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드림’ 그늘에 방치된 ‘다문화’ 2세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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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매년 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미미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이방인으로 뒤처지는 이들의 실태를 알아보았다.

ⓒ시사저널 이종현

외국인 근로자 43만7천7백27명, 결혼 이민자 14만4천3백85명, 국제결혼 자녀 5만8천7명…. 행정안전부가 지난 2008년 7월 내놓은 통계 자료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국계 주민(불법 체류자 포함)은 현재 89만1천3백41명으로 전체 인구의 1.8%에 달한다. 농촌 지역에는 혼기를 놓친 총각들이 해외에서 짝을  구하는 국제 결혼이 성행하면서 피부나 머리 색깔이 다른 외국인 며느리들이 대거 등장했다. 농어촌 남성의 경우 현재 40% 이상이 외국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 노동자의 급격한 유입으로 단일 민족을 외쳐왔던 우리나라는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오는 2050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외국계 주민이 될 것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국제 결혼 부부나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한국 땅에서 태어나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지 못하는 2세들의 정체성 혼란은 커다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제 결혼 붐이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 가운데 일부는 벌써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성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대하는 편견에 쌓여 있다 보니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서지 못하는 2세들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정부는 그동안 결혼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지난 2008년 3월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2세들이 겪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정정희 경북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결혼 이주 여성 문제에 치우쳤던 정부 정책이 최근 2세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정상적인 학습 과정을 거치지 못해 학력 저하로 뒤처지고, 그로 인해 차별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차별로 인한 다문화가정 학령기 아동의 ‘탈 학교’ 현상 심각

서울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는 현재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어에서부터 영어, 수학, 미술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학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신혜영씨는 “아이들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가정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한국어가 서툴러 가정 통신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센터에서는 가정 지도가 불가능한 아이들을 모아 별도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학령기 아동의 ‘탈 학교율’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령기 아동 2만4천8백67명 중 24.5%인 6천89명이 정규 교육권 밖에 있었다. 이 중에는 학교에 입학했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입학 자체를 하지 않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이같은 경향은 상급 학교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초등학교의 경우 15.4%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으나 중학교는 39.7%, 고등학교는 69.6%로 그 수가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다. 원의원은 “상급 학교로 가면서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진학을 포기하거나 중도에 탈락하는 비율이 2배씩 높아지고 있다. 현황 파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태 조사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쳐다보는 사회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얼굴색이 다르다거나 부모의 이름이 조금 길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동센터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체첵(가명·10) 양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상당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몽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몽골에도 해가 뜨느냐” “말 타고 학교 가느냐” “집에 냉장고는 있느냐” 같은 말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것은 기본이다. 어떤 때는 “몽골 새끼 또 왔네”라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이로 인해 체첵 양은 한동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해야 했다.

그나마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학교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비자가 없거나 산업 연수생 비자가 만료된 외국인 근로자 자녀의 경우 언제 외국으로 추방당할지 몰라 아예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운 좋게 학교에 다닌다 해도 눈치만 살피다 하루를 보낸다.

특히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미등록 노동자 자녀는 출생 신고를 못해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추방을 면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결코 할 수 없다. 물론 의무 교육을 하는 고등학교까지는 비자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도 입학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학 진학이나 취업은 국적이 없어 아예 불가능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준식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관장은 “최근 비자가 없어 추방된 외국인 근로자 부모님들로부터 자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사회는 다문화로 변해가는데 다문화가정을 원만하게 수용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조혜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다문화가정 2세들의 상당수가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이지만, 몇 년 후에는 이들이 중·고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수용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자녀의 경우 28.7%가 현재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나 한국어 구사 능력 부족이 주요 원인이겠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1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석준 국가인권위 이주인권팀장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해 이루어진 다문화가정 2세의 경우 한국에 체류하거나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미등록 노동자 부부의 경우 일하러 간 사이에 자녀를 혼자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해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2세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라고 밝혔다.

“다문화가정 아이들만 따로 교육하는 것도 부작용 유발”

정부는 최근 다문화가정 2세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예산 부족이나 관련 조사 미비로 인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박난숙 보건복지부 다문화가족과 과장은 “현재 전국의 대학이나 종교 단체에 위임해 다문화가족 지원을 위한 센터를 운영 중이다. 어느 정도 성과도 보았다. 그러나 예산이 충분하지 못해 적극적인 지원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여러 부처가 제각각 다른 채널로 지원해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강한균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잘 다룬다면 이들 또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 같은 글로벌 인재가 우리의 다문화가정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가는 교육 현장도 있다. 경북 김천에 위치한 조마초등학교는 전교생 중 3분의 1이 ‘다솜이’(다문화가정 자녀의 별칭)이다. 교실이나 복도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각 나라의 인형이나 그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운동회와 같은 집단행사 때는 나라별 전통의상을 입은 가장행렬이나 다문화 음식 축제 등이 열리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 이태원동 보광초등학교 역시 다문화 교육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가 부족한 아이들을 모아 별도로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있다. 각 나라의 의상을 입고 발표하는 ‘어울림 한마당’이라는 행사와 함께 학생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며 공감대를 높여가나는 수업을 별도로 실시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자 입소문을 접한 외국 대사관 자녀들의 전학도 잇따르고 있다. 李 학교 진연 교감은 “최근 외국인 주민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꾸준한 교육과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아이들이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을 깨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문화가정 아동 학대, 누가 방치하는가

최근 3년간 신고 건수 3배 증가…영아 학대도 4.3%

한 살 배기 김 아무개 아기는 지체장애 2급인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빠는 엄마가 손으로 밥을 먹거나, 짧은 옷을 입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강압적으로 어머니를 통제했고,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마는 남편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아이 앞에서 유리를 깨고 물건을 던지곤 했다. 아기는 집안에서 내팽겨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요즘에는 영양실조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이대로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아기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보호 시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역시 한 살 배기인 이 아무개 아기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 허망하게 숨졌다. 아기는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자마자 다운증후군 장애와 함께 심장병을 앓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기의 장애를 알고 양육을 포기한 채 방치했다.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아동학대센터에 신고되었고, 센터에서는  심장수술을 했다. 그러나 아기는 숨지고 말았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는 1백84건에 달하고 있다. 그것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6년 29건에서 2007년 68건, 2008년 10월 현재 87건으로 3년에 만 3배로 급증했다. 1~6세의 미취학 아동들이 74명(40.2%)으로 가장 많았고, 7~9세 아이들도 49명(26.7%)이나 되었다. 심지어 1세 미만의 영아도 8명(4.3%)이 있었다.

원의원은 “현재 전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결혼 이민자에 대한 언어나 문화 교육에 치중하고 있어 2세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서둘러 인력을 보강해 2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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