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노사모 ‘We 세대’의 위력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12.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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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미만 젊은 층 적극 투표로 오바마 당선…10년 후엔 30대 대통령 등장 가능성도

▲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

버락 오바마라는 사상 초유의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낸 미국인들은 아직도 그 진정한 배경이 무엇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인종 차별을 당했던 흑인들의 한풀이와 함께 ‘또 다른 인종주의가 등장했다’라는 비아냥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 백인 사회가 피부 색깔에 둔감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 위기를 속수무책 방치했던 부시 행정부에 대한 거부감이나 늙은 후보보다 젊은 후보에 대한 선호 현상 등은 오바마의 당선 배경으로 흔하게 지적되어왔다. 

최근에는 ‘우리 세대(Generation We)’를 오바마 당선의 원동력으로 꼽는 견해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줄여서 ‘Gen We’로 불리는 ‘우리 세대’는 미국 정치에서 핵심 유권자층으로 떠오르면서 선거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오바마를 지지했고, 이로 인해 2008년 대통령 선거는 이미 투표 전에 승부가 끝났다고 한다. Gen We는 기술 혁신과 변화를 지향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층으로, 이념적으로 오바마와 호흡을 같이 하는 세대이다.

핵심 유권자층으로 떠오르며 선거 혁명 주도

Gen We는 지난해 3월 <내셔널 저널>에 자세히 소개된 이후 2개월 전인 올해 10월 에릭 그린버그의 저서 <제네레이션 위: 밀레니엄 청년들이 어떻게 미국 사회를 장악하고 세계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가 출간되면서 미국 사회의 세대 변화를 설명하는 새로운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Gen We는 베이비부머(Baby Boomer, 1946~64년)와 X세대(Generation X, 1965~77년)를 잇는 1978~2000년 사이에 출생한 미국인들을 일컫는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섹스와 마약에 개방적이고 로큰롤에 심취한 반면, X세대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드러냈다. Gen We는 이들과는 달리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긍정적인 미래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그린버그의 ‘우리’(We)는 쟝 투윈지의 2006년 저서 <제네레이션 미(Generation Me)>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투윈지가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젊은이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그린버그는 상반되는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그린버그는 Gen We는 디지털 키즈들로 현실과 가상 공간 모두에서 네트워크에 들어가 개인주의보다 공동체 의식, 즉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강하며 개인의 영달보다는 사회의 집단적 발전을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그린버그는 그의 저서 <제네레이션 위>에서 15가지 특성을 들어 그들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번 미국 선거와 관련해 표출된 것은 3가지이다. 우선은 수적으로 베이비부머보다 더 많아 선거에서 가장 높은 유권자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는 현재 7천8백만명에 이르고 있으나, Gen We는 9천5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기성 세대에서 주류를 형성해가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Gen We는 훨씬 많은 인구로 이들을 떠받들며 미국 사회의 대체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Gen We 세대는 2015년이 되면 전체 미국 인구의 3분의 1을 넘기면서 미국 정치와 사회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그린버그는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이들이 30대가 되는 시점에는 오바마보다 더 젊은 30대 대통령의 등장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빌 클린턴이 1993년 47세에 대통령이 된 것 역시 당시 베이비부머가 미국 사회의 주류로 올라서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Gen We는 이전 세대보다 정치 참여도가 높다. 올해 초 3개 주요 주 예비선거에서 Gen We의 투표 참가율은 다른 세대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아이오와 주에서는 지난 2004년에 비해 4.3배, 뉴햄프셔 주에서는 1.9배, 플로리다 주에서는 3.5배의 급격한 상승 추세를 보였다. 더 많은 인구 규모와 높은 정치 참여율은 이들을 각종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변수로 키워놓았다.

e메일 등 디지털 선거운동이 오바마에 천군만마 역할

▲ 후보 당시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당선인이 한 유권자와 악수하고 있다. ⓒEPA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Gen We의 투표자 수는 2천3백만명에 달해 지난 2004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으며 이들 중 66%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Gen We는 정치적으로 개혁지향적이다. 이들은 정치나 이념, 당파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지만 성향은 변화를 지향한다. 특히 작금의 경제 위기로 자신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경제 개혁은 당면한 과제이다. 따라서 변화를 선거 모토로 내세웠던 오바마에 이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자연스런 결과이다. Gen We는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로 인터넷을 통한 세대 내 공감대 형성이 쉽고 광범위해 빠르게 새로운 의식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다. 이들이 e메일, 문자 메시지, 유튜브 등을 이용해 변화를 촉구하는 디지털 선거운동을 벌인 것은 오바마에게 천군만마의 역할을 했다. 그린버그는 이번 오바마의 승리를 두고 ‘위 제네레이션 혁명의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오바마 역시 당선이 확정된 후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한 연설에서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로부터 힘을 얻었다”라고 인정했다.

 Gen We 혁명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위 선언(The We Declaration)’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A4용지 8매 분량의 이 선언은 정치·사회·문화·경제 그리고 환경 문제에서 미국이 지향해야 할 갖가지 항목을 열거하고 있다. 미국의 각종 문제를 지적한 이 선언은 현재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몰락하고 파괴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제반 문제를 해결해 아메리칸 드림을 회복시켜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Gen We의 장점은 미래에 대한 긍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Gen We 혁명은 이미 한국에서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실험한 바 있다. 디지털 강국에서 나타난 선구적인 실험이었다. 그러나 어설픈 실험으로 끝났다. 농익지 않은 이념과 세련되지 못한 추진 때문이었다.

오바마를 통한 Gen We의 실험은 아직은 두고 볼 일이지만 한국에 비해 사회적 기반이 훨씬 충실하다는 점에서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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