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죽어야 사는가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9.01.06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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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지원 없으면 ‘법정관리’ 가능성…“상하이차 철수하는 것이 그나마 살길”

▲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150-3번지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쌍용차 문제’가 노사 갈등과 맞물려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주주인 상하이차는 쌍용차 노조가 상하이차의 구조조정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쌍용차 및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로부터 철수할 가능성은 지난해 12월 국회 지식경제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최형탁 쌍용차 공동대표와의 면담에서 처음 불거져나왔다. 이후 장쯔웨이 상하이차 부회장이 방한해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차관을 면담했고, 쌍용차의 2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하 산은)으로부터 “상하이차의 선자금 투자 및 쌍용차의 구조조정이 없으면 산은의 추가 자금 대출은 힘들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산은이 쌍용차 지원을 위해 내건 3가지 요구 조건은 쌍용차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먼저 지원에 나서고, 쌍용차 노조가 사측과 구조조정 안에 합의하며, 쌍용차 경영진이 신차 개발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쌍용차 청산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쌍용차 전직 고위 경영자였던 ㄱ씨는 “산은이 상하이차에 잘 대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산은 관계자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공모사채 및 전환사채, 운영 자금 등을 계산하면 약 6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하루빨리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산은은 상하이차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쌍용차 청산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쌍용차는 상하이차의 금융 지원이 무산되면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 관리(기업 회생 절차)에 바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쌍용차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의결권은 정지된다. 상하이차가 산은의 기대대로 쌍용차에 선 자금 지원을 하더라도 산은은 최대 수백억 원의 자금 지원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ㄱ씨는 “한국 정부가 상하이차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라고 언급하고, 지경부 차관이 상하이차 장쯔웨이 부회장을 만난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는 “상하이차에는 부회장이라는 직책이 없다”라면서, 장쯔웨이는 이미 상하이차에서 사실상 은퇴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상하이차가 진정으로 쌍용차의 회생을 바란다면 의사결정권이 없는 장쯔웨이가 방한할 것이 아니라, 총재나 재무 담당 부총재(CFO)가 방한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다. 지경부 차관이 장쯔웨이를 만난 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쯔웨이는 2005년 쌍용차의 인수를 주도한 인물로, 쌍용차의 각자 대표이사를 맡아, 한국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다. 또, 쌍용차 고위 경영자를 지낸 ㄴ씨는 “상하이차측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를 만나 지원을 요청하든, 노조에 구조조정 안을 요청하든 그 전제로 쌍용차의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되는데, 장쯔웨이는 전혀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라면서 상하이차의 쌍용차 회생을 위한 진정성을 의심한다.

지경부는 장쯔웨이와의 면담에서 “특정 업체에 대한 직접 지원이 어려우며 쌍용차가 구조조정 안을 가져오면 산은이 지원 여부를 판단할 문제이다”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ㄴ씨는 “상하이차는 쌍용차와 모노코크 보디(차체·프레임 일체형) ‘C200’이 개발 완료되는 시점인 올가을까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 수도 있다. 그 이후에는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다.

“가을까지 시간 끌다 완전 철수 가능성 높아”

ㄴ씨는 상하이차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상하이차가 기술 이전료를 내지 않고 쌍용차로부터 기술을 가져갔고, 한국에 초청 형식으로 파견되어 있는 상하이차 경영진들(대부분 엔지니어)의 급여, 사무실 사용 비용, 전속 차량 및 기사들의 임금, 통역사 등의 임금 등 연간 100여 억원 이상의 비용을 쌍용차가 지급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상하이차는 상하이차에 파견된 쌍용차 엔지니어들에 대한 임금을 부담하지 않아 당시 한국측 경영진들이 이들을 철수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또, 한국측 경영진들은 중국 수출차에 쌍용차 브랜드 및 로고를 쓰지 않겠다는 상하이차의 제안을 거절했고, 쌍용차측이 쌍용차에 상하이와 공동 브랜드 및 로고를 부착하자는 제안조차도 상하이차가 거절해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들 한국측 경영진은 상하이차로부터 축출되었다. 이때 물러난 경영진은 소진관 사장, 최형기 재무기획 부사장, 김승신 연구개발 부사장이었는데, 특히 최부사장이 상하이차측에 강경하게 대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상하이차는 그동안, 한국 언론 및 여론에 중국 내 상하이차와 쌍용차 간 합작 회사만 설립되면 중국 내수 시장의 규모로 보아 그동안의 손실을 보존할 수 있다고 기만했다”라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중국 자동차업체가 전혀 지분이 섞이지 않은 외국 자동차업체와는 합작을 허용해도 쌍용차처럼 중국 기업이 경영권을 가진 기업과의 합작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 것을 자동차 산업 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데, 자신들이 이미 경영권을 갖고 있는 기업에게 왜 시장을 열어주겠느냐는 것이다. 한국 내 대규모 투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상하이차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 중 최대 의혹으로 꼽힌다. 2005년 초 상하이차 경영진과 쌍용차 노조와의 간담회 중 상하이측은 “1조원 이상은 (투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이후 상하이차는 투자 형식과 관련해 ‘중국에서 돈을 들여온다는 뜻이 아니었다’라는 요지의 말만 되풀이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다. ㄴ씨는 “간담회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상하이차의 직접 투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라면서, 당시의 대화 녹취록이 쌍용차 노조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핵심 자산인 독자 그린 엔진 개발에 써야”

ㄴ씨는 “상하이차가 철수하는 것만이 쌍용차가 그나마 살길이다”라고 강조한다. 상하이차는 쌍용차로부터 배워간 기술 및 각종 경영 노하우만으로도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남았기 때문에 손해 본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상하이차가 철수한 후 회사가 부도나면, 쌍용차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인이 손실을 서로 감당하는 전방위 구조조정만이 쌍용차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전방위 구조조정이란, 종업원, 금융 기관, 부품업체 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해야 함을 뜻한다. 쌍용차가 격심한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쳐, 쌍용차 수준의 기술조차도 보유하지 않은 외국 기업들과 제휴를 체결하는 방안이 살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잠재 시장에 비해 승용차 및 SUV 기반이 취약한 인도, 러시아, 중동 국가들, 남미, 인도네시아의 기업들과 판매 제휴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 기업을 쌍용차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쌍용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도 금융권 및 정부 당국자들은 생존하기 힘들다고 했으나 개도국으로의 수출을 확대하면서 구렁텅이를 빠져나온 예가 있다.

쌍용차는 모두가 다 살려고 하면 전부가 죽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ㄴ씨는 “상하이차가 하듯이 기존의 쌍용차 자산을 매각해 연명하는 것은 회사의 회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융 기관에 담보로 잡히지 않은 핵심 자산이 있다. 이 자산은 연구·개발을 위한 실탄으로 쓰여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자동차 회사는 연구·개발이 지속되어야 회사의 미래가 있는 것이지, 연구소의 전등불이 꺼져서는 구조조정의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는 “쌍용차의 문제는 ‘규모의 경제’ 달성이다. 연구·개발의 목표를 30만대 이상의 독자 그린 엔진 개발 등에 두어야 한다. 회사의 마지막 남은 핵심 자산이 유용하게 쓰여져야 하고, 이러한 쌍용차의 자구 노력이 보여질 때 금융권에서도 지원할 명분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반면, 쌍용차의 현직 경영진 대부분은 상하이차의 잔류를 원하고 있다. 이유는 ‘대안 부재론’ 때문이다. 노조가 상하이차에 적극 협조하고, 언론이 상하이차에 우호적인 태도만 취해주면 쌍용차의 미래를 한 번 맡겨보자는 입장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상하이차에 경영권이 넘어간 뒤 발탁된 인물들로 체제 변화를 원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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