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색’을 밝히지 맙시다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2.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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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시작해 여자로 끝나는 강원도에서의 5박6일 로드 무비

▲ 감독: 노영석 / 주연: 송삼동, 김강희
해장술에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말이 있다. 전날 과음하고 그 과음을 다시 술로 해결해보겠다는 한량(?)들이 해장술을 마신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이는 숙취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중에서 낮술을 먹을 수 있는 직업군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굳이 꼽으라면 언론사 기자나 국회의원 정도이다. 벌건 대낮에 먹는 낮술은 금방 취한다. 낮도 양(陽)이요, 술도 양(陽)이니 양과 양이 만나 대책 없이 취한다.

술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이다. 1996년에 개봉한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주연으로 나와 알코올 중독자 역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과도 헤어진 그는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마시고 또 마시고. 그러나 영화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여자가 주인공을 살린 것이다.

<낮술>은 독립영화이다. 제작비 1천만원을 들여서 후딱 만들었다고 한다. 노영석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작품이라고 말했다. 주연이나 조연 배우들도 초짜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작업이었지만 감독은 배짱 좋게 찍었다. 독립영화는 재미없다는 상식을 <낮술>이 깰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혁진(송삼동 분)은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신다. 친구들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강원도 정선으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하지만 막상 정선 버스터미널에 나타난 사람은 혁진 하나뿐이다. 그는 친구가 소개한 펜션에서 TV를 보며 술을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죽인다.

출연 배우들도 술을 마시며 찍었다

이때, 혼자 여행을 왔다는 옆방녀(김강희 분)가 나타난다. 그녀는 혁진에게 술을 사달라고 조르고, 소주도 아닌 양주를 사주고 나니 마시다 말고 사라진다. <낮술>은 한 장면을 길게 잡는 롱테이크가 많아 전체적으로 지루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꼬이고 꼬이면서 관객들을 웃긴다. 강릉 경포대 백사장에서 컵라면에 소주를 한 잔 마시면 죽인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실행에 옮긴다거나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는 설정이 계속 웃음을 자아낸다. 스크린도 낮술을 마신 것처럼 뿌옇다.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낮술>은 배우들이 술을 마셔가면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5박6일 동안 강원도에서 펼쳐지는 이 로드 무비는 노영석 감독의 경험담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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