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국가대표로 4강이 가능할까
  • 정철우(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2.2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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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참가하는 김인식 감독 “발야구로 이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감독 선임 문제로 삐걱이더니 박찬호(필라델피아)·이승엽(요미우리)·김동주(두산) 등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투타 기둥들의 줄사퇴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중 압권은 단연 김병현의 탈락 해프닝이었다. 김병현은 여권 분실을 이유로 대표팀 전지 훈련 합류를 미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김인식 감독은 읍참마속의 심경으로 그를 대표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김병현의 대표팀 탈락은 단순히 투수 한 명이 빠져나간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표팀 운영 전반의 변화를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뼈 아픈 김병현 탈락

김병현은 지난 2007 시즌이 끝난 뒤 피츠버그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1년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아니 김병현 스스로 마운드에 설 마음이 없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은 기간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의 거취에 관심을 보였지만 김병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 몇 주만 쉬어도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야구이다. 김병현은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뽑힌 이후 운동을 재개했지만 그가 정상적인 컨디션을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식 감독은 마지막 순간까지 김병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김감독의 성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감독은 선수들의 경험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이다.

같은 실력이라면, 풍부한 경험이 복잡한 야구의 해법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실제 그와 같은 노하우는 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김감독은 2006년 1회 WBC 당시 고참이던 이종범, 구대성 등을 최대한 활용해 4강 신화를 이끈 바 있다. 특히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밀려날 위기에 놓였던 박찬호를 중용해 선발은 물론 마무리에 대한 고민까지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김병현에 대한 기대치도 바로 경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감독은 “올림픽과 WBC는 또 다르다. 현역 메이저리거를 상대하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박찬호나 백차승 등의 합류가 불발되며 대표팀에는 메이저리거들을 실질적으로 상대해본 투수가 봉중근(LG)만 남게 되었다.  
 
류현진(한화)·김광현(SK) 등이 버티고 있는 대표팀 좌완 선발 라인은 어느 나라와 붙어도 뒤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역시 경험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지만, 확실한 구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완 투수들은 다르다. 손민한(롯데)·윤석민(KIA) 등이 버티고 있지만, 김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얻지는 못하고 있다. 때문에 김병현의 공백은 더욱 뼈아프다.

김감독은 일단 현재 엔트리에 남아 있는 우완 투수들을 모두 잔류시킨다는 입장이다.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미이다. 또, 잡는 경기와 버리는 경기를 최대한 구분지어 투수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목표는 전승이 아니라 4강 이상 무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단 마운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명품 유격수 박진만 역시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투명하다.

김감독은 최대한 박진만의 복귀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 타이완 등을 상대해야 하는 1라운드에는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진만이 없는 대표팀 내야는 단순히 야수 한 명 이상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새 판을 짜야 할 만큼 큰 구멍이다.

일단 박기혁(롯데)이 정상 컨디션을 찾을 경우 주전 유격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던 손시헌이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손시헌은 군 복무(상무) 탓에 지난 2년간 1군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투구 수 제한이 유리할 수도

WBC는 프로리그 개막에 앞서 치러지는 대회이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부상 방지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WBC 조직위원회는 이를 위해 투수들의 투구 수 제한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선발 투수의 경우 1라운드 70개, 2라운드 85개, 준결승과 결승은 100개로 투구 수가 제한되어 있다. 이상적인 이닝 당 투구 수는 15개 정도이다. 규정대로라면 선발 투수가 좋은 페이스를 보이더라도 5회까지가 최대치라 할 수 있다. 대표팀의 문제는 이 제도에서 공을 던져본 선발 투수가 손민한(롯데)과 봉중근(LG)뿐이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투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대목이다.

김감독은 해법으로 박경완을 제시했다. 한국 최고의 볼 배합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경완에게 빠른 카운트에서 빠른 승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박경완은 “평소 신중한 볼 배합을 위주로 해왔지만 WBC에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몸쪽 승부를 많이 하면서 빠른 승부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대표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힘 좋고 투지 넘치는 젊은 투수들에게 공격적인 볼 배합은 자신감이라는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WBC의 또 다른 특징은 더블 일리미네이션(Double Elimination), 즉 패자부활전의 도입이다. 한 번 패한 팀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은 일본과 최대 5번이나 경기를 할 수 있다. 또,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보다 타이완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야구는 약체인 A라는 팀의 전력이 강호인 B팀 전력의 15% 정도만 되어도 단기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간단하게 말해 100점 받은 학생과 15점 받은 학생이 붙어도 15점짜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오는 3월6일 타이완과 첫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다음 일본전(일본이 중국에 승리를 거둘 경우)에서 지면 다시 타이완과 붙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전력 면에서 타이완에 앞서 있다 할지라도 또 한 번 붙게 되면 2연승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약한 전력으로 강팀들과 상대하게 될 2라운드에서 더블 일리미네이션은 안전 장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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