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에 ‘엔진’ 달릴까
  • 심정택 (자동차 산업 전문가) ()
  • 승인 2009.02.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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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 두고 삼성 인수설 모락모락…“이학수 전 부회장 있는 한 힘들 것”

▲ 경기도 평택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살리기 범시민 결의대회’에서 시민들이 쌍용차 회생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완성차 사업은 대규모의 직접 고용 효과, 부품 협력 업체들과의 산업 연관 효과 때문에, 특정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작다 하더라도 쉽게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국의 사례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완성차업체들의 경영이 악화되면 해당 업체를 공기업화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에 넘어간 국내 자동차 3사 중 쌍용차가 처음으로 경영 위기에 봉착했다.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차가 지난 1월9일 쌍용차를 서울 중앙지법 파산부에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함으로써, 사실상 쌍용차 경영에서 손을 떼는 수순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은 법원이 상하이차의 기업 회생 절차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이다. 통상 기업 회생 절차는 채권자가 신청하는 것이 관례인데, 대주주가, 그것도 회사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상황에서 신청해도 되는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주주가 불순한 의도를 가졌을 경우에는 청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지만 완성차 사업의 특성상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아울러 성급하지만 쌍용차의 매각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냐를 놓고도 분분한 얘기가 나돈다. 물론 매각은 쌍용차가 매력적인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만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쌍용차 노조는 인력을 직접 감원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원활한 구조조정과 매각 작업(경영정상화)을 위해 경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할 법정관리인을 누구로 선임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문수 경기 지사, “삼성이 인수하면 좋지 않겠나”

이런 가운데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해주기를 희망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끈다. 김지사는 지난 1월14일 수원 아주대에서 가진 특강에서 “삼성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해서 맡아보라고 도지사로서 한 번 말해보고 싶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차도 좋아하고 돈도 있으니 이럴 때 쌍용차를 맡아서 성공시키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라고 밝혔다.  

유력한 여권의 정치인인 그가 굳이 구설에 오를 수 있는 발언을 한 배경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경기도의 최대 현안 중 하나로 떠오른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자는 직설적인 표현이냐, 아니면 삼성측과 교감을 갖고 삼성의 의지를 반영했느냐 하는 것이다.

삼성은 1월 들어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의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4분기 9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 손실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본사 인력 1천2백명을 현장 부서에 배치했고, 임원 100여 명을 퇴직시켰다. 휴대전화, LCD 외에는 신수종 사업을 찾지 못한 삼성전자의 당연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삼성의 구조조정은 이번 한 번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이재용 체제의 후계 구도와도 맞물려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으려면 기업에게 대형 신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그 프로젝트를 쌍용차 인수를 통한 자동차 사업의 재진출로 보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할 때도 그룹이 일치 단결해서 자동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 사업 추진파들은 초기에는 사업 자체보다는 그룹 내 반대파들을 설득하는 데 골몰했다. 최근의 일부 인터넷 매체 보도를 시발로 불거지기 시작한 삼성의 쌍용차 인수설은 그룹 구심점을 찾기 위해 내부 여론 동향을 살펴보고 외부 반응을 떠보기 위한 삼성측의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쌍용차 인수하면 르노삼성자동차도 손에 넣을 수 있어

▲ ‘쌍용차 살리기 범시민 결의대회’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시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삼성의 쌍용차 인수설의 또 다른 배경이 삼성그룹을 둘러싼 최근 국내 정치 및 경제적인 환경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삼성에 우호적이다. 지배 구조 및 금산 분리 완화, 방송법 개정을 통한 중앙일보의 공중파 방송 진출 가능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친삼성적인 정책에 삼성측에서 무엇인가 답례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삼성이 부실화한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키워나간다면 그런 흐름에서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쌍용차 내부에서는 상하이차의 갑작스런 법정관리 신청이 상하이차와 삼성 간의 교감 끝에 이루어졌다는 소설 같은 얘기도 나온다.

삼성카드가 지분 19.9%를 가지고 있는 르노삼성차는 2010년 이후 삼성 상표 및 로고 사용을 삼성측이 재연장해주지 않는 한 사용하지 못한다.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할 경우 언제라도 ‘삼성자동차’의 재탄생은 가능한 것이다. 삼성은 2000년 옛 삼성자동차를 매각할 때 르노측의 요구에 의해 지분 참여를 했다. 르노가 시장에서 삼성 상표를 사용하지 못해 결국, 르노가 르노삼성차를 매각할 경우에는 삼성측에 우선 매수 의사를 묻도록 되어 있다.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한다면 이를 지렛대로 르노삼성차까지 되찾아 오는 구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GM대우는 자금난에 빠져 있는 GM 본사의 방침만 정해지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삼성이 마음만 먹으면 손에 넣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그랜드 플랜을 추진할 자동차 사업 핵심 인력이 삼성에 없다는 데 있다. 삼성그룹은 2000년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이후 자동차 사업 경험이 있는 경영진 대부분을 그룹에서 퇴출시켰다. 당시 삼성차 기획 부문에 근무했던 과장, 차장급들 일부가 상무급으로 승진해서 그룹에 잔존해 있을 뿐이다.

이들 극소수의 인력들만으로는 자동차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삼성을 떠난 인력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출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인사는 “삼성에는 두 명의 회장이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학수 전 부회장이 삼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한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부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가 오면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후 전략기획실장)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자동차 사업의 포기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시 그룹 사내 방송을 통해 삼성의 자동차 사업 철수를 ‘작전상 후퇴’라는 뉘앙스로 표현해 재추진 여지를 남겨놓았다.
 


▲ 소진관 전 쌍용차 사장. ⓒ시사저널 임준선
쌍용차의 법정관리인이 누가 되느냐는 향후 쌍용차의 처리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어 업계의 최대 화두이다.
업계에서는 채권자협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거나 상하이차와 반대편에 설 수 있는 인물이 법정관리인으로 적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원 파산부는 현재까지 최형탁 쌍용차 직전 사장, 곽상철 생산품질 전무 등 현 경영진, 소진관 전 사장, 최형기 전 부사장 등 모두 10여 명을 대상으로 후보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소 전 사장은 당초 대주주인 상하이차측이 주한 중국 대사관을 통해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밝혀 후보에서 배제되었으나, 김문수 경기도 지사의 추천을 받아 면접을 보았다고 한다. 현재 유력한 법정관리인으로 물망에 오른 인물은 4명 정도이다. 이들은 대부분 쌍용차에서 대표이사나 고위직 임원을 지냈다. 손명원 전 쌍용차 사장은 1987년 말부터 약 9년간 두 번에 걸쳐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오늘날의 쌍용차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지만 과도한 투자로 인해 쌍용그룹을 무너뜨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 전 사장의 과다 투자가 소진관 사장 시절 호실적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승모 현 솔트웍스 대표이사는 1986년 쌍용 그룹이 동아자동차(쌍용자동차)를 인수할 때 총괄 실무를 담당한 쌍용측 임원이었다. 그는 글로벌 종합 자동차 메이커를 지향했던 손명원 사장과는 달리 ‘선택과 집중’의 효율적인 투자를 주장했다. 당시 정승모 상무의 의도대로 갔다면 과잉 투자로 인한 그룹 붕괴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고가 합리적이며 포용력과 협상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쌍용차를 떠난 1999년 주거래 은행인 조흥은행 경영진에 의해 쌍용차 사장 후보로 거론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서울대 상대 후배이면서 쌍용그룹 입사 후배인 소진관 사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정승모 대표는 윤증현 재정기획부장관,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 서울고 동기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소진관 전 사장은 영업, 관리, 기획 등 주요 부문을 경험했으며 쌍용차를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경영인 출신으로 쌍용차 내 저변이 두텁다. 재임 기간(1999년 말~2005년) 동안 역대 최대의 실적을 올렸지만 전임 사장들의 투자, 시장 상황 호조에 힘입은 바 크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그는 시장 개척, 제휴 등 해외 사업 부문에 약하고 노조와 쉽게 타협하는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비록 은행 관리 하에 있기는 했지만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최종 책임자라는 점에서 눈총을 받고 있다.

 최형기 전 재무기획 담당 부사장은 정통 재무통으로 쌍용차의 워크아웃 시절인 2001년 말 총 1조2천억원에 이르는 금융권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해외 신시장을 개척해 판매 볼륨을 확대하고 경영을 안정 국면으로 돌려 나름으로 역량을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편, 정부에서도 지식경제부·노동부·산업은행이 공동으로 파산부에 법정관리인 후보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 추천 인사는 쌍용차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상하이차는 법정관리 신청 대리인인 로펌 ‘세종’을 통해, 소진관 전 사장, 최형기 전 부사장을 거부하고, 현 쌍용차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으로 선호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상하이차는 법정관리 결정이 내려지면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쌍용차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심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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