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 구도가 요동친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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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강·김옥 영향력 확대, 김정철 후계설에 무게 실어…장녀 김설송과 김경옥도 새롭게 두각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인민군 포병사령부 산하 제1489군부대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월5일자로 보도한 것이다. ⓒ연합뉴스


북한의 권력 구도에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국내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북한의 후계 구도 밑그림이 올해 또는 늦어도 내년 안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그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시발점은 오는 3월8일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될 것으로 본다. 사실 그동안은 2012년에 북한의 세 번째 권력자가 공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 70세가 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악화된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돌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좀더 가시화될 것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조짐은 지금도 북한 내부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폐쇄된 북한의 권력 구도 속에서도 최근 눈에 두드러지는 인물이 5명 있다. 김정일의 유력한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목받고 있는 차남 김정철을 비롯해 장녀 김설송, 사실상의 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옥 그리고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리제강과 김경옥 등이다. 이들의 최근 대내 활동과 직책의 변화가 김정일의 ‘와병 통치’ 속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0월28일자(제992호)에 실린 특별 기획 ‘누가 북한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리제강·리용철 제1부부장, 장성택 행정부장, 김옥을 북한의 핵심 파워 엘리트 4인으로 지목해 보도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리제강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리제강은 공교롭게도 본지 보도 이후 김정일의 와병 상황 속에서 김정일을 가장 많이 수행(9회)한 인물로 급격히 부상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리제강을 북한의 권력 실세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과 함께 ‘2인자’를 놓고 다투는 숙명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옥 역시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어린 시절 김정철·김정운 형제에게 ‘옥이’라고 불리던 그녀는 이제 어엿한 ‘김정일의 여자’로서 권력의 가장 핵심부에 서 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평양의 주석궁에서 김정일 전속 요리사로 있으면서 ‘로열 패밀리’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을 담아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쓴 후지모토 겐지 씨는 지난해 12월 일본을 방문한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과 비밀리에 만남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책 출간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뒤, 그는 현재 신변 안전을 위해 일본 도쿄의 근교에서 칩거 중이다. 이 만남에서 그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옥과 관련된 많은 일화들을 공개하며 일부 국내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다. (28면 기사 참조) 리제강과 김옥의 영향력 증대는 김정철의 후계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정철, 사실상의 장남 지위 누리고 있어

▲ 김정남(왼쪽)과 김정철(오른쪽). ⓒ연합뉴스

그래서일까. 북한 내부에서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던 김정철이 조직지도부 부부장의 직책을 맡으면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최근 외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해 12월 보도에서 ‘김정철은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라는 최유력 포스트에 취임했음이 지난해 확인되었고, 리제강 제1부부장이 후견인으로 당내 권력 확대에 힘쓰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정성장 실장은 “과거 김정일이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임명되었을 때 나이가 만 27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해 들어 만 29세가 되는 김정철이 지금쯤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예전 같지 않고, 북한 지도부 내에서 ‘사실상의 장남’ 지위를 누리고 있는 김정철의 나이가 만 30세가 되는 2010년을 전후해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기 위해 올해부터 ‘영도의 계승’을 위한 준비 작업이 대내적으로 은밀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명의 복병이 등장하고 있다. 그는 장남 김정남도, 삼남 김정운도 아닌, 이복누나 김설송이다. 김설송은 김정일이 본부인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녀이다. 통상적으로 김정일의 부인을 거론할 때 지금의 김옥까지 포함해 4명이 언급되지만,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사망)은 정식 부인이 아닌 동거인이었다. 흔히 김영숙을 첫째 부인, 고영희(사망)를 둘째 부인으로 칭한다. 그중에서도 김일성의 정식 추인을 받고 혼인한 김영숙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출신 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의 정서상 해외 망명을 한 성혜림이나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와 비교되는 것이다.

김설송은 1974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36세이다. 김정남보다는 세 살 아래이고, 김정철보다는 여섯 살 위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여러 자녀들 가운데 김설송을 가장 총애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당과 군부 내에서도 역시 그녀에 대한 지지층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김정남과 김정철의 권력 암투가 불거져나온 것도 기실은 김설송에 대한 아버지의 지나친 편애에 대한 반발 차원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다. 용모가 빼어난 전형적인 ‘북한형’ 미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김정남과 김정철 등이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서구 문물에 물든 것을 북한의 원로 당 간부들이 탐탁잖아 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설송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녀가 맡고 있는 역할 때문이다. 그녀는 부친인 김정일 곁에 밀착하며 부친의 신상 및 신변 보호와 관련된 내부 깊숙한 일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그녀에 대한 김정일의 신뢰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지나치게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두고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지난 2003년을 전후로 해서 부쩍 김정일의 현지 시찰에 자주 동행해 ‘여성 후계자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한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 역시 고모인 김경희와 같은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경희가 부친인 김일성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이후 오빠인 김정일을 돕는 역할을 한 것처럼, 김설송 역시 오빠나 남동생의 권력 승계를 돕는 역할에 필요한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경옥, 전당 분야 제1부부장 자리에 오른 듯

최근 또 한 명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2008년 12월29일자 <로동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 (중략)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들인 장성택 동지, 김양건 동지,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 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들인 리용철 동지, 리제강 동지, 김경옥 동지, 리재일 동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차승수 동지를 비롯한 책임 간부들과 조선인민군 대장들인 현철해 동지, 리명수 동지를 비롯한 군대의 지휘 성원들이 공연을 함께 보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인물은 제1부부장으로 새롭게 소개된 김경옥이다. 그는 완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국내 보도에서 다소 혼선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경옥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 파악되고 있는 정보로는 1990년대 초부터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활동해왔고, 황병서 부부장과 함께 군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해온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력 탓에 일부 보도에서는 그가 조직지도부 내에서 리용철을 밀어내고 군 담당 제1부부장에 새롭게 오른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실장은 “조직지도부 내 제1부부장에는 네 자리가 있는데, 본부당을 리제강이, 군을 리용철이 현재 맡고 있고, 행정 분야는 장성택 부장이 맡은 이후 독립해서 나간 반면, 전당 분야가 그동안 공석이었다. 따라서 김경옥은 공석이던 전당 분야의 제1부부장에 올랐음이 유력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흔히 본부당 분야는 김정일을 제외한 중앙당 모든 간부들의 학습을 조직하고 당 생활을 주관하고 있는 막강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군사 분야는 인민무력부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이 관장하는 부대 내 당 조직선을 장악하고 있다. 전당 부문은 본부당과 군사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의 당 조직, 즉 국가 기구와 사회 조직 내 당 조직 그리고 지방당을 지도·통제하고 있다. 중요도 면에서 본부당과 군 분야에 이어 세 번째로 평가받을 만하지만 사실상 북한 사회 저변을 총 관장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볼 때 향후 후계 구도와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자리에 김경옥이 새롭게 임명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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