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민의의 전당’이라는 말을 거두어라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9.01.06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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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과 국회 윤리위원회는 날치기·불법 행동 통제 기능 강화해야…표결 처리보다 국민 여론부터 존중을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영국의 국회의사당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여야 사이의 바닥에는 두 개의 줄이 그어져 있다. 국회의원은 이 줄을 넘어 상대편으로 갈 수 없다. 어쩌면 단순하게 보이는 줄은 4백년 전으로 거슬러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힐은 17세기 영국의 시민전쟁을 ‘계급 전쟁’이라고 불렀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정치적 갈등은 매우 심했다. 국회의원의 논쟁이 격해져서 결투로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칼끝이 상대방에 닿지 않을 거리에 줄을 그었던 것이다. 나중에 국회의 연설에도 상대방을 모욕하지 않는 다양한 규칙을 만들었다. 상대방 의원을 부를 때면 ‘존경하는 신사’라고 불렀다. 또한, 상대방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쓸 수 없도록 금지했다.

한국 국회의 갈등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국회의원이 군사 작전처럼 몰래 모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더니 ‘민의의 전당’이라고 써 있는 국회는 ‘의원들의 농성장’이 되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은 아무런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협상 창구인 여야의 원내대표는 상대방을 비난하기 바쁘다. 국회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매섭다. 국회의 정쟁으로 민생 법안이 표류해 국민만 손해를 보고 있다며 정치권의 무능을 질타한다. 양당의 대립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그 원인이 마치 국회의원 개인의 결점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일부 정치인의 자질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 국회의원은 공천 대가로 뇌물을 받거나 선거에 돈을 써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국회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정치인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국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평화롭게 협력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 당시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우수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5공화국 시절 민정당과 민한당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국회는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다. 민주사회의 국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고 커다란 목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국회의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대로 “갈등이야말로 창조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유신과 5공에 대한 저항은 민주화를 위한 필수적 요소였다. 이러한 정치적 갈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사회 발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재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에서 점거 농성과 날치기 법안 통과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 시대에는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면 기회주의로 매도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에는 협상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국회는 적대적 대결의 정치로 멍들었다.

국회의 소모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먼저 여야가 합의해 만든 국회법을 존중하고 국회의 의사 진행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국회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보장되어야 하지만 폭력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문을 잠근 채 법안을 단독 상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민주당이 전기톱과 망치로 문을 부순 행동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국회의장과 국회 윤리위원회는 ‘솜방망이’ 대처가 아니라 날치기와 불법 행동을 통제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의원의 폭력, 위법을 비난하다가도 합법적 강제력을 동원하면 여론이 등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결국, 국회의 정치적 갈등은 여야의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한다.

소모적 갈등 구조 해소 위해 필요한 네 가지

▲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국회에서 법안을 표결하기 전에 많은 이해관계자와 소통해야 한다. 다수당이 맘대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다수결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이라며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나의 허물과 잘못된 정치를 직언하라”라면서 다양한 비판을 허용했다. 또한, 조세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두 차례 18만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현직 관리와 지방의 유지, 농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야당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거나 삼삼오오 백악관에 초대해 설득했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복지 감축 법안을 포기하기도 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면 표결 처리에 앞서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대운하 사업 관련 의혹을 받는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해 말끔하게 해명해야 한다. 또한, 야당도 장학재단법안 등 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할 수 있는 유연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 국회의 법안 심의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심의’란 어떤 집단적 결정을 하기 위해 각자 선택의 이유를 제시하는 정당화 과정을 가리킨다. 국회는 원래 ‘말하다’(parler)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에서 비롯되었다. 국회는 단순히 표결을 하는 기계가 아니다. 국회는 다양한 사회 세력이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논쟁을 벌이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가 말하는 ‘속도전’은 민주적 절차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청한 85개 중점처리 법안 중 45개 법안이 최근 몇 주 사이에 제출된 ‘졸속 입법’이다.

금산분리 완화 법안, 방송법 개정안 등 상당수 법안은 정부가 입법하지 않고 여당에 부탁한 의원 입법이라고 한다. 의원 입법 기간도 평균 7개월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에서 수개월 동안 더 토론을 한 후에 표결을 해도 늦지 않다.

넷째, 소수당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물론 국회의 표결 원칙은 다수결이다. 하지만 다수결이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의 국회에서는 소수당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허용한다. 스페인어로 ‘해적’ 또는 ‘약탈자’라는 뜻을 가진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의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다.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5시간19분 동안 의사 진행 발언을 해 기록을 세웠다. 미국에서는 1957년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민권법의 통과를 막기 위해 24시간18분 동안 연설을 계속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 상원에서는 재적 의원의 5분의 3 이상이 토론 종결을 요구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장시간 연설을 할 수 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정책이 달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없다면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 어렵다. 여당이 ‘좌파 정책 청산’을 외치고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한다면 갈등은 국회가 아니라 거리로 이동할 것이다. 또한, 야당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을 모두 ‘반민주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물리력으로 봉쇄한다면 국회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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