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걷어붙이고 ‘정치’ 나서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2.2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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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두언 만나 여권 주류 내부 단합 모색…정몽준 독대로 ‘박희태 이후’ 저울질

▲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맨 왼쪽)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맨 오른쪽)이 ‘시대 변화에 뒤처진 20세기형 정당 체제, 어떻게 바꿀 것인가’ 토론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3일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여권 내부가 요동하고 있다. 친이명박계 주류 그룹은 물론 정몽준 최고위원 등 범주류 그룹과 김무성 의원 등 친박근혜계 의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는 개각 이후 이대통령이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집권 2년차를 맞아 ‘여의도 정치’를 멀리해왔던 이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변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대통령과 정의원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추진된 지는 꽤 되었다. 지난해 말 개각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대통령에게는 다양한 그룹에서 개각과 관련한 보고가 올라갔다. 정의원과 가까운 인사들도 나름의 통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개각과 관련한 의견을 전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정의원이 직접 나서 청와대에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정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성사된 것이 개각이 이루어진 뒤인 지난 2월3일이었다. ‘인사’ 문제에 관한 한 그 시점에서는 이대통령이 정의원의 말을 경청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의원이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안국포럼과 서울시 출신들 잘 챙겨라”

여권의 핵심 인사에 따르면 이대통령과 정의원의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8개월 만의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헤어질 때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이대통령이 말하고 정의원은 들었다고 한다. 이 핵심 인사는 “대통령은 정의원에게 안국포럼과 서울시 출신들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고, 정의원은 대통령에게 정무적인 분야에서 몇 가지 조언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이날 만남은 오랜 공백에도 정의원이 여전히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명분을 세웠다. 이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의원을 통해 여권 주류 그룹 내부의 단합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실리를 얻었다.

정의원은 대통령과 만난 3일 뒤 중국으로 가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났다. 정의원은 기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갔을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정권을 만든 핵심 공신들이 만났을 때는 정권 안팎의 상황과 관련한 다양한 얘기가 오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두 사람은 이 전 의원의 귀국 이후 행보, 향후 당권의 향배 등과 관련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재오-정두언 연대’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두 사람의 신뢰 관계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원 쪽에서는 한나라당 출마자 55명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거론할 때 막판에 이 전 의원이 발을 뺀 것에 대해 서운함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자기 정치’를 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 전 의원은 미국으로 돌아가 귀국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3월 초에서 4월 말까지 전망이 엇갈린다. 어쩌면 이 전 의원 자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중국에서 그를 만나고 온 한 정치권 인사는 “이 전 의원은 빨리 돌아오고픈 마음이 강하다. 해외 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이상득 의원은 부인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그가 이 전 의원의 귀국을 반대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전 의원의 귀국과 정의원의 ‘복귀’로 상징되는 흐름은 친이명박계가 겉으로는 단합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향후 여권 내부에서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치열해질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이상득-최시중 등으로 상징되는 여권 내 ‘원로 그룹’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에 이들도 ‘내 몫’을 찾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겉으로는 서로 모임에 참석하면서 단합하는 흐름이지만, 이상득-이재오-정두언 등 여권 주류 그룹의 3각축이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정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 견제에 효과적인 카드

실질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인사’와 관련해 일정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접착력이 강해질 것 같다.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의 관계도 여전히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고, 빠르면 4월 재·보선 이후 조기 전당대회가 개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류 그룹으로서는 일단 큰 틀에서 생존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형국이다. 친이계 한 핵심의원은 이런 상황을 “현재 보이는 형국은 실제 내용과 겉모습이 다른, 한마디로 거품 정치라고 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친이계 주류 그룹은 내용상으로 여전히 ‘모래알’이라는 얘기였다.

친이명박계 내부에서 진행되는 이런 움직임과는 별개로 이대통령이 지난 2월11일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과 독대한 것은 향후 한나라당 당권의 향배와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과거 이대통령의 모습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정치’를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핵심 전략가는 “대통령은 지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당권의 향방에 관심이 많다. 이마저 잃으면 일할 수 있는 동력이 별로 없다고 보고 있다. 정최고위원을 만난 것은 그런 측면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최고위원이 연 연구소 개소식에 정두언 의원이 참석하고, 친이명박계 의원들의 모임에 정최고위원이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여권 주류 그룹의 ‘정몽준 키우기’는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통령에게도 최근 “박 전 대표만 보지 말고 다양한 카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는 조언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이대통령은 이미 ‘박희태 이후’를 대비한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더라도 주류 그룹 내부의 복잡한 사정이나 친박근혜계 인사들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그가 당권에 도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에 이어 2위를 한 정몽준 최고위원은 주류 그룹으로서는 매력적인 카드이다. 정최고위원은 당내 세력도 없을뿐더러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최고위원 입장에서도 주류 그룹과 손잡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는 대통령과 만난 이후 최고위원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친박근혜계 인사들의 움직임이다. ‘친박계 좌장’으로 일컬어지는 김무성 의원은 독자적인 모임을 만들어 “할 말은 하자”라는 입장이지만, 박 전 대표는 “아직은…”이라며 부정적이다. 정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좀더 기다리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기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시각이 많다. 지난번 만난 데 이어 2월21일 이상득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골프장에서 다시 만난 것은 이의원이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이 불러올 여권 내부의 긴장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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