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꼴불견’ 정당은 ‘그 나물’ 무당층만 쑥쑥
  • 유창선 (시사평론가) ()
  • 승인 2008.12.2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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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 못 벗는 현실에 실망, 60%대까지 늘어 리더십도 없는 여야 모두에 관심 끊어

▲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 정치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 사이에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무당층의 비율이 60%대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10월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32.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지난 10월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50.4%, 경향신문이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2월13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56.3%가 무당층으로 집계되었다. 같은 날 내일신문·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무려 61.6%가 무당층으로 조사되었다. 연초와 비교하면 무당층은 40%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무당층이 증가한다는 것은 정치를 혐오하거나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층이 늘어난다는 것으로, 그만큼 참여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한때 무당층이 10%대에 불과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불과 1년 사이에 무당층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도대체 지난 1년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무당층의 급증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무당층의 증가가 현재에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국민의 정치 불신이 확산되면서 무당층이 5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던 시기가 있었다. 대체로 정치 불신이 커지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무당층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곤 했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현대 사회가 거대화·복잡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정치와 자신을 직접 연결시키지 못하게 되고, 정치에 대한 요구와 기대를 접게 된다. 그리고 대중문화·예술·오락·정보통신 같은 쪽에 관심을 쏟으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된다. 이는 우리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적으로 전개되어온 추세이다. 그렇게 보면 무당층의 증가는 현대 정치 사회의 구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국민의 탈정치화 정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으로 파악되어왔다. 특히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달아오르는 국민의 정치적 열기는 무당층을 상당 부분 흡수하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보여왔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경우 무당층의 급증은 일반론적 차원에서 구조적인 현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지난 1년간의 정치적 과정이 무당층을 급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정당들, 촛불 정국 등 갈등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 못해

최근 한국 정치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정당 정치의 위기 현상이다. 정당 정치는 사회 내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그 사회의 갈등을 조정·해결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은 이러한 갈등의 조정자 역할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이다.

미국 쇠고기 파문에 따른 촛불 정국의 과정은 우리 정당 정치의 위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정권과 시민들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했지만, 정작 정당들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당은 정부를 옹호하다가 반발 여론이 확산되자 뒤늦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야당은 ‘거리의 정치’에 편승할 뿐 대의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당 정치의 역할이 이렇게 축소된 것은 그만큼 우리 정당들이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년간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층의 광범한 이탈 현상이다. 무당층의 급증 현상을 낳은 가장 큰 부분이 이 대목에서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세력 지지층의 이탈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당층과 관련해서는 그들이 새로운 국정 운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현 여권 세력은 국민의 기대였던 경제 살리기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치 세력으로서 여러 가지 퇴행적 모습을 보여왔다. 그들은 시대 환경의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사고와 의제를 제시하지 못했고,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에 급급한 ‘과거 지향적 집권 세력’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 지지에서 이탈한 층이 민주당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대선 이래로 민주당의 지지율은 정체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해도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은 그대로이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행보를 돌아보면 이유는 쉽게 찾아진다. 국민의 요구와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민의 최우선적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야당의 입장에서 이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야당으로서의 해법과 대안을 제시해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식의 관성적 투쟁에만 갇혀 버린 채 국민의 관심과 멀어졌고, 결국 민주당 자신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시 환경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관성적인 노선이 민주당을 진부한 야당으로 전락시켜 버린 셈이다.

지난 1년간 여야 모두 환경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낡고 진부한 모습을 보였고, 그에 따라 여야 모두로부터 등 돌린 무당층이 급증하게 된 것이다.

무당층이 급증한 또 하나의 현실적 요인으로는 리더 부재 현상을 들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특정한 리더를 보고 그가 이끄는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퇴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식 사당 정치의 퇴조라는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리더의 기근 현상이 정당에 대한 지지를 축소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사정이 다르기는 하다.

정당 간 지지층 이동 현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아

한나라당은 그래도 ‘차기’ 반열에 올라있는 주자들이 여럿 있는 편이다.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김문수 지사 등이 있다. 그러나 가장 앞서 있는 박근혜 전 대표만 하더라도 ‘친이-친박’의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당 차원에서의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한 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따라 함께 웃고 우는 운명이 되어 있는 셈이다.

리더 문제에 관해서 민주당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은 리더의 기근 현상을 심각하게 맞고 있다. 정동영·손학규 전 의장마저 물러난 상태에서 정세균 체제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정세균 대표가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중형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지금 당장 다른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대중적 지지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리더가 부재한 현실은 민주당이 국민의 관심을 모으지 못하는 또 하나의 현실적 이유가 되고 있다.

최근의 무당층 현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정당 간의 지지층 이동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정당 지지에서 이탈한 층이 다른 정당 지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으로 남아 있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정당들의 강도 높은 자구책 없이는 무당층을 자기네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정당들은 결단의 기로에 서 있다. 지지층 없는 정당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할 것인가. 그러나 몸싸움도 모자라 쇠망치와 소화기까지 등장했던 연말 국회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무당층은 늘어만 갈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하게 된다. 우리 정치권은 무당층의 급증 현상 앞에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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