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만도 못한 비행장 ‘안보 보수’들 속이 터진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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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 진술인 참석 외압설에 불쾌감 드러내…‘경제 보수’와 균열 조짐

▲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건축 사업과 관련한 공청회에서 박연석 공군 제15혼성비행단장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군선배로서 부끄럽다.” 지난 2월3일 오후 국회 본청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와 관련한 공청회.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진삼 자유선진당 의원이 전·현직 군 장성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지난 정권에서 줄곧 반대해온 사안이 현 정권 들어 찬성으로 뒤바뀐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여기에 ‘신축 허가’에 반대하는 진술인으로 참석할 예정이던 예비역 장성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외압 의혹까지 불거져 비판 강도를 더했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과 최명상 전 비행단장, 김규 전 방공포사령관 등은 공청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위에 불참을 통보해왔다. 결국, 공청회는 당초 예정보다 2명이 적은 8명의 진술인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의원은 “최 전 단장과 김 전 사령관은 성우회로부터 직접 추천을 받았는데 갑작스럽게 공청회 불참 의사를 밝혀왔다. 대단히 불쾌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공청회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용서할 수 없다”라며 외압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은 ‘현역 공군 후배들이 워낙 완강하게 압력을 넣는다’라고 이 전 총장이 답변했다면서 “어떻게 군이 국회 국방위의 공청회 참여 자체를 방해할 수 있느냐”라고 따졌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도 ‘불참’ 통보

▲ 해병대전우회(위) 등 보수 단체들이 안보 관련 법 재·개정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공청회가 일찌감치 주목받은 이유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 세력인 보수 진영 내에서 정부의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 방침에 반대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군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를 비롯해 대령연합회가 주축이 된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 단체들은 경제 논리에 안보가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며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이정린 성우회 사무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권에서도 해결이 안 되었던 것인데 지금 와서 허용하는 문제는 또 안보를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양영태 국민행동본부 부본부장도 “제2롯데월드는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결코 신축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히면서 이상희 국방부장관의 ‘무소신·무신념’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명박 정권의 주 지지층인 보수 세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정통 보수를 자처해온 ‘올드 라이트’와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내건 ‘뉴 라이트’이다. 강경 보수, 아스팔트 보수로 불리는 정통 보수는 국가 안보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안보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한·미 관계와 대북 정책 등에 민감하다. 이에 반해 새로운 보수는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과 선진화를 강조하는 ‘경제 보수’ 성격이 강하다. 규제 완화와 개발 정책 등에 관심이 많다.

제2롯데월드 문제에는 ‘안보 보수’가 현 정권의 집권 1년차를 지켜보면서 내린 평가가 녹아들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살리기에 사활을 걸며 ‘경제 올인’에 나선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이 이번 일을 계기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조 보수’로 불리는 김용갑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진단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김고문은 “보수 정권이 들어와서 우리의 안보 문제가 외면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하면서 “아이러니하다”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안보 보수’의 선택에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김고문은 “만일 좌파 정권에서 지금처럼 활주로를 3˚ 틀어서 허용해주겠다고 했다면 보수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라고 예상하면서 “보수에서 이루어진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 곤혹스럽다”라고 토로했다.

“보수 정권 들어와 안보 문제 외면당하는 느낌”

국회가 공식적으로 마련한 공청회에 참석 여부를 오락가락한 성우회 소속 예비역 장성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10년 만에 들어선 보수 정권의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느냐는 진영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반대 입장에 선 대표적인 군 인사들이 공청회에 나오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폭발할 듯이 보였던 보수 진영 내의 불만은 일단 수그러드는 분위기이다. 반대 입장을 보여온 보수 단체들도 일단 지켜보자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현 정권의 안보 인식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재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2롯데월드 문제는 여전히 보수 진영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정국의 흐름이 논란을 키워나갈 가능성도 크다.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안보 게이트’로 규정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노영민 대변인은 “국가 안보조차 재벌의 이익에 종속되는 하위 개념이라는 선언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는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해 4월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군이 허용한다고 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의 경우 친박 의원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이같은 부정적인 기류는 향후 제2롯데월드 신축에서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우리 군의 전략적 기지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면 ‘안보 보수’도 침묵을 깨고 다시 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권이 지지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시키면서 보수의 분열을 막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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