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관능미의 참을 수 없는 유혹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9.02.1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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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광기’ 발산하는 <구스타브 클림트 전>

▲ . 팜므파탈의 운명적 비장미를 엿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음악이 세계 최고의 수준과 역사적 위상을 지니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한다. 미술도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워낙 음악의 명성이 화려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미술이 가려져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합스부르크가의 자존심이 담긴 빈 미술사박물관의 방대한 소장품들이나 벨베데레 오스트리아갤러리의 근·현대미술 소장품, 오스트리아의 저력을 보여준 분리파(Secession)의 자유로운 예술 창작을 향한 열정과 혼이 담긴 분리파전당 등 몇 가지만 보더라도 오스트리아의 미술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근·현대 미술의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이다. 클림트의 천재성과 광기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의 명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현대미술사를 풍미했던 피카소와 뒤샹 같은 거장들은 상대적으로 시들해지는 느낌이 있는 반면, 클림트를 필두로 에곤 쉴레, 클로만 모저와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분히 전환기적 탈근대 명제가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고, 아울러 그 원형의 모습을 그들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면서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클림트 전>이 지난 2월3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클림트 전>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왔던 터이다. 실제로 클림트의 작품이 많이 흩어져 있고, 블루칩으로서의 희소성 때문에 수집해 투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앞으로 100년간 클림트 작품 투어는 없다고 벨베데레측에서 공언했다는 말이 과장이라 해도, 주옥같은 회화 작품 37점과 그 밖의 다양한 드로잉들이 다수 포함된 전시 구성은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전시임이 분명하다. 특히 투어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벽화 <베토벤프리즈>가 예술의전당 전시실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림을 어느 정도 알고, 또 <베토벤프리즈>가 가지는 여러 조건들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놀랍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동시대 대중이 클림트에게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대담하고 도발적인 여체 묘사? 물론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화면 짜임새나 내용들이 작가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물론 조금 상투적인 진술이다. 외설과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듯한 여체의 포즈나 묘사가 사진에 의존한 모사나 단순한 재현을 뛰어넘는 생명력과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디트 시리즈에서 보듯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여체와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다. 재현성 자체가 풍부하면서도 사진과는 전혀 다른 생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클림트만의 탄탄하면서도 자유로운 구성과 감각적인 필치가 아니라면 생각하기 힘들다. 이토록 원초적 감성과 욕구에 소용돌이를 일으킴과 동시에 꿈꾸는 듯한 환각과 주술적인 흡입력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누드 그림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클림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평균적인 이성과 사유, 보통의 일상을 누린 작가는 아니다. 여성에 대해, 아니 욕망적인 사랑에 저항하려는 금욕이나 억압 같은 것은 그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애인과 사생아들, 그러면서도 발작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모친과 여동생에게 바치는 가족애의 단면은 작가 내면 자체도 분열 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전조로 비친다. 어떤 강박관념이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환영들, 그리고 계속 도덕적 아노미를 책망하는 환청들에 시달리는 클림트의 일상…. 항상 다층적인 구성이나 중첩적 재현들은 비밀스럽고 비의적이면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복잡하면서 진지한 내면을 엿보게 하는 대목들이다.

우수에 젖은 비극적 예술성 숨어 있어

그의 그림에 흔하게 등장하는 금부로 된 황금빛 패턴들이야말로 클림트 그림의 화려한 장식적 국면이다. 클림트의 작품을 말하면서 ‘토털 아트’라 불리는 총체성 혹은 개방적인 양식이 주는 해방감과 강렬한 인상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화면에서 보듯 금빛 찬란한 금부가 절묘하게 밀착되어 있다.

속된 말로 ‘야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장식적 구성은 아카데미의 오랜 올무와 사슬을 끊는 해방적 딜레마였다. 장식적 요소마저도 과감하게 수용하고자 하는 개방성의 제스처이자 아이콘들이 당시 빈 화단에서 쉽게 수용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번득이는 천재성을 인정받으면서도 야유와 조소를 자초하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을 고집스럽게 관철시킨 클림트의 도전과 실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클림트가 중심이 된 분리파의 핵심은 오랜 전통의 그늘에 은거하는 아카데미의 유령들을 추방하고 도발적으로 새롭고도 참신한 미의식을 자유롭게 펼치고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공예나 건축 등의 여러 장르적 특징들을 종합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탈근대적 인식과 미의식이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 대목이 동시대 디자인 양식으로 각광을 받은 아르누보(art nouveau)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차별성을 갖는 점이다.

클림트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철학>이라는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으로 파리 데뷔를 화려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국제적 양식인 아르누보와의 근친성이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곡선 양식으로 낙천적 미의식만을 양산해내는 아르누보와의 궁극적인 차이는 광기의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수와 비극적 예술성일 것이다. <유디트>(Judith) 연작들에서 보듯 황금빛 찬란한 그 패턴 뒤에 숨어 있는 팜므 파탈의 운명적 비장미야말로 결정적인 키워드이다.

극작가 헤벨이 <유디트>를 쓰면서 모든 플롯을 구약 성서와 동일하게 전개하면서도 달리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적장 홀로페르네스에 대한 증오 속에서도 성애적 국면이 아주 미묘하게 묻어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미세한 휴머니즘의 편린을 클림트가 예민하게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양자의 연관성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클림트의 화면에서 그러한 미묘한 국면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황금빛 장식이나 패턴들은 분명히 인물의 섹시함을 연출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극적 문맥까지도 가볍게 만드는 단순한 부가적 장치만은 아니라는 점이 클림트 화면이 가지는 오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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