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라이벌 껴안기 묘수일까, 악수일까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12.0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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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힐러리 국무장관 지명 두고 ‘설왕설래’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에서 두 번째)이 기자회견장에서 새로운 외교안보팀을 소개하고 있다. ⓒAP연합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근황을 전하는 최근 사진에서 김위원장이 방한복 차림에 장갑 낀 손으로 허공에 대고 박수를 치는 장면이 있었다. 시기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행정부 국무장관에 힐러리 클린턴을 내정한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쯤 되는 것 같다.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을 환영하는 박수였을까? 우연치고는 사진 자체가 범상치 않게 받아들여진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주 외교안보팀을 발표했다. 행정부 내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다음으로 서열 3위인 국무장관은 예비선거 과정에서 ‘상대하기 힘들었던 경쟁자’였던 클린턴에게 돌아갔다.

오바마는 안보팀 인선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의 서두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과 중동 여러 나라와의 외교 문제를 언급하는 도중 북한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 북한 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외교적 노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그러나 현직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유임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대상으로 지적한 나라 가운데 북한은 빼놓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는 아주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법하다.
오바마는 미국 군사력은 지혜 및 외교력과 결합될 것이라면서 수전 라이스 주유엔 미국대사의 위상을 각료 수준으로 끌어올렸음을 강조했다. 라이스 대사는 이날 외교안보팀 인선 발표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 제임스 존스와 함께 각료급 대우를 받았다. 

“미국의 이익을 추진할 가장 능력 있는 인물” 치켜세워

캘리포니아 주의 유력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가 밝힌 이번 안보팀 인선과 발표 형태 및 운영 방향으로 볼 때 군사력 행사보다는 외교에 치중할 것임을 강하게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는 클린턴을 ‘친구이자 동료이며 상담역이자 힘든 경쟁자’라고 소개하면서 “외국 지도자들을 많이 알고, 상·하원 의회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 문제에서 미국의 이익을 추진할 가장 능력 있는 인물로서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물이다”라고 치켜세웠다.

행정부에서 클린턴의 강한 퍼스낼리티로 인해 불협화음이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바마는 “차기 행정부 각 각료들의 개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강한 개성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진지한 토의를 거치면 더 좋은 결론이 나올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이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예비선거 당시 외교 문제에서 서로 의견이 달랐음을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오바마는 “예비선거 당시 열기를 떠나 두 사람의 대외 정책을 (차분하게) 본다면 서로 다른 것이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바마와 클린턴이 상원에서 대외 문제를 다룰 때 거의 의견이 같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예비선거 과정의 TV 토론에서 이라크 등 중동 문제가 나오면 서로 “클린턴의 의견에 동의한다”라거나 “오바마와 같은 생각이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 지명과 관련해 미국 정가에서는 많은 추측이 나돌았다.  2000년과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처음부터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영입하는 데 매우 정성을 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클린턴은 예비선거전 당시 끝까지 오바마와 경쟁하면서 투지를 불살랐으나 패배가 확실해지자 캠페인 중단과 함께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본 선거 때까지 오바마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오바마는 클린턴의 이같은 정치적 결정과 행동에 상당히 고마워하고 신뢰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급 전문 잡지 <네이션>과 유력지 시카고트리뷴은 이를 두고 오바마의 ‘라이벌과 같은 팀 만들기(Team of Rivals)’라고 불렀다. <Team of Rivals>는 오바마가 애독하는 책 제목이기도 하다.

‘대외 정책 실패할 경우 힐러리가 책임 뒤집어쓸 것’ 계산했나

오바마가 클린턴을 기용한 것을 두고 정치분석가들은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는 치열한 경쟁 상대를 끌어안음으로써 자신의 포용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일단 클린턴을 한 배에 태움으로써 예비선거 과정에서 흐트러진 민주당의 내부 결속을 이루어내는 데 큰 결실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둘째는 상원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는 클린턴을 적으로 버려두지 않고 같은 길을 가도록 함으로써 또 다른 정치적 승리를 일구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이 실패할 경우 대부분의 책임을 클린턴이 떠안고 가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도 고려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클린턴 국무장관, 게이츠 국방장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 및 존스 안보보좌관으로 전방 라인을 꾸렸다. 이들이 외견상으로는 외교에 치중할 인물들로 보이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우선 클린턴이나 라이스가 2002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 당시 이에 반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게이츠는 현 부시 정부에서 이라크 전쟁을 수행한 인물이고, 존스는 군인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이들이 외교만으로 만사를 해결할 팀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특히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를 재확인하면서도 ‘세계 최강 미군 유지’를 강조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술이 위험 인물들의 손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발언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북한 핵을 외교력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대북한 전쟁을 진지하게 준비하던 전례를 상기시킨다. 

<네이션>은 이번 오바마 외교안보팀 구성을 놓고 오바마가 진보 정책만 추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현재의 각료 인선으로 볼 때 그의 외교는 강한 진보가 아니라 중도라는 것이 이 잡지의 분석이다. 생각보다 진보 성향의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진보 정치인으로 불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8년간 펼친 외교 정책 역시 중도였다는 것이 앞으로 오바마의 4년을 내다볼 수 있게 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갑 낀 손으로 박수를 치는 장면에는 부시와 다른 차원의 대화를 오바마와 나눌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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