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통속’ 천하에 잡음만 뭉게뭉게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1.06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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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 연말 시상식, MBC ‘최악’ KBS ‘본전’ SBS ‘선방’

▲ MBC 연기대상을 공동 수상한 의 김명민(위 왼쪽)과 의 송승헌. ⓒMBC 제공

연말 방송 시상식들이 파란을 일으키며 마무리되었다. 언제나 말들이 많았지만 올해에는 특히 유별났다. KBS와 MBC의 연예대상이 끝난 후에는 인터넷에서 대상 무효 청원운동까지 벌어졌다. 유재석에게 갈 상이 강호동에게 갔다는 불만 때문이다. 유재석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들이 쏟아졌고, 서로를 ‘유빠’와 ‘강빠’라고 부르는 네티즌 사이에 극렬한 대립이 나타났다.

MBC 연기대상 시상이 끝난 후에는 ‘넷심’이 폭발했다. 대상을 김명민과 송승헌이 공동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연기대상을 성토하는 청원운동이 벌어졌다. 대상을 탔음에도 불만이 없는가를 묻는 김명민 인터뷰 기사까지 나왔다. 물론 김명민은 불만이 없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끓어올랐다. MBC 연기대상 결과를 알리는 한 기사에는 밤 사이에만 무려 1만개가 훌쩍 넘는 분노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은 밤을 새가며MBC를 성토했다.

 지난 12월31일에 있었던 SBS 연기대상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MBC와는 전혀 다른 대상 시상으로 사람들을 다시 들끓게 했다. 결국, 파란과 대립과 상처 속에 MBC는 ‘똥물’을 뒤집어쓰고, 문근영은 국민에게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며 2008년 시상식 시즌을 마감했다.

먼저 연예대상부터 얘기해보자. 방송 3사가 따로따로 시상식을 연 것이 문제였다. 이 구도는 강호동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방송 3사 통합 시상식이 있었다면 단연 유재석이 대상을 탔을 것이다. 그러나 각 방송사별로 찢어서 보면 강호동에게 대상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은 여기에 납득하지 못했다. 국민이 체감하기로는 당연히 유재석이야말로 대상감인 국민MC이니까.

따로 시상식 연 것이 문제

MBC에서 유재석은 이미 두 번이나 연속해서 대상을 받았다. 세 번째 받으려면 2008년에 강력한 히트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전부터 해오던 것을 그대로 이은 것에 불과했다. 꾸준히 잘해준 것은 공로상감이지 대상감은 아니다. 반면에 강호동은 <무릎 팍 도사>를 한국 대표 토크쇼로 만들었다. 그것도 새로운 포맷을 창조하면서. 지금은 ‘리얼’ ‘독설’ ‘막말’의 시대이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 현재의 트렌드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릎 팍 도사>는 이런 시대에 맞춰 토크쇼가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을 창조해냈다. 이것은 ‘리얼’의 시대를 연 <무한도전>에 버금가는 공적이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이미 대상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강호동이 MBC 연예대상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무릎 팍 도사>가 <무한도전>보다 시청률이 더 낮다 해도 국민 토크쇼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문화적 의미는 컸다.

KBS에서 강호동이 연예대상을 받은 후에도 오히려 상을 못 받은 유재석에게 더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해피 투게더>로 선전한 유재석이 아깝다는 의견이었다. <해피 투게더>와 <1박2일>은 그 존재감이 다르다. <1박2일>은 ‘리얼’의 시대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KBS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막대한 공적이 있다. 강호동에게 대상이 안 갈 수 없는 구도였다.

▲ SBS는 연말 시상식에서 연예대상에 유재석(왼쪽)을, 연기대상에 문근영(오른쪽)을 선정해 가장 무난했다는 평을 얻어냈다. ⓒSBS 제공

SBS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유재석에게 대상이 갔다. 어떤 사람들은 SBS 연예대상까지 강호동이 휩쓸어주기를 기대했다. <스타킹>으로 <무한도전>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주중에 <예능선수촌>을 선방한 공적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밀리가 떴다>의 존재감은 막강했다. 이것은 SBS가 죽을 쑤던 주말 예능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때려준 효자이다. SBS는 리얼 버라이어티 부문에 <라인업>으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처절히 실패했었다. 그 한을 풀어준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에게 대상이 간 것이다. 그러므로 방송 3사 연예대상은 순리대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원운동까지 벌였던 일부 ‘유빠’ ‘무도빠’들의 광포한 유재석 사랑은 오히려 유재석에게 해가 되고 있다.

MBC 연기대상을 김명민과 송승헌이 공동 수상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연예대상 결과를 논하며 ‘공적’을 말했었는데, 승승헌이 물론 MBC에 공적이 크기는 하다. 그러나 공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합성이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모두 정상급 MC이다. 그러므로 구도에 따라 상이 이리로도 저리로도 갈 수 있다. 반면에 송승헌은 김명민과 ‘류’가 다른 사람이다. 김명민은 연기자이지만 송승헌은 흥행 스타이다. 스타에게 상을 주려면 인기상을 줘야지 연기상을 주면 안 된다. 그러면 상의 권위가 무너지고, 그 상을 받은 ‘진짜 연기자’만 우스운 사람이 된다. 

김명민과 송승헌은 ‘류’가 다른데…

김명민은 지난해에도 이서진과 나란히 연기대상 후보에 오르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었다. 그리고 한류 스타인 배용준에게 밀려 대상을 받지 못했다. 올해에는 기껏 상을 준다면서 한류 스타 송승헌 옆자리에 세웠으니, 당대의 연기자 김명민을 한류 스타 잔치에 들러리로 세운 셈이다. 이것은 연기에 대한 모독이고, 그 연기를 보고 감명받은 시청자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이 연기나 작품성은 중요치 않고 시청률과 상품성만 중요하게 여기는 ‘막장 드라마 왕국’이라는 것을 확인시킨 셈이니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KBS 연기대상은 김혜자에게 돌아갔다. 김혜자는 올해 KBS의 화제작이었던 <엄마가 뿔났다>의 주역이었다. 그러므로 마치 유재석이나 강호동에게 연예대상이 가는 것처럼, 공헌도와 능력을 종합 판단했을 때 김혜자가 연기대상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KBS는 합리적인 시상을 함으로써 MBC를 옹색하게 만들었다.

SBS가 일을 냈다. 진짜 연기를 기준으로만 연기상을 주었다. 연기대상이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에게 간 것이다. <바람의 화원>은 방송사에게 장사를 시켜준 좋은 상품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작품성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인기는 없었다. MBC와 KBS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작품은 모두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효자 상품들이다. SBS만 과감히 상업성을 무시했다. 덕분에 MBC 연기대상은 치욕적인 망신을 당했다. SBS의 과감한 결정이 없었다면 올해의 연기대상은 막장으로 치달은 시상식으로 남을 뻔했다.

대상만 놓고 보면 SBS만 혼자서 구름 위를 노니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조강지처클럽>이 10관왕을 했다. 작품성이고 뭐고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상업주의가 여실히 드러났다. KBS 연기대상의 주인공은 <엄마가 뿔났다>, MBC 연기대상의 주인공은 14관왕을 한 <에덴의 동쪽>이었다. 이 드라마들은 통속극에 해당한다. 결국, 장사 잘 되는 통속극이 방송 3사 연기대상을 휩쓸었다. 2008년이 통속극, 막장 드라마 천하였던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예대상에서는 ‘리얼 예능’의 위세가 강렬했다. 절대 강자로 공인된 유재석과 강호동은 모두 ‘리얼’ 시대의 대표 주자들이다. 리얼 예능과 통속극이 흥행계를 양분했고, 그것이 연말 시상식에 정확히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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