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맞아도 미국 ‘물’이 좋아
  • 성민수 (미디어다음 격투기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3.1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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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진출한 추성훈, 성공 가능성은?

▲ UFC 진출을 밝힌 기자회견장에서 추성훈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3년 11월, 미국에서는 UFC (세계 3대 이종종합 격투기 대회)가 출발했지만 2005년까지 세계 격투기 1위는 일본이었다. 탄탄해 보이던 PRIDE는 야쿠자 결탁설이 터지면서 방송사가 손을 놓자 결국 붕괴했고, K-1은 여전히 잘 운영되지만 킥복싱 스타일의 입식타격에서 1위일 뿐, 종합 격투기는 이제 미국의 UFC가 대세라 할 수 있다.

UFC는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의 위력을 알리기 위해서 전설적인 주짓수 파이터 엘리오 그레이시의 장남 호리온 그레이시와 방송 관계자 아트 대비에, 캠벨 맥라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단체이다. 각 분야의 고수들이 맞대결한다는 ‘이종(異種) 격투기’의 파격성 때문에 출범 후 유료 시청 채널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어느 정도 신기함이 사라지자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훗날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존 매케인이 1996년 당시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의 신분으로 격투기 폐지를 위해 움직이면서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복싱 팬이었던 매케인은 격투기를 ‘인간이 벌이는 닭싸움(human cock fighting)’으로 표현하면서 개싸움, 닭싸움은 금지하는데 왜 사람싸움은 막지 않느냐는 논리로 격투기 금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대다수 주의 주지사에게 보내는 동시에 유료 시청 채널 사업자에게 프로그램 방영 금지를 종용했다. 매케인의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 중반 이후 UFC 몰락에 결정타가 되었다.

UFC는 2001년 카지노 재벌 퍼티타 형제와 데이너 화이트에게 2백만 달러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4년 가까이 적자투성이로 운영되었고 격투기는 결국, 카지노 2세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취미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2005년에 격투기를 다룬 리얼리티 쇼 TUF (The Ultimate Fighter)가 큰 인기를 끌면서 팬들의 관심이 쏠렸고 유료 시청 채널 판매가 급증해, 퍼티타 형제가 매입한 후 4년간 총 4천4백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던 UFC는 2005년에 손익분기점을 지나 2006년에는 1억9천만 달러의 매출에 7천6백만 달러의 세전 이익을 올렸고, 2007년에는 약 2억3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더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 시장 공략에 걸맞아 영입돼

추성훈의 이적으로 미국에서 UFC 붐이 더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추성훈은 대한민국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K-1의 모회사 FEG에서는 한때 시청률로 마사토와 야마모토 노리후미를 잇는 3순위 선발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영어도 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니 큰 인기를 끌기 어렵다.

최근 미국 선수들을 주로 방출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20%에 가까운 선수들을 내보낼 계획을 가진 UFC가 오히려 의욕적으로 추성훈을 영입했고 대우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왜 이렇게 잘해줄까? 대한민국과 일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시장 공략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 전국민적 관심을 끌어들인 것을 떠올리면 된다. 이미 격투기에서는 최홍만과 추성훈이 K-1에서 좋은 선례를 남겼다.

UFC에서 공격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몇 가지 꼽아보면 이렇다. 우선 영국에서의 사업이 흑자로 반전되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최근 S&P의 리포트에 따르면 UFC의 영국 투자는, 초기에는 엄청난 적자를 보였지만 2008년에 흑자로 반전되었다. 또 다른 시장을 정벌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UFC는 추성훈과의 계약 이외에도 일본 파이터 고미 다카노리, 야마모토 노리후미 등과의 접촉설이 흘러나왔으며,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자 일본 격투기의 차세대 희망이던 이시이 사토시는 이미 UFC 품에 안겼다.

또 다른 타깃은 독일이다. 얼마 전 독일에서 WWE가 고가의 방송권료를 불렀다가 협상이 결렬된 틈을 노려 저가로 프로그램을 공급하면서 UFC는 새로운 격투기 열풍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현재 이들의 중요한 타깃은 대한민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국내의 유명 스포츠 마케팅 회사 IB스포츠와 관련이 있다. 그간 IB스포츠는 격투기 콘텐츠만 팔뿐, 선수들과 관련한 일은 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태도가 급변했다. 그동안 추성훈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IB스포츠와의 협상이 잘 안 되었기 때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태도를 바꾼 이유는 예전 외환위기 시절 박찬호·박세리가 대중들의 희망이 되었던 것처럼 최근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환경에서 스포츠 스타가 부각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격투기 선수 쪽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UFC의 세계 제패라는 모토도 최근 움직임과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설가로 유명한 프로모터 데이너 화이트는 미식축구나 축구, 야구 등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는 반면 인간에게는 격투 본성이 있기에 궁극적으론 격투기가 세계를 재패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력이 있는 유럽이나 동아시아를 우선적 타깃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다.

추성훈, 데니스 강, 김동현, 이들의 국적은 각각 일본, 캐나다,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나라 격투기계에서는 최홍만과 더불어서 높은 시청률을 이끄는 선수들로 꼽힌다. 이에 최홍만을 빼고 제대로 다 데려갔다고 보면 된다.

가장 먼저 진출한 김동현은 당시 UFC의 방영권은 있지만 한국 선수가 없던 터에 방송사와 UFC 간에 뜻이 맞아서 진출한 경우이다. 그는 세 경기를 치러 2승1패의 좋은 전적을 올렸으며, 특히 마지막 3차전은 상대방의 금지약물 사용으로 인해 체육위원회에서 승부 결과를 번복할 가능성도 있다. 얼마 전에는 재계약도 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1차전을 제외한 경기들이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미국 팬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나 지더라도 화끈한 경기를 원하는 팬의 기대에 부합할 필요는 있다.

데니스 강은 일단 영어가 되므로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추성훈보다 더 어필할 가능성이 큰데 기대를 받고 출전한 UFC 93에서 경기를 압도했음에도 앨런 벨처에게 2라운드에 무너지면서 항상 중요한 경기에서 잘하다가 실수로 패하는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강한 모습을 보였다면 미들급 챔피언 앤더슨 실바의 대항마로 갈 수 있었을 상황에서 다소 주춤했지만 기회가 몇 차례 더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패하더라도 이미지는 지킬 수 있을 듯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UFC에서 펜(위 왼쪽)과 피에르(위 오른쪽)가 격돌하고 있다. ⓒAP연합

추성훈은 6경기 계약을 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게다가 방송이 안 되는 ‘다크 매치’를 뛰어넘어서 바로 방송용 경기에 나올 것이라고 하니 주최측의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추성훈은 그저 돈 받고 싸우는 싸움꾼이 아니라 그 자신이 상품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영리한 행보를 하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리라고 본다. 만약 UFC에서 실패하더라도 이미지는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함을 갖춘 선수이다.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는 추성훈의 문제는 기존에 싸우던 곳과 룰이 다르다는 점이다. PRIDE의 스타였던 미르코 크로캅이나 반달레이 실바 같은 선수들은 이전의 환경에서는 펄펄 날았지만 UFC에 진출해서는 과거의 강한 모습은 상실한 채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이들의 몰락은 경기 규정이나 경기장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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