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는 뭔 가 특별한 것이 있다
  • 교토·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2.0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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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도 교토에는 닌텐도·교세라·삼코 같은 초우량 기업이 즐비하다. 독특한 기업 문화와 경영 전략으로 무장한 이들은 경제 위기에도 아랑곳없이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


일본의 고도 교토에는 닌텐도·교세라·삼코 같은 초우량 기업이 즐비하다. 독특한 기업 문화와 경영 전략으로 무장한 이들은 경제 위기에도 아랑곳없이 흑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빠져나오는 데도 이들 ‘교토식 기업’의 역할이 컸다. 무엇이 그들을 불황도 비켜가는 철옹성으로 만들었을까. 그 비결을 현지에서 알아보았다.

교토는 중세 일본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보존된 유적 도시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17점이 이곳에 몰려 있다. 교토에는 전통 축제인 마츠리가 계절마다 끊이지 않는다. 옛 일본 국왕 행렬을 재현하는 아오이마츠리는 6세기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지금도 시라카와 개천을 따라 옛 가옥이 늘어선 기온 거리를 걷다보면 기모노 차림의 일본 기생 게이샤(기생)와 마이코(예비 기생)가 눈에 띈다. 일본인은 교토를 ‘일본의 보물들이 보석처럼 뿌려져 빛나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연합군도 교토 폭격을 삼갔다. 문화유산 못지않게 일본에게 소중한 존재가 교토 곳곳에 보석처럼 뿌려져 있다. 일본 전통문화의 정수가 올곧이 보존된 교토에 첨단 기술과 제품 경쟁력으로 무장한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들이 산재해 있다.

종업원 1인당 이익이 1백60만 달러나 되는 세계 최고의 게임업체 닌텐도와 매출액 1조2천억 엔(회계연도 2008년 4월~2009년 3월), 순이익 5백60억 엔에 이르는 세계 최고 전자부품업체 교세라가 교토 남부 고도산업 집적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교세라 옆에는 세계 최고의 박막성형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 삼코가 있다. 음향용 전자부품 세계 1위 업체 니치콘의 본사가 교토 중심가 카라스마 오이케 지하철역 옆에 있다. 교토역 옆에는 제어기기와 전자부품 선두 업체 옴론 본사가 있다. 일개 주임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계측분석기 세계 1위 업체 시마즈 제작소의 본사는 교토 시내 중심지 산조에 위치해 있다. 세라믹축전지 세계 1위 무라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용 회전축모터 세계 1위 니혼덴산, 엔진 배기가스 계측기 1위 업체 호리바, 집적회로(IC)와 반도체 장치업체 롬의 본사도 교토에 있다. 게임 개발업체 토세나 가스농도 제어 기술업체 코프록 같은 벤처기업들도 교토의 좁은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장기 불황 때도 일본 대표 기업군보다 2~4배 높은 매출 올려

스에마쓰 지히로 교토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저서 <교토식 경영(Kyoto Style Management)>에서 이 기업군을 ‘교토식 기업’이라고 불렀다. 쓰에마스 교수는 “교토식 기업은 독특한 기업 문화와 경영 전략으로 전세계 전기전자 부품, 정밀 기계, 게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장기 불황에 허덕일 때도 교토식 기업군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매출과 수익 증가율은 도시바, 히다치, 미쓰비스, 마쓰시타, 소니로 대변되는 일본 대표 기업군보다 2~4배 높았다. 그래서 교토 기업군은 일본이 장기 불황을 이겨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 못지않은 경제 위기를 다시 맞고 있다. 미국 비우량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는 전세계 실물 경제를 불황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가진 일본 경제에게 전세계 불황은 치명적이다. 지난해 4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0%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차 오일쇼크 여파로 1974년 1분기 마이너스 13.1%를 기록한 이후 34년만에 두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기업의 수출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6.7% 줄었다. 무역 수지는 9백34억 엔 적자를 기록했다. 전자업체 소니가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소니는 1만8천명을 해고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 도요타자동차도 창사 이후 71년 만에 첫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자동차, 전기전자, 증권·보험업을 가리지 않고 일본의 모든 산업이 적자로 반전되고 있다.

▲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 씨가 강연하고 있다. 그는 교토에 본사를 둔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이었다. ⓒ연합뉴스

위기에 항시 대비…사업부 정리·정리해고도 없어

‘어닝 쇼크’로 일본 열도가 들썩이고 있으나 교토는 의외로 침착하다. 교토식 기업군은 마치 예상한 일처럼 위기를 일상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쓰지 오사무 삼코 사장은 “교토식 기업은 늘 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해 경영 전략을 짜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토식 기업군 가운데 사업부 정리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곳은 없다.

교토식 기업군도 경제 위기 탓에 실적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매출과 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교토식 기업군이 발표한 2008년 회계연도 실적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전자업체로부터 부러움을 살 만한 대규모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교세라가 지난 1월29일 발표한 2008년 회계연도 실적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3.2%와 83.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폭이 줄었지만 영업이익 전망치는 2백50억 엔(3천8백억원가량)이나 된다. 무라타의 2008년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지난 연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65.4%가 줄었지만 여전히 4백억 엔이나 된다. 교토식 기업군 다수는 100억 엔이 넘는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같은 일본 대표 전자업체들이 같은 기간 1천억~2천6백억 엔이나 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교토식 기업의 실적은 경이롭다.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교토식 기업에 주목했다. 교토식 기업군이 지닌 경쟁력을 연구해 위기 극복 방안을 찾고자 한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일본이 장기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처럼 일본 경제는 다시 교토식 기업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교토식 기업이 지닌 위기에 대한 내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교토식 기업은 현 경제 위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그에 대한 답변을 찾고자 교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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