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왕국’은 고조선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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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진실과 ‘요하문명’에서 발견한 한국 고대사의 실체

과학자가 고조선의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일이 역사학자만의 몫은 아니지만 왜 역사학자를 앞장세우지 않고 직접 나서야 했을까.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을 펴낸 저자는 프랑스에서 물리학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 초빙 과학자로 연구하고 있다. 그런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중국에 들르는 일이 잦았는데, 최근 ‘중화 5천년’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새긴 기념비가 유적지 등에 세워진 것을 보았다. 중국이 과거와 달리 중국 역사의 기원을 길게는 1천5백년까지 올려잡은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55개 소수민족을 포함한 다민족 역사관을 내세움으로써 오늘날의 다원적 중국을 이끌기 위해 동북공정은 물론 서북·서남공정을 벌여온 중국이, 이 공정을 마무리하면서 발표한 내용은 한국 고대사의 취약점인 고조선을 ‘과학적으로’ 풀어주는 일이었다. 저자는 중국이 최신 첨단 장비로 무장해 얻어낸 고고학적 성과에 놀라면서도 중국이 주도 면밀하게 자국 역사를 확장시키는 데에 위기감을 느꼈다. 한국 강단 사학계가 신화로 결론 내리고 논쟁만 일삼는 동안 중국은 고조선이 있었다고 알려진 중국 동북방(요하 일대)에 대한 고대사 유물 발굴과 과학적 조사를 치밀하게 진행했던 것이다. 발굴 결과 중국이 명명한 새로운 요하문명이 드러났는데, 이것이 황하문명권의 ‘하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4천년 중국 역사를 5천년으로 끌어올리는 근거가 되었다. 저자는 요하문명의 핵심이 바로 그동안 한민족의 뿌리로 인식되어온 고조선 역사와 밀접할 것이기에 중국의 결과물에 천착해 우리 앞을 막고 있던 ‘신화’를 걷어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 고대사를 뺏어가는 일이 아니라, 잘하면 한국 고대사를 찾아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동북공정 속에 숨겨진 중국의 속셈이 무엇인지도 속속들이 밝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동이족의 역사까지 삼키는 것이 동북공정

▲ 중화삼조당 안에 있는 치우·황제·염제의 조각상. ⓒ글로연 제공
한국인들이 늘 고조선이 있었다고 말해온 지역에서 나온 발굴 결과물에 중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임에 새로 드러난 ‘신비의 왕국’을 두고 중국 학자들은 고민에 빠졌고, 그들은 동이족 역사 전체를 삼키는 얼토당토않은 발표를 했다. 모든 중국인이 중국인의 선조로 생각해온 화하족 수장인 황제(黃帝)가 동이족이라고 발표하는가 하면, 중국 고대사에서 대표적인 외적으로 여기던 동이족의 우두머리 치우도 중국인의 선조라고 주장했다. 치우 유적지 복원과 중화삼조당 건립 등 동이족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한 여러 후속 조처도 발 빠르게 진행했다.

저자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구려의 역사만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이 근본적으로 동북공정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은 현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역사 모두를 중국 역사로 대치함으로써 중국 나름으로의 역사 찾기에 나섰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요하문명이 동이족인 황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중국.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그 연대가 후대에 속하는 단군 역시 황제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이든 고조선이든 이제는 모두 중국 역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주장대로라면 동북방에 근거를 둔 한민족의 원류와 역사는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에서 오랜 시간 많은 학자들이 치밀한 연구와 함께 자신들의 논거를 만들어가는 동안 한국은 스스로 수십 년간 교과서에서조차 고조선 역사를 고대사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 학자들은 그것조차 빌미로 삼고 있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 올가미를 쓴 셈이 된 것이라고.

동이족의 터전에서 나온 유물과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중국측에 맞서 저자는 유물 및 유적의 연대와 민족사적 연계성 등을 온갖 사료들을 끌어모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려 애썼다. 그리하여 그 유적과 유물이 무슨 근거로 동이족의 것이며, 왜 한민족의 것일 수밖에 없는지를 과학자의 눈으로 밝혔다.

이슈와 쟁점으로 고조선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고조선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역사학자들의 ‘말 잔치’와 대비된다. 고조선 역사가 신화에서 역사로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 중국 요령성 조양시 부근 우하량홍산 지역이다. 고조선이 살아 꿈틀거릴 듯한 그 지역에 문득 과학자의 눈을 빌려 뛰달리고 싶은 자, 신화가 역사로 옷을 갈아입는 생생한 현장에서 감격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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