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 선정이 기가 막혀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증시안정펀드 배분, 2차 설명회 싸고 구설…“결과에 승복할 수 있게 하라”

ⓒ그림 최익견

연기금 운용과 관련된 잡음은 심심찮게 터져나온다. 최근에도 공무원연금 운용과 증권공동펀드 운용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돈과 관련된 문제이고 관련 업계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라 더욱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3일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장에서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위탁 운용사 선정과 관련한 국회의원의 질의가 이어졌다. 자격 요건이 되지 않는 자문사에게 위탁을 맡겨 손실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자금을 회수했다는 지적이었다.

선정 당시에는 규정상 문제가 없었고 그 이후에 선정 기준을 변경해서 그러한 회사들에게 자금이 배정되지 않도록 했다는 해명에 따라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연기금의 운용사 선정과 관련해서 항상 생기는 잡음들 중 하나였다. 업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지금은 운용사 선정 과정이 상당히 투명해져서 ‘과거와 같이 기금 운용 담당자가 수익률 팔아 술 얻어먹는’ 관행은 사라졌다지만, 최종 심사위원들의 적절성이나 요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성과 객관성만을 강조해서 실제 자산 운용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거나 업계에 지나치게 비판적인 일부 심사위원들이 심사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위탁운용사 선정은 계량적인 지표를 사용한 1차 심사를 통해 2배수나 3배수에 달하는 후보사를 선정하고, 이들 회사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한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통해 최종 선정하는 방식을 따른다. 운용업계에서는 여기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의, 업계에 대한 이해 수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대다수 심사 교수들이 실제 운용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운용사를 선정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결국 연기금의 수익률 제고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정성뿐만 아니라 실제 자산 운용 업무에 정통한 사람들로 심사위원들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들 수준에 의문 나타내기도

최근 운용사 선정을 끝낸 증시안정펀드도 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뒷말을 남겼다. 올해 들어 외국인이 35조원어치를 주식시장에서 팔아치우는 동안 국내에는 마땅한 수요 기반이 없었다.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연기금이 조금씩 주식을 사들이기는 했지만, 바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매수 우위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민연금의 주식 비중이 외압에 의해 늘어난다는 비판도 있고, 공무원연금도 주식으로 2천억원 이상을 날렸다고 질책을 받는 와중에 연기금이 지속적으로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투신권에서도 주식이 싸졌다는 데에는 동의를 하지만, 신규 자금 유입이 줄어들고 환매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에 매수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입장에서 선뜻 주식에 손이 나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안정적으로 주식에만 운용할 수 있는 신규 자금이 투입된다는 사실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자금을 받아내려고 35개 자산운용사가 전면전에 나섰다.

각 운용사가 다투어 뛰어든 만큼 선정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후유증이 일고 있다.

“나눠먹기가 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이렇게 하려면 왜 제안을 받나?” 증시안정공동펀드의 위탁운용사 선정 결과가 발표된 지난 11월18일 여의도에서 만난 한 자산운용사 임원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증권 유관 기관 공동 펀드라고도 불리는 이 자금은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등 4개 증권 유관 기관들이 5천1백50억원의 자금을 만들어 증시 안정을 위해 투자하기로 한 기금을 말한다. 증권 공동 펀드는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로 설정되어 상장 주식에 80% 이상 투자되고, 만기는 3년으로 자산 운용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도 환매가 제한된다.

이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35개 자산운용사가 달려들었지만 선발된 회사는 교보악사자산운용, 동양투신운용,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삼성투신운용, 유리자산운용, 푸르덴셜자산운용, 하나UBS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 KTB자산운용 등 총 10개 사였다.

경쟁을 통해 운용사 선정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탈락한 운용사마다 불만이 많았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 ㄱ씨는 “심사위원을 딱 보는 순간 ‘아, 우리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심사가 아니라, 우리가 국감에 불려나간 증인인 줄 알았다.” 그의 한탄이 이어진다. “우리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분 나쁜 게 아니고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심사위원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중립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그게 아니었다.” 흥분해 앞뒤 없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결과 석연치 않아 탈락사들 ‘분통’

증권 유관 기관들이 침체된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5천1백50억원의 기금을 모은 뒤 증권업협회에 운용 사무국을 두고 자산운용사들에게 제안서를 요청했다. 1차 심사에서 운용 자산 규모나 기존의 펀드 운용 성과, 전문 인력, 재무 안정성 등 정량적인 항목으로 2배수인 20개 운용사를 선정하고, 그 운용사를 대상으로 2차 설명회를 통해 최종적으로 10개 사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주 일반적인 절차였다. 증권업협회에서도 선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2차 설명회에 참여한 한 심사위원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자산운용사와 별 관계가 없는 대학 교수나 연구기관에 있는 전문가였는데, 그중 한 명이 심사대상 운용사의 모회사인 증권사의 임원이었다.

이 분이 조용히 중립적인 자세만 지켰어도 별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다른 운용사들이 설명을 하는 내내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국정감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질문만 해놓고 답을 하려고 하면 잘라버리고, 심지어 어느 운용사에게는 회사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담당자를 황당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 심사위원의 종횡무진 활약의 결과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해당 심사위원의 자회사는 무난히 10개 사에 포함되었다. “그 회사가 뽑힐 수준이면 지원한 35개 사 중에 20개 사는 되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번 선정에 포함된 또 다른 운용사 담당자 ㄴ씨도 그 회사가 선정된 것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ㄴ씨는 “우리 회사는 선정되었지만 이 결과가 별로 개운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경쟁 관계이니까 누구는 뽑히고 누구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이 아쉽다는 것이다.

모든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야 항상 제기되는 것이고, 객관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주관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지만,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게임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룰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