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마다 찾아오는 기우?
  • 공인호 (서울파이낸스 기자) ()
  • 승인 2009.02.1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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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외화 유출 가능성 낮아 ‘위기’ 없을 전망…각국 정부 공조 노력도 ‘버팀목’

ⓒ그림 이우정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다시 출렁이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지난해 금융 위기가 미국 대형 투자은행(IB)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2차 금융 위기는 미국, 유럽 등 대형 상업은행(CB)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3월 위기설’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3월 위기설은 일본 금융회사들이 3월 회계 연도 결산을 앞두고 국내 금융회사들로부터 한꺼번에 자금을 빼내갈 수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처음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분기 말에는 전세계 금융회사들이 회계 연도 결산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외국 금융회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에 빌려준 돈을 일시에 회수할 수 있다. 결국, 3개월 단위로 위기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경제팀의 사령탑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3월 위기설은 숫자로 봤을 때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이다. 일본계 은행에서 차입한 자금은 1백6억 달러인데 이 중 1분기에 도래하는 것은 전체의 9%인 11억 달러에 불과하다”라며 위기설을 일축했다. 일단 3월 위기설을 일본계 금융회사의 차입금에 국한했을 경우에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부 전문가들 “지난해 9월 위기설보다 설득력 있다”

그러나 일본계 차입금 이외에 해외 채권 전체로 확대 적용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실제로 올해 2월과 3월 국내 은행에 만기 도래하는 총 외채는 30억8천100만 달러로 지난해 ‘9월 위기설’ 당시의 6억2천만 달러의 5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같은 규모의 외채는 개별 은행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이 9월 위기설보다는 현실화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9월 위기설은 국고채, 외평채 등 국가 부채에 국한된 데다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에 제기된 반면, 3월 위기설의 실체는 국내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단기 외채이기 때문이다. 또,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9월 위기설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근 환율 흐름 역시 3월 위기설의 현실화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2월12일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월 이후 2개월 만에 1천4백원대를 돌파하는 등 지난해 고점인 1천5백원대에 바짝 다가섰다. 환율 변동 폭이 확대되자 금융시장에서는 2차 금융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내 은행들 역시 지난 2월10일 한국은행의 3개월물 외환 스와프 경쟁 입찰에 대거 몰리기도 했다. 이날 경쟁 입찰에는 낙찰 예정 금액의 2배에 달하는 41억9천만 달러가 몰렸다.

한 시중 은행의 자금부장은 “정부의 달러 지원으로 외화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는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시장의 수요만큼 외화가 충분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신용 위험 척도를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다시 상승세로 반전되었다는 점도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5년 만기 외평채 CDS프리미엄은 지난 1월9일 2백69bp로 저점을 찍은 뒤 2월10일 현재 3백40bp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 10월 7백bp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인 지난해 7월 말(86bp)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와 함께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 하향도 외화 차입 여건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월9일 무디스는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3개 국책 은행과 국민·신한·우리·농협 등 5개 민간 은행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과 동일한 ‘A2’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무디스가 시중 은행의 재무 건전성 등급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의 현실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정선태 연구위원은 “이미 알려진 악재는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3월 위기설 역시 시장의 기우일 수 있다. 차입 규모도 작을 뿐더러 일본 은행들의 재무 사정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인 자금 유출 가능성은 작다”라고 말했다.

일본 금융회사 역시 계속되는 엔고 현상과 강도 높은 자산 건전성 기준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재 일본 은행들은 채무자의 신용등급에 따라 위험 가중치가 변하는 바젤2 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미쓰비시UFJ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산 규모만 수천 조에 달하기 때문에 한국에 빌려준 돈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연장, 심리적 안정에 기여

이와 함께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공조 노력도 위기설을 불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지난 2월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통화 스와프 계약 만료 기한을 올해 10월까지 6개월 연장키로 했다. 일본계 전체 차입금 1백6억 달러가 일시적으로 상환되더라도 통화스와프로 해결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한은으로서는 외환보유고에 대한 2천억 달러의 심리적 마지노선 방어도 가능하다. 1월 말 현재 한은의 외환보유고는 2천17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연장은 심리적 측면에서 환율 상승을 제한하는 동시에, 3월 위기설 역시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는 4월로 만료되는 일본 중앙 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계약도 연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일본 대장성 산하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은 2월 중 한국을 방문해 엔화 자금 동향 및 최근 국제 금융시장 현안에 대한 공조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회동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참석해 3월 위기설을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수준,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통화 스와프 체결, 국내 은행의 펀딩 등을 감안하면 외화 유동성 여건이 좋아졌다. 지난해와 같은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말 현재 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 은행과 시중 은행들이 공모와 사모 해외 채권을 통해 조달한 외화 자금 규모는 총 88억3천5백만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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