후반 핀란드가 경제 위기를 겪으며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이었던 휴대전화의 대중화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 투자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반도체 신화를 이루어낸 S전자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시황 산업인 화학 업종에 속해있으면서도 꾸준한 신기술 개발을 통해 2차 전지 등 신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B회사 등의 예를 찾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대공황만큼이나 어렵다는 이번 불황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업의 유전자는 첫째, 우수한 재무 안정성, 둘째, 내수 시장에서의 확고한 브랜드,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R&D 투자를 통해 구축한 내부 역량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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