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칫돈 어디로 흘렀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8: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짜배기 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은 구명 로비용?

▲ ㈜휴켐스는 연간 매출액 3천억원에, 한 해 최고 순이익이 2백억원에 달하는 우량 기업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휴켐스 저가 매각’ 의혹은 당초 검찰의 일차적인 수사 대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된 데다 누가 보더라도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구석이 많았다. 우선, 농협 내부에서부터 상당한 의혹이 떠돌았다. 이사회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이 워낙 강경하게 밀어붙인 사안이어서 반대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켐스 저가 매각 의혹의 핵심은 이렇다. ㈜휴켐스는 2002년 9월께 남해화학에서 분리 독립된 농협의 자회사였다. 농협이 전체 지분의 60%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연간 매출액 3천억원 상당으로 한 해 약 100~2백억원 정도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배기 회사였다. 즉, 매각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회사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농협은 이 회사의 매각 방침을 공공연히 흘렸고, 급기야 2006년 3월 매각을 서둘렀다. 정 전 회장은 왜 이 회사의 매각을 서둘렀을까.

농협 내부에서도 매각에 의혹 제기

정 전 회장은 2005년 12월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같은 시기에 세종증권을 인수하면서 그 대가로 10억원을 받았고, 2006년 2월께에 다시 40억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리고 불과 3개월 후인 2006년 5월 그는 현대자동차 뇌물 수수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농협이 휴켐스의 매각을 서두른 것은 그 사이인 2006년 3월 말께였다.

휴켐스 문제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던 농협 주변의 한 관계자는 “당시 3월29일 휴켐스를 매각해야 한다는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시켜 통과시켰고, 그 이틀 후인 31일 바로 매각 공고를 발표했다. 그렇게 서둘렀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살펴보니 뇌물 수수 혐의가 포착된 것을 알고 서둘러 구명 로비를 하려 한 것이라는 정황이 나온다”라고 밝혔다.

실제 2006년 3월24일 소위 ‘김재록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26일 현대자동차 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당시 검찰은 현대차에 대해 상당히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농협이 양재동 사옥을 현대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처음 제시액보다 7백억원이나 싼 헐값으로 매각한 과정이 의혹으로 불거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후 휴켐스 매각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전개되었다. 매각 공고가 나가자마자 4월 초 총 14개 업체가 인수의향서를 농협에 제출했고, 농협은 4월17일 태광실업을 포함한 7개 업체를 예비실사 대상자로 선정 발표했다. 정 전 회장이 전격 체포된 이틀 후인 5월12일 농협은 태광실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방침에서부터 특정 업체가 선정되기까지 불과 한 달 보름 남짓에 불과한 초스피드 처리였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공개 입찰에 참여한 4개 업체 중 태광실업을 제외한 3개 업체는 사실상 들러리에 불과하다”라는 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휴켐스 문제를 제보했던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정 전 회장측은 구명 로비를 위해 박연차 회장측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추후 매각 금액을 조정하는 조건으로 2006년 5월10일께 공개 경쟁 입찰 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5월10일 공개 경쟁 입찰에 참가한 4개 업체 중 태광실업이 1천7백77억원을 적어내 가장 높은 가격으로 선정되었다. 2위를 한 경남기업은 1천5백25억원이었다. 그런데 실제 6월30일 매각할 때 가격은 1천4백55억원이었다. 실제 적어낸 가격보다 3백22억원이나 적게 받고 매각한 것이다. 이 가격이라면 경남기업이 적어 낸 가격보다 적은 셈이다. 누가 봐도 특혜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누가 봐도 특혜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뉴시스

현재 검찰은 정 전 회장과 박회장 간의 돈의 흐름을 면밀히 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와중에서 박회장의 전매 특허라 할 수 있는 시세 차익 의혹이 여기서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위에서 밝힌 농협의 제보자는 “박회장은 농협이 태광실업에 휴켐스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기도 전인 2006년 5월18일에 본인 명의로 34만주를 사들였고, 7월19일에는 본인과 본인 가족 명의로 70여 만주를 사들였다. 모두 100만주가 넘고, 당시 사들인 주당 가격은 7천~8천원대였다. 태광실업이 농협에 주식 양수도 및 대금을 정산한 시점은 7월28일이었다. 이후 휴켐스 주가는 상승했고, 이를 통해 박회장은 약 70억원 상당의 시세 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농협 비리를 수사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로비 혹은 대가성으로 오고 간 검은 돈의 흐름이다. 전체적인 상황 조사를 모두 끝낸 상태에서 돈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다음에 관련자를 소환하는 식으로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세종증권 인수 의혹 관련한 검은 돈의 흐름이 먼저 포착되었지만, 세종증권 수사에서 드러난 돈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휴켐스 건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 검찰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박회장이 세종증권 시세 차익 금액 가운데 일부를 휴켐스 인수 자금으로 썼다고 실토한 것도 그런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휴켐스의 수사 결과에 따라 정 전 회장과 농협의 비자금의 흐름이 드러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