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치르는데 반갑지 않은 낯익은 얼굴?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2.1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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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MB 악법’ 저지에 정동영 새 부담

▲ 제13차 민주정책포럼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맨 왼쪽)가 축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2월임시국회에서 민주당 앞에 놓인 난제는 크게 두 갈래이다. 하나는 여당과의 입법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출마 움직임에 따른 당내의 분란 가능성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로 받아들여지는 4월 재·보선 고지를 앞둔 두 전선에서 사태가 어떻게 풀려나가는지에 따라 민주당이 원내 제1야당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느냐, 아니면 거대 여당 앞에서 무기력한 야당으로 전락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먼저 입법 전쟁. 연말 연초 1차 입법 전쟁에서 민주당의 무기가 의사진행 방해 또는 물리적 저항이었다면 2차 입법 전쟁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반MB 전선’으로 요약된다.

민주당이 2월 국회를 ‘용산 국회’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용산 참사를 계기로 뚜렷하게 형성된 야권의 ‘반MB 전선’을 이번 입법 전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 개회를 하루 앞둔 지난 2월1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 3당 및 시민단체들과 연대해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주요 야당들과 시민사회가 공동 주최한 대규모 거리 집회는 1987년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중심이 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6월 항쟁 이후 22년 만이다. 범야권의 공조를 통한 대정부 압박이 바로 민주당의 핵심 전략임을 알 수 있다. 용산 참사의 불꽃이 쟁점 법안에 대한 문제 제기로 옮겨붙기를 바라는 것이다.

용산 참사 이슈로 야 4당 똘똘 뭉쳐

▲ 청계광장에서 열린 ‘폭력 살인 진압 규탄 및 MB 악법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에서 야 4당 지도부와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야권은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공안 통치, 속도전이 만들어낸 참극이다”라는 공동의 인식 아래 똘똘 뭉쳐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진압 책임자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문책을 거부하고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공공연히 내비침에 따라 당분간 야권의 결속이 느슨해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같은 결속 분위기는 ‘MB 악법’ 저지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 4당과 시민단체 간 ‘MB 악법’ 저지를 위한 공동 토론회 등이 2월 내내 줄줄이 잡혀 있다. 6일 주거복지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시작으로 13일 노동법 개정 토론회, 19일 교육세 폐지와 안정적 교육 재정 확충을 위한 결의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이 행사들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이 공동 주체로 참여한다.

하지만 ‘반MB 전선’ 효과는 민주당도 자신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결국, 쟁점 법안은 표결과 다수결이라는 의회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처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내에서도 민노당, 진보신당과 같은 좌파 진영과 손을 잡고 장외 투쟁을 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의 60세 이상 원로 의원 모임인 ‘민주 시니어’ 소속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당 지도부와 386 세대 등 민주당 주류에서는 여권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에 대한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반대 야당’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더 강하다. 원혜영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민간 파시즘의 그림자’ 같은 격한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이같은 기류가 확인된다. 다만, 투쟁의 수위는 여당이 연말 연초처럼 국회의장 직권상정 같은 전면전으로 몰고 가느냐, 아니면 상임위 별로 국지전을 전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동영 고향 출마에 “당에 아무 도움 안 된다”

이런 와중에 당내에는 또 하나의 빨간불이 깜빡거리고 있다. 바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4월 재·보선 출마 움직임이다. 정 전 장관은 대선과 총선 패배 뒤 미국 듀크 대학에서 연수하며 정치적 앞길을 암중 모색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연말부터 출마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더니 2월에 들어서는 주변에서 출마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이르면 이달 중순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정 전 장관이 출마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정 전 장관이 출마하면 15·16대 때 자신의 지역구였던 전주 덕진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정 전 장관의 전주 출마는 재·보선 전체 구도를 흔드는 변수라는 점에서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수도권 재·보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텃밭인 전주에서도 참신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전주 재·보선 2곳 중 한 곳을 정 전 장관이 차지하면 이래저래 정세균 대표의 선택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또, 정 전 장관이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는 고향 덕진으로 출마하는 것도 논란이다. 정대표 주변의 386 세대 측근들은 “본인이나 당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라며 고개를 젓는 분위기이다.

정 전 장관 출마가 현실화하면 당내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대표는 그동안 뉴민주당 플랜과 인재 영입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어내 침체되었던 민주당을 부활시키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 행간에는 이를 통해 자신이 야권의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정대표 입장에서 보면 정 전 장관의 복귀는 예상보다 빨리 경쟁자가 돌아온 것이 된다. 정대표와 정 전 장관은 둘 다 지역 기반이 전북으로 잠재적 경쟁 관계이다.

현재 정 전 장관 주변에서는 “당권과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다시 출발하고 민주당에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라는 ‘로우키(low key)’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정치인이 원내로 진출할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정 전 장관측 논리는 다분히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재·보선 출마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정치적 선택인 만큼 남이 대놓고 해라 마라 하기 어려운 사안이어서 본격적인 권력 투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정대표 주변 386 측근들의 거부감이 의외로 강한 것은 변수이다. 정대표의 최측근인 최재성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권 탄생에 우리의 잘못도 있는 상황에서 당원과 국민을 설득하는 데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라면서 완곡 어법으로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은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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