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 매춘사건에도 그가 있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2.09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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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연루돼…지난 5년간 언론에 한 번도 전력 거론 안 돼

▲ 2003년 딸의 결혼을 치른 박연차 회장이 김혁규 당시 경남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일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추악했던 과거 전력이 뒤늦게 확인되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1990년 2월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재벌 2세 등 기업인과 유명 연예인의 거액 히로뽕 매춘’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장본인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신문·방송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다. 더욱이 당시 박회장은 태광실업 대표로 실명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그의 전력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는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우수 기업인으로 거듭났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나라당의 재정위원을 역임했다. 특히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전력 또한 단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이 묻혔다. 왜 그랬을까.

박회장과 그 주변 인맥에 대해서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한 관계자로부터 우연히 그의 과거 마약 복용 등의 범법 전력을 전해 들었다. 당시 언론 지상에도 보도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확인을 위해 당시 신문들을 열람했다. 다음은 1990년 2월7일자로 보도된 세계일보 기사의 일부이다.

「서울지검 특수2부는 6일 ‘마담뚜’를 통해 화대를 받고 부유층 인사와 향락 퇴폐 행위를 벌이며 히로뽕·대마초 등 마약류를 상용해온 영화배우 전○○, MBC 탤런트 이○○씨 등 여자 연예인 6명과 ○○백화점 대표 김○씨 등 9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CF모델 명○○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공업㈜ 대표 이○○씨와 태광실업㈜ 대표 박연차씨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들은 ‘마담뚜’ 이씨의 소개로 국내 및 일본의 호텔 등지에서 이○○·박연차 씨 등을 만나 5백만원에서 최고 1천만원까지의 화대를 받고 이같은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히로뽕을 주사기로 투약하지 않고 빨대를 통해 코로 흡입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생략)」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ㅊ 검사(현재 검사장)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회장이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된 것은 맞다. 당시 잠적해서 기소 중지했다가 이후 검거해서 조사했다”라고 확인했다. 그런데 이같은 내용이 현직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지난 5년간 왜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을까. 그에 대해 ㅊ 검사는 “워낙 오래된 일이 아닌가. 10여 년이 훨씬 지난 일이니 잊혀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징역 12년 구형됐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

ㅊ 검사의 말처럼 당시 박회장은 잠행을 거듭하다가 사건 보도가 된 지 약 보름 후인 2월20일 부산에서 검거되었다. 그는 검거 당시에도 히로뽕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부산지검으로 이첩되었다. 당시 부산지검은 국제적인 코카인 밀매 조직이 부산에 침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회장의 수사 과정에서 이와 연관이 있는 충격적인 사실이 더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 등 재벌 기업인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재미교포 출신의 조직이 드러났고, 그들과 중남미 등 해외 조직이 연계된 이른바 마약 공급 루트가 수사 결과 드러났다는 것이다. 또, 이 유통 과정에 ‘20세기파’ 등 부산의 유명 조폭들도 개입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ㅁ 검사(현재 검사장)는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주목해볼 점은 또 있다. 당시 박회장은 이 건으로 검거된 후 검찰에 의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로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구형받았다. 박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 12월 2심은 집행유예로 박회장을 석방시켰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 사실을 뉘우치고 있으며 석방되면 마약 퇴치운동에 앞장서겠다고 탄원한 데다 기업인을 장기간 구금할 경우 해당 기업의 경영 차질로 지역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라는 것이 원심 파기 이유였다. 당시 이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이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상당히 이례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졌다. 사회지도층 기업인 마약사범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이라는 비난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990년 2월 사건 보도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은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단행해 박회장의 거액 탈세 혐의를 포착하고 39억여 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이 조사 과정에서 박회장은 기업의 해외 수출대금을 변칙 유용하는 수법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거액의 도박을 벌인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회장은 이런 물의로 인해 당시 총무처로부터 1982년 받았던 석탑산업훈장의 서훈을 취소당하기도 했다.

이후 박회장은 해외 사업 진출을 시도해 1994년과 1995년 베트남과 중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며 주로 해외에서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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