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브랜드에서도 ‘삼성’이판치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전화번호부 DB 분석 결과 나타나…10개 그룹 이름 차용한 영업장 전국에 55만 곳 넘어…상표 사용의 권리와 한계 놓고 논란도

 
‘삼성○○부동산, 롯데○○이삿짐센터, 현대○○모텔, 동부○○미용실….’ 삼성, LG, 현대, 롯데 등 대기업 이름을 상호에 버젓하게 사용하는 자영업소가 전국적으로 55만여 개에 달한다. 또, 롯데는 음식점이나 숙박시설에, 현대는 부동산이나 세탁소, 학원 등에 많이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사저널>이 지난 2월2일부터 10일까지 한국전화번호부(슈퍼페이지)에  의뢰, DB에 등록되어 있는 상호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에 따르면 삼성, LG, 현대, 동부, 롯데 등 10개의 그룹 이름을 회사나 가게의 상호로 사용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55만72곳에 달한다.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할 경우 대기업 브랜드를 차용하는 업소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넣은 업소는 30.1%(16만5천7백60개)로 조사 대상 중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곳도 역시 많았다. 근소한 차이로 삼성에 뒤지기는 했지만, 전체의 28.8%(15만8천3백99개)나 되었다.

이밖에 롯데가 9.1%(5만2백30개), 동부 9%(4만9천5백95개), SK 6.2%(3만4천3개), LG 5%(2만7천6백38개), 금호 4%(2만1천7백91개), 한화 3.2%(1만7천5백28개), GS 2.3%(1만2천6백69개), 한진 2.3%(1만2천4백61개) 순이었다.

삼성 30.1%, 현대 28.8%로 양대 그룹사 이미지 많이 차용

눈에 띄는 사실은 지역별로 유사 브랜드 사용 건수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순위에서는 삼성이 1위를 차지했지만, 지역별로 분석해보면 선호하는 브랜드에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삼성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와 수원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32.9%)와 경기(44.1%) 지역을 포함해 부산
(26.6%), 경남(52.8%), 대구(32.9%), 대전(38.6%), 광주(26.4%) 등의 지역에서 비교적 많았다. 현대 역시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공장이 위치한 영향으로 울산 지역에서 61.4%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인천(34.2%)과 전북(32.3%), 서울(28.4%), 강원(37.6%), 충남(43.4%), 충북(38.6%), 경북(39.7%), 전남(26.3%), 전북(32.3%), 제주(26.6%) 등에서도 비교적 많아 전국적으로 고르게 나타났다. 

한국전화번호부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광역시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이에 반해 현대는 보통 명사로 전반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그룹들도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롯데의 경우 부산(18.5%)과 제주(13%), 동부는 전북(27%)과 충북(14.9%), 금호는 광주(26.2%)와 전남(16%), GS는 전남(11.4%), LG는 대구(9.3%) 등에서 비교적 많았다.

업종별로도 기업들의 브랜드 사용 현황은 다르게 나타났다. 이는 서울에 위치한 음식점, 부동산, 병원, 세탁소, 미용실, 학원 등 실생활과 밀접한 10개 업종을 선정해 분석한 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 

생활 밀착형 업종의 경우 롯데의 차용 빈도가 가장 높아 전체 4천9백74곳 중 1천9백94곳(40.1%)이 롯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비재 기업이라는 롯데의 이미지가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 특히 음식점(43.4%)과 숙박업소(38.8%) 등에서 롯데의 차용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롯데의 뒤를 이은 곳은 현대(24.5%)였다. 현대의 경우 부동산(38.8%)과 세탁소(66.4%), 목욕탕(59.5%), 미용실(46%), 학원(55%), 이삿짐센터(35.8%), 슈퍼마켓(45.8%) 등의 간판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전체의 21%를 차지한 삼성의 경우 병원(44.2%)과 부동산(33.1%), 이삿짐센터(33.3%)에서, 동부는 병원(20.9%)과 학원(16%), 부동산(8.5%)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업들, 유사 브랜드 난립으로 ‘골머리’…법적 제재는 어려워

박재항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소장은 “현대나 동부와 같이 대기업 브랜드명 중에는 보통 명사에서 따온 것이 많다. 자영업자들이 보통 명사인 만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고, 여기에 기업의 이미지를 얹어 신뢰도를 높이려다 보니 선호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역별·업종별로 유사 브랜드 사용 건수에 차이가 나는 것도 그 기업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현대건설, 롯데호텔, 삼성의료원처럼 1등 기업 이미지의 반사 혜택을 노려 상호를 선택할 때 대기업 브랜드를 찾게 된 결과이다”라고 덧붙였다.

전호범 특허청 상표디자인정책과 사무관은 “상표 사용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삼성이나 현대의 인지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에 슈퍼나 부동산에서까지 사용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견해도 있다. 유한태 숙명여대 디자인학과 교수는 “기업 브랜드를 마구 쓰게 방치하는 데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짝퉁 문화를 들 수 있다. 일류 뒤에 감춰진 아류로 고객을 감동시키려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보다 유명세에 편승하기 위해 흉내 내기를 선호하는 사회 문화의 발로여서 아쉽게 느껴진다”라고 개탄했다.

실제 최근 기업의 이름이나 상표의 권리 한계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유사 브랜드가 난립하면서 법적 소송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업종이 같은데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면 상표권 침해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름만 차용한다고 해서 이를 제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경우 법원의 판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전호범 특허청 상표디자인정책과 사무관은 “최근 상표권 사용을 놓고 기업과 기업, 기업과 자영업자 간에 법적 다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 경우 대기업 계열사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일반인이 보았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애매한 경우 상표권 침해로 규정하기 때문에 유사 브랜드가 난립해도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업형 사업장에서 삼성 브랜드를 차용할 경우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자영업자에까지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할 수 없어 묵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롯데’라는 상호를 놓고 최근 가족 간 분쟁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 역시 “계열사 외에는 롯데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전국에 난립하고 있는 유사 상호들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제재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