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대신 ‘자연’으로 전세계가 ‘그린’ 뉴딜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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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일본이 앞장…IRENA 창설도 주목받아

▲ 미국 오바마 대통령(위 맨 오른쪽)과 바이든 부통령(위 가운데)이 태양전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욕타임즈

지난 1월15일, 전세계의 관심은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할 지에 쏠렸다. 금융 위기에 대한 미국의 해법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회복과 재투자를 위한 계획’을 일반에 공개했다. 대책 중에는 일명 ‘그린 뉴딜’에 관한 내용이 부각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자연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고 기존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대책을 준비하는 데 약 5백40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오바마의 등장 때문에 그린 뉴딜, 즉 녹색 성장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오바마는 후보 시절부터 환경 산업을 매개로 한 녹색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석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부시 전 대통령과 차별화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첫 에너지 장관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중국계 스티븐 추가 맡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관료나 에너지 관련 기업의 임원들이 에너지 장관직을 거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추는 그동안 지구의 환경 문제에 관한 대책으로 친환경적 기술 개발을 주장하며 실천해온 인물이다. 에너지 정책의 수장에 친환경적 과학자를 임명한 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오바마는 온실가스에 대해서도 나름의 목표를 밝혔다. 미국은 2050년까지 1990년의 배출량에 비해 80%를 삭감할 계획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80%나 줄인다는 말은 결국, 미국의 에너지 구조를 변화시키겠다는 말과 같다. 미국의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의 미국 에너지 구조에서 화석연료의 비율은 85%에 이른다. 화석에너지, 특히 석유에 대부분 의존하는 미국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자연에너지를 개발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미국 사회는 대통령 한 사람이 교체되었다고 전 사회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할 정도로 작은 곳도, 단순한 시스템을 가진 곳도 아니다. 사실 오바마가 등장하기 전부터 주 단위 자치 정부에서는 녹색 성장을 준비하기 위한 내공을 쌓아왔다. 부시 정부 아래에서 정체된 것처럼 보이던 자연에너지 정책도 많은 주에서 시나브로 발전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잘 몰랐을 뿐이다.

그 중심에는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법이 있다. RPS법은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에게 전력 판매량의 일정 부분을 풍력·태양열 발전 등 자연에너지로 공급할 것을 의무적으로 정한 것이다. 발전량이 아니더라도 일정 용량의 발전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기도 한다. 미국의 RPS법은 전력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면서 그 보완책으로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규제 완화가 실시되면서 자연에너지 개발이 후퇴할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오바마 등장 전부터 각 주마다 녹색 성장 준비

미국의 RPS법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전력회사는 스스로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거나 타사의 자연에너지 전력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재생 가능 에너지 증서 거래 제도’를 도입해 자연에너지를 생산하는 타사에서 증서만을 구입하는 것도 인정된다. 증서를 거래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에너지 기술을 우선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동시에 일조량이나 풍력 등 자연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있는 전력회사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자원의 다양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발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풍력발전으로 치우치자 자연에너지 발전 방법마다 발전량 목표치를 설정하는 방식을 쓰는 주도 있다.

RPS법의 출발은 미미했다. 처음에는 몇몇 주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시하는 주가 확대되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문제는 RPS법의 확산에 기여했다. 국제적으로 온난화 문제가 논의되면서 자연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많은 주가 RPS법을 가결해 시행하고 있다. 2006년 5월, 20개 주에서 실시하던 RPS법은 2009년 1월 현재 28개 주로 확산되었다. RPS법을 강제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지만 자연에너지 발전량의 목표 수치를 설정한 주도 다섯 곳이나 된다. 미국의 대다수 주는 자연에너지의 발전량 목표를 연 1% 증가에 두고 있는데, 일본의 목표가 ‘2014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1.6%’로 삼는다는 점과 비교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셈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일찍부터 석유 등 전통적인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경원시되던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의 경제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주목해왔다. 미국이 ‘녹색’을 강력히 밀면서 상대적으로 유럽은 조용하게 느껴진다. 간혹 유럽의 환경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유럽 역시 경제 대책이 우선순위에 올랐고, 그 여파로 환경 정책이 뒤로 물러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는 온실 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의 양보다 20% 줄이기로 했고, 재생이 가능한 자연에너지의 비율을 20%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에너지 효율 역시 20% 개선하기로 최종 합의하는 등 EU의 기본적인 자세는 유지되고 있다.

유럽에서 자연에너지의 확대를 이끌어온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법(EEG)은 시대에 맞춰 개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열 에너지의 매입 가격이 인하되었고 요즘 확산되고 있는 해상 풍력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상승으로 타격을 받은 바이오에너지의 매입 가격이 인상되어 시장 환경의 변화를 반영했다. 나아가 재생 가능한 열에너지의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준비 중이다. 신축 건축물에 일정량 이상의 열에너지 이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독일은 환경 기술을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난·실업난과 연동시키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지그마 가브리엘 독일 환경청 장관은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계와 금융계의 대표 60여 명을 초대해 회담했다. 이 회담에서는 금융 위기로 초래되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 업계가 서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에너지 업체들이 국영 금융 기관이나 민간 재보험을 활용해 장기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했고 환경 에너지 분야에 새로 진출하는 중소기업의 참가 기회를 확대할 수 있게 했으며, 직업 훈련 집중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 등을 합의했다.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이란도 IRENA에 서명해

▲ 지난 1월26일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재생에너지기구 회의. ⓒEPA

일본에서는 최근 ‘미국의 환경 정책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오바마 정부의 방향에 맞추어 그린 뉴딜을 실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24일 일본 환경청은 발 빠르게 ‘일본판 그린 뉴딜’의 방안을 만들어 아소 총리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소 총리는 “각 부처와 제휴해 확대 방안을 모색하라”라고 지시했고, 농림수산성과 경제산업성 등이 참여해 3월까지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월16일까지 환경성은 그린 뉴딜에 관한 국민 제안 아이디어를 모집했다. 정부의 이런 발빠른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이다.

일본은 하이브리드카와 2차 전지 등에서 이미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환경청은 지난 2월 최초로 일본 내의 자연에너지 도입량을 예측한 결과를 발표하며 분위기 잡기에 나서는 중이다. 환경청은 태양광발전 능력은 2020년까지 2005년보다 26배, 즉 3천7백만kW나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풍력 발전 역시 대폭적인 증가가 예상되어 관련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약 60만명의 고용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산업계와 조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각국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자연에너지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지난 1월26일에 발족했다. 지난 2004년, ‘자연에너지 2004 국제 회의’가 개최된 독일 본의 국제회의장에서는 각국의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파벳 순서대로 서명 절차가 이루어졌다.

IRENA는 자연에너지의 보급이 어느 정도 시작된 독일과 북유럽의 국가들이 설립을 주도했다. 자연에너지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엔 등의 국제회의에서는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자연에너지가 말 그대로 ‘에너지’의 영역이 되는 순간 화석연료나 원자력 등을 생산하는 기존의 거대 에너지 산업의 반발이 나왔고, 개도국과 미국 등 온난화 가스를 배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국가들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열린 2004년 열린 ‘자연에너지 2004 국제회의’는 자연에너지 정책만을 논의하기 위해 1백54개국의 대표단이 모이면서 정치적인 기운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나았다. 지구 온난화에서 고개를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고 독일을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결국, IRENA는 창설되었다.

IRENA에 대표단을 참석시킨 국가는 총 1백20여 개이다. 이 중 75개국의 서명으로 IRENA는 첫출발을 하게 되었다. 최초로 서명한 국가는 따뜻한 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아프가니스탄이었고 IRENA 창설을 주도해온 독일과 덴마크, 원자력의 강국인 프랑스 등도 서명에 참가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대표적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이란도 서명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가 국가의 주요 산업인 이들 국가는 2020년까지 자연에너지를 7% 도입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은 서명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린 뉴딜과는 별도로 ‘환경 vs 경제’ 혹은 ‘화석연료 중심 vs 자연에너지 중심’의 대립 구도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의외로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서명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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