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3.10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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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부역한 죄로 법정에 선 여자, 그리고 ‘꼬마’의 눈물

▲ 감독: 스티븐 달드리 / 주연: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남자들의 첫사랑은 대부분 연상이기 마련이다. 동갑내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정도가 아니면 포기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연상의 여인은 비록 짝사랑일망정 사람을 몽롱하게 한다. 상대방이 알아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우리나라는 멀쩡한 여자가 나이 어린 남자와 사랑하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니 어린 남자만 애를 태운다.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말이 일본 속담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아마추어처럼 까불어 성공할 확률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너무나 많아서 아마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드러났을 것 같다. 해피엔딩도 있지만 비극이 더 많을 듯하다. 마지막이 슬퍼야, 둘 중의 하나가 죽어서 홀로 남은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야 관객들은 좋아한다. 남의 불행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둘 다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열다섯 살 먹은 마이클(영화에는 어린 시절과 어른 시절로 나눠 두 명이 역할을 맡았다. 전자는 데이비드 크로스, 후자는 랄프 파인즈)은 한창 사춘기로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오다가 우연히 한나(케이트 윈슬렛 분)를 만난다. 길가에서 열병으로 쩔쩔매는 마이클을 도와준 한나는 전차 조수이다. 병이 다 나은 마이클은 꽃다발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옷을 갈아입는 한나의 모습을 훔쳐보다 들켜 도망가지만 마이클은 다시 그녀를 찾고, 한나는 이 ‘꼬마’를 받아들인다. 서른여섯 먹은 여자이다.

 서른여섯 여자와 열다섯 소년의 사랑

학교만 끝나면 열 일 제쳐두고 한나의 집으로 찾아가 책도 읽어주고 놀다 오는 그에게, 한나는 짐을 싸 사라지는 것으로 작별을 고한다. 세월이 흘러 법대에 들어간 마이클은 법정에 갔다 피고석에 서 있는 한나를 만난다. 그녀의 죄는 나치에 부역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라고 묻고 판사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유태인을 아우슈비츠에 보냈고, 폭격 맞은 성당에서 3백명을 가두어 죽인 여자. 그런 한나를 보고 마이클은 눈물을 흘린다.

<더 리더…>는 러브 스토리에 홀로코스트를 묶은 것인지, 홀로코스트라는 주제에 사랑을 덤으로 끼워놓은 것인지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보는 사람 마음이다. 3월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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