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 문화 생활은 한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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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한국 청년 라이프스타일 / 부모에게 의지하며 성장해 소비 성향 커

ⓒ그림 김형건

원래 20대는 일생에서 나름으로 원대한 희망과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원기 왕성하게 도전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요즘 25~29세의 젊은이들이 원하는진로를 찾아가기에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성공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좌절과 고통,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서 인생의 동력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현실 사회와 부딪치고 있다. 날로 움츠러들고 있는 한국의 20대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가 실시한 ‘2008 대한민국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20대, 그중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25세에서 29세까지의 젊은이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취업 문제이다.

20대는 일자리를 찾는 데 대기업 선호도를 뚜렷이 나타냈다.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며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대기업 선호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인크루트는 지난해 업종별 10대 기업 1백30개사에 지원했다가 낙방했거나 진행 중인 구직자 5백33명을 대상으로 내년에도 다시 응시하겠는지를 질문한 결과 85.9%가 내년 공채를 준비하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재수를 해서라도 사회생활의 시작을 대기업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취업을 대기업 입사를 위한 전 단계로 생각하는 20대들도 많다. 인크루트가 지난 1월14일에서 21일까지 중소기업 3백4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8년 입사한 신입사원의 36.6%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회사 관계자들은 퇴사의 이유로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38.4%)를 첫 손에 꼽았지만 조건이 더 좋은 회사에 합격되어 떠났다는 응답도 15.7%였다. 취업 이후에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대기업 입사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 20대의 63%가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라고 답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급여보다 안정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라는 응답자가 다른 세대에 비해 적게 나온 결과에 수긍이 간다.

외환위기도 10대 후반에 맞아 잘 몰라

20대가 가만히 앉아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사투는 그야말로 험난하다. 그렇다 보니 대학 입학 때부터 취직 경쟁에 내몰려 낭만을 잃어버린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대표적인 징표가 영어실력이다. 1학년 때부터 취직용 영어 시험에 몰두하다 보니 TOEIC의 경우 8백점대를 넘기는 고득점자를 양산해냈다. 결국, 영어의 변별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문화 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은 20대를 특징 짓는 또 하나의 주요한 키워드이다. 지금의 20대는 문화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들이 10대를 보낸 1990년대는 서태지가 등장했고, 한국 영화의 부흥기가 도래하며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2000년대에 20대를 맞이해 시대 흐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10대 후반에 맞이한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지난 1월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소비 행태의 변화와 시사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황에도 20대 가구는 문화·레저 비용을 거의 줄이지 않았다(2.7%). 30대의 28.1%, 40대의 16.0%, 50대의 19.3%가 문화·레저 비용을 먼저 줄인 것에 비하면 큰 대조를 보인다.

홍성태(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20대의 소비 성향이 외부의 충격에도 잘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식 자녀 교육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심지어 자녀가 취업한 뒤에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경우가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층의 경제 관념이 부족하고 경제난 등 외부의 충격이 커져도 소비 성향이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25~29세 층이 돈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지만, 이를 위해 점심을 편의점에서 때우며 돈을 아낄 줄도 안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할인기간을 이용해 제품을 구매’하고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이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빈도도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의 이승현씨는 “19~24 세대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사는 경향이 있지만, 25~29 세대는 쿠폰이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30~39 세대에도 없는 특징이다”라고 밝혔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어 살고 있는 20대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결국, 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승현씨는 “제품을 파는 기업 입장에서 25~29 세대가 매력적인 소비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교수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해 소비 활동을 하던 20대가 스스로 경제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30대 백수로 넘어가고 금융 대란으로 부모 세대의 경제력 마저 흔들릴 경우 심각하게 사회 문제화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것은 부자 시절의 소비성향이 3년 간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경제 관념이나 생활관 등을 전반적인 사회 구조 차원에서 바람직하게 이끄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할 필요가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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