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보는 한국의 ‘88만원 세대’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
  • 승인 2009.02.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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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의 실업 문제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젊은이들이 정규 취업 대신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했다. 이웃 일본에서 우리

▲ 관련 기사가 실린 지면.

‘88만원 세대는 한국 젊은이의 대명사로서 정착되었다. 한국 청년 세대의 현실을 고발해 2007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경제학자 우석훈씨의 책에서 이 단어가 비롯되었다.’

88만원이란 비정규직의 평균 소득이 월 1백10만원(약 8만 엔), 20대의 평균 소득이 그 윗세대의 약 73%인 점에서 ‘88만원(약 6만 엔)’으로 산출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의 최저 임금은 시급 3천7백70원(약 2백62 엔), 주 40시간 노동에 78만7천9백30원(약 5만5천 엔)으로 88만원은 최저 임금보다 조금 많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1시간 일하면 식비가 나온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빅맥(맥도날드 햄버거)도 못 먹는다.’ 한국 청년들의 사정을 잘 아는 작가 아메미야 소린 씨는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아메미야 씨는 “젊은이를 둘러싼 상황은 이미 한계에 왔고, 빈곤도 사회 구조적인 것인데도 ‘내 잘못이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일본과 비슷하다”라고 동정한다.

‘모든 원흉은 1997년의 외환위기’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가 된 1997년 IMF 위기에서 당시 김대중 정권은  ‘정리 해고법’ ‘노동자 파견법’을 제정해 비정규 노동자를 대거 양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의 길로 나뉘는 노동자의 계층화가 심화되었다. 현재 청년의50~60%는 비정규 노동자이며 더욱이 삼성, LG 등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올해 대졸자는 불과 5%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현재도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보다 높다.

 한국 경제가 전문인 타카야스 유이치 츠쿠바 대학원 부교수는“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고용주들 사이에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나서 그것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최근까지도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해고 통지를 보내는 일이 빈발했던 것도 이런 공포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비정규 노동자의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07년 7월 제정한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해 ‘악법’이라는 비판이 자자하다. 2년 이상 근무한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그 전에 비정규 노동자의 해고가 빈발해, 있으나마나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림 김형건
일본의 20대도 취업 문제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일본의 월간지 <도요게이자이>가 최근호에서 20대 남녀 1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소개한다.

설문에 응한 1천명의 월평균 수입은 15만4천5백 엔이다. 이들은 20대 초반에 부모와의 동거 비율이 75%를 넘기 때문에 집세 등 고정 비용 지출이 적어 오히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다른 세대에 비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매달 저축이나 투자에 2만 엔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20대 소비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잡화’ 소비이다. 소비가 대량화하면서 값싼 물건을 자기 나름대로 사모으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금의 20대에게는 고액 상품을 사는 소비 행동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고액 상품 구매, 극단적으로 줄여

덴츠 광고연구소의 리서처 다나카 리에 씨는 “최근의 20대는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고 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잡지 모델 등 목표로 하는 대상이 있어 그것을 향해 단계적으로 다가서는 소비 행동이 주류였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에게는 롤 모델이 없다.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으니까 현실에 만족한다. 따라서 소비 활동이 더 늘어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최근에는 20대를 중심으로 그 아래 위 계층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소비 면에서도 ‘로스트 제네레이션’이 되고 있다. 향후 그들이 인생에서 돈을 많이 쓰는 30~40대가 되었을 때 일본의 내수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림 김형건
원래 20대는 일생에서 나름으로 원대한 희망과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원기 왕성하게 도전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요즘 25~29세의 젊은이들이 원하는진로를 찾아가기에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성공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좌절과 고통,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서 인생의 동력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현실 사회와 부딪치고 있다. 날로 움츠러들고 있는 한국의 20대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가 실시한 ‘2008 대한민국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20대, 그중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25세에서 29세까지의 젊은이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취업 문제이다.

20대는 일자리를 찾는 데 대기업 선호도를 뚜렷이 나타냈다.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며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대기업 선호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인크루트는 지난해 업종별 10대 기업 1백30개사에 지원했다가 낙방했거나 진행 중인 구직자 5백33명을 대상으로 내년에도 다시 응시하겠는지를 질문한 결과 85.9%가 내년 공채를 준비하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재수를 해서라도 사회생활의 시작을 대기업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취업을 대기업 입사를 위한 전 단계로 생각하는 20대들도 많다. 인크루트가 지난 1월14일에서 21일까지 중소기업 3백4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8년 입사한 신입사원의 36.6%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회사 관계자들은 퇴사의 이유로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38.4%)를 첫 손에 꼽았지만 조건이 더 좋은 회사에 합격되어 떠났다는 응답도 15.7%였다. 취업 이후에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대기업 입사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 20대의 63%가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라고 답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급여보다 안정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라는 응답자가 다른 세대에 비해 적게 나온 결과에 수긍이 간다.

외환위기도 10대 후반에 맞아 잘 몰라

20대가 가만히 앉아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사투는 그야말로 험난하다. 그렇다 보니 대학 입학 때부터 취직 경쟁에 내몰려 낭만을 잃어버린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대표적인 징표가 영어실력이다. 1학년 때부터 취직용 영어 시험에 몰두하다 보니 TOEIC의 경우 8백점대를 넘기는 고득점자를 양산해냈다. 결국, 영어의 변별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문화 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은 20대를 특징 짓는 또 하나의 주요한 키워드이다. 지금의 20대는 문화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들이 10대를 보낸 1990년대는 서태지가 등장했고, 한국 영화의 부흥기가 도래하며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2000년대에 20대를 맞이해 시대 흐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10대 후반에 맞이한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지난 1월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소비 행태의 변화와 시사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황에도 20대 가구는 문화·레저 비용을 거의 줄이지 않았다(2.7%). 30대의 28.1%, 40대의 16.0%, 50대의 19.3%가 문화·레저 비용을 먼저 줄인 것에 비하면 큰 대조를 보인다.

홍성태(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20대의 소비 성향이 외부의 충격에도 잘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식 자녀 교육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심지어 자녀가 취업한 뒤에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경우가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층의 경제 관념이 부족하고 경제난 등 외부의 충격이 커져도 소비 성향이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25~29세 층이 돈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지만, 이를 위해 점심을 편의점에서 때우며 돈을 아낄 줄도 안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할인기간을 이용해 제품을 구매’하고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이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빈도도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의 이승현씨는 “19~24 세대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사는 경향이 있지만, 25~29 세대는 쿠폰이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30~39 세대에도 없는 특징이다”라고 밝혔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어 살고 있는 20대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결국, 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승현씨는 “제품을 파는 기업 입장에서 25~29 세대가 매력적인 소비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교수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해 소비 활동을 하던 20대가 스스로 경제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30대 백수로 넘어가고 금융 대란으로 부모 세대의 경제력 마저 흔들릴 경우 심각하게 사회 문제화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것은 부자 시절의 소비성향이 3년 간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경제 관념이나 생활관 등을 전반적인 사회 구조 차원에서 바람직하게 이끄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할 필요가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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