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MB 정부 ‘불도저’ 프로젝트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2.23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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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사회 인사 쇄신으로 분위기 다진 후 내각 개편 구상, 공기업도 개혁 타깃…‘친박 껴안기’에는 별 다른 의욕 없어

▲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한승수 국무총리(왼쪽),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맨 오른쪽) 등과 함께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권의 구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공직 사회에 몰아치는 인사 태풍이 그 시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은 잡았지만 지난 1년 동안 새 틀을 짜지 못했다고 자평하면서 신발끈을 새롭게 조여매고 있다. 이대통령에게는 2009년이 기사회생의 해가 되느냐, 아니면 헤어나기 어려운 궁지에 몰리는 해가 되느냐 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를 인사 파문 후폭풍과 촛불 집회에 휩쓸려보낸 이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된 직후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12월15일 공직 사회를 강타한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1급 간부들의 사표 제출 사건이 그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각 부처가 알아서 결정한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대통령이 12월18일 “공직자들이 그냥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선봉에 서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인사 쇄신 흐름은 전 부처로 확산되고 있다.

1급 공직자들의 사표 제출 소식이 알려지기 전인 12월11일 기자는 여권의 한 인사로부터 그와 같은 내용을 들었다. 이 인사는 “개각이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먼저 1급 인사들을 정리하고 그 다음에 개각으로 가는 흐름이다. 공직 사회가 안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공개화되기 전 여권 내부에 이미 ‘1급 사표’와 관련한 일정한 흐름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과부와 국세청이 왜 테이프 끊었나

해석이 분분하지만 하필 왜 교과부와 국세청이 테이프를 끊었느냐는 점에도 정치적인 맥락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의원은 “교과부의 경우 교체가 거론되니까 먼저 치고 나온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안병만 장관은 취임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외대 총장 시절에 있었던 판공비 사용 문제 등으로 구설에 올랐고, 장관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업무 파악·조직 장악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속한 한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 때 보니 가관이었다. 장관의 답변을 밑의 직원이 뒤집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장관이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상률 국세청장의 경우도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한때 이런저런 소문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개각을 앞두고 여권의 의도에 맞춰 분위기를 조성하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의 한 1급 공직자도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1급 공직자 사표’는 공직 분위기를 쇄신해 2기로 나아가려는 이명박 정권의 터 닦기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코드로 공무원을 길들이겠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이 있으나 물꼬를 트고 자세를 다잡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공무원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하는데 이를 의식하지 않을 고위 공직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파견된 부처 공무원들 상당수를 부처로 다시 돌려보내 ‘이명박 개혁’의 정신을 전파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흐름의 핵심은 결국, 공직 사회의 인사 쇄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거센 태풍이 공직 사회를 향해 부는 셈이다.

‘1급 사표’에 이어 청와대는 청와대 개편과 개각을 따져보고 있다. 설을 전후해 순차적으로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의원은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안다. 확정된 상태는 아니고 왔다갔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개각과 관련해 이 인사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경제팀 외에 몇 개 부처가 갈릴 것으로 본다며 현재로서는 폭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보았다. 애초 예상되었던 ‘대폭 개각’보다는 폭이 줄어드는 흐름이다. 하지만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결심 여하에 따라 언제든 폭과 깊이, 시기가 바뀔 수 있다.

▲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등 교과부 직원들이 12월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할 것”

개각과 관련해 여권 내에서는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드림팀을 짜야 한다, 여권을 단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 지지율을 회복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것 따위이다. 이 가운데 현재 청와대의 분위기를 보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드림팀을 짜야 한다는 것과 지지율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쪽으로 가는 흐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지율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재산 헌납’에 대해서는 이대통령이 지난 12월15일 라디오 연설에서 “머지않아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 보인다. ‘친박근혜계 좌장’으로 통하는 김무성 의원은 지난 12월18일 “(친박근혜 인사의 입각 문제 등과 관련해) 청와대 맹형규 정무수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진전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사정이 이러니 이명박-박근혜 만남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보면 청와대는 ‘친박 포용’에 그다지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측에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세력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권력을 나눠달라는 얘기인데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권을 단합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흐름이 엿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정두언 그룹이나 이재오 그룹의 핵심 인사가 대통령을 만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힘이 관철되는 흐름이다. 이재오·정두언 그룹에 속한 인사들은 당과 내각, 청와대를 실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힘을 가진 사람이 자리를 맡아 책임지고 일을 추진해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자 권력’인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부분 또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여권 내부의 단합 문제는 현실적으로 ‘권력 분점’으로 모아진다. 친이계와 친박계 그리고 친이계 내부에서도 권력의 파이를 나눠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대통령의 각오는 확실히 과거와 달라 보인다. 여권 내부에서 ‘돌격’ ‘속도전’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내년에 선거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내년뿐이다”라는 절박감도 대통령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를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친정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진면목이 내년에 드러날 것이다. 별명이 왜 ‘불도저’인지 국민이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한 인사는 “대통령이 당원들에게 연말에 편지를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서도 일할 수 있는 시기가 내년뿐이라며 세게 일하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밝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기업 인력·구조 조정 작업 본격화할 듯

요즘 청와대 참모들은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 더 떨어질 곳도 없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2월15일 조사에서 이대통령의 지지도는 26.2%로 나왔다. 강공 드라이브가 나오는 배경에는 경제 위기라는 외적 조건 외에도 더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일종의 낙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은 외환위기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염려했다. 김원장은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무당층이 늘어나면서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는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원장은 ‘신뢰’와 관련한 대표적인 경우로 대운하 문제를 거론했다. 이른바 ‘4대강 정비 사업’이 대운하의 첫 단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한데 정부가 뚜렷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불신만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행태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기업과 관련한 이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는 공기업이 주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 정권과 관련한 사정 수사는 기본적으로 운명을 다했다. 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활동 영역은 크게 줄어들었다.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야 할 판에 기업들을 상대로 압박할 수도 없다. 남은 것은 공기업이다. 국민의 요구도 있는 만큼 공기업과 관련해 강도 높게 개혁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12월22일 공기업 경영효율화 방침을 발표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공기업의 인력과 구조를 조정하는 방안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민생경제연대 장준영 대표는 “공기업을 개혁하고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우리 산업의 주력 업종들이 부진을 거듭하는 것은 위험 요소이다. 인천제철에 이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포스코가 감산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쌍용차와 GM대우차가 생산을 중단했고, 현대차도 특근을 중단하거나 휴업을 하는 식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 4분기에 이어 내년 2분기까지 적자가 예상된다는 증권사들의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 업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지난 호 <시사저널> 기고에서 “우리 경제가 이미 붕괴를 시작했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이 예고되고 있다. 금융권 구조 조정 작업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경제가 민간 주도의 자율적 구조 조정을 통해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을 이미 넘어서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정부 정책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보수 이론가는 “지금은 경제 문제이지만 실직이 현실화하고 기업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정치·사회 문제가 된다. 머지않아 그런 시기가 온다. 정부가 빨리 손을 쓰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때는 엄청난 사회 불만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야당 등 정치권이 이에 결합하게 되면 이대통령으로서는 정권이 흔들리는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여야 모두를 외면하는 정치 무당층의 증가도 이런 사회 불안을 키우는 흐름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이대통령의 집권 2기는 장밋빛이 아니다. 오히려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생존법을 찾아야 하는 형국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길잡이와 서로를 믿고 보듬는 신뢰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깨지면 그 순간 눈보라 속에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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