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녹색’에 거품만 솟아오를라
  • 정락인·김회권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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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탄소 녹색 성장을 외치며 각종 사업을 줄줄이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단기 경기 부양책으로 밀어붙이다가 자칫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 이대로 가면 북극의 상징인 북극곰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지구 온도가 섭씨 1도만 올라가도 북극 얼음이 모두 녹아내린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북극 얼음이 녹아 없어지면 지구 곳곳은 물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벌써 세계 곳곳이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자연 생태계에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국이 극심한 가뭄을 타고 있다. 개천이 마르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생활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재앙이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지구 환경을 방치하면 인류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한 문명의 이기가 결국, 죽음의 부메랑이 되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재앙은 ‘전쟁’이 아니라 ‘기후 변화’이다.

전세계는 ‘녹색’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원을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으로 이용하는 데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모든 국가 산업에 ‘녹색 산업’ ‘녹색 기술’이라는 ‘녹색’ 수식어가 붙었다. 선진 국가들은 ‘녹색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수소차 등 저탄소 차량 제작이 한창이다. 풍력, 태양광 등 미래 에너지를 대체할 수단을 찾는 데도 혈안이 되고 있다. 녹색은 이제 국가 산업의 성장 엔진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전세계가 녹색 패권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CO2) 배출 세계 10위인 주요 에너지 소비국이다. 반면, 에너지의 97%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불균형 국가이기도 하다. 오는 2013년 교토의정서 의무 감축 대상으로 정해지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기후 변화가 심각해질수록 국제 사회는 점차 강한 규제를 통해 각국의 탄소 배출을 강제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싫든 좋든 각국을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으로 돌려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8월15일을 기점으로 녹색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 성장’을 향후 국가 패러다임으로 설정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개발’을 위해 줄달음치던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은 하루아침에 녹색으로 얼굴 색깔을 바꾸었다. 그 속도가 엄청나다. 불과 6개월 만에 4대강 정비사업, 녹색 뉴딜 사업 10대 핵심 과제 발표, 녹색 성장기본법 의결, 녹색 성장위원회 출범 등이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붙여진 ‘불도저’라는 별명이 실감날 정도이다.

4년간 50조원 예산 들이는 프로젝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만큼은 반드시 살려내겠다’라고 공언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녹색 성장’은 환경과 경제 성장이 합쳐진 말이다. 여기에는 에너지·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성장 동력 확충, 기업 경쟁력과 국토 개조, 생활 혁명을 포괄하는 종합적 국가 비전이 담겨 있다. 교통·건축·문화 등 모든 사회·경제 활동과 사회 시스템을 포함하며, 심지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도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와 국민의 녹색 개조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앞으로 4년간 50조원의 예산을 투자한다. 전체 36개 사업에 들어갈 총 사업비는 50조4백92억원이다. 여기에는 국비 37조5천4백11억원, 지방비 5조2천7백24억원, 민자 7조2천3백57억원 등이 들어간다. 여기서 파생되는 일자리가 96만개이다. 

정부는 지난 2월25일 ‘저탄소 녹색 성장 기본법안’을 심의·의결함으로써 녹색 성장의 법적·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녹색 성장 국가 전략 수립과 녹색 경제 산업, 기후 변화, 에너지 등 부문별·기관별 추진 계획이 담겨 있다.

녹색 성장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인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녹색 산업밖에 대안이 없다. 기업이 앞 다투어 ‘녹색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탈출구이다. 하지만 ‘녹색’을 부르짖는다고 해서 모두 친환경 녹색 정책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의 녹색 성장이 실패하면 우리는 국제 환경 미아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은 너무 급하다. 엄청난 속도를 내다 보니 불안하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여론 형성 과정도 생략되다시피 했다. 올해 재정 집행 규모가 2백40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녹색 뉴딜 사업에 전체 예산의 5%가량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산 집행에 따른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1999년에 도입한 이 제도는 5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자되는 사업 중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백억원 이상 되는 사업에 대해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을 없애면서 예산 집행에 대한 감시 체계가 사라졌다.

환경·시민 단체들은 녹색 뉴딜 사업과 녹색 성장 기본법이 발표되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은 “토목 진흥 프로젝트를 녹색 가면으로 가리고, 갈등의 핵에너지를 청정으로 분칠하는 녹색 세탁일 뿐이다”라는 시각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정책실장은 “진정한 녹색 성장은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성장이다. 개발과 성장에 앞서 복지와 민생, 삶의 질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 성장’은 단기 경기 부양 중심의 토건 사업 활성화에 불과하다. 4대강 정비 사업, 고속철 조기 완공 등 토목 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책은 녹색 성장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 심지어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규정해 온갖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형국 녹색 성장위원회 위원장은 4대강 살리기를 토목 중심 경제 개발과 연계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지난 2월16일 녹색 성장위 출범 이후 “저탄소 녹색 성장은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는 것으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규모 토목공사뿐 아니라 환경·에너지 분야와 강하게 연계되어 있어 녹색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라고 누차 밝혀왔다.

▲ 이명박 대통령(위 가운데)이 청와대에서 ‘제1차 녹색성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목 중심 개발은 녹색 성장과 거리 멀어”

벌써 여기저기서 ‘녹색 거품론’도 흘러나온다. 1990년대 말 당시 김대중 정부는 IT 산업을 지속 성장 가능 분야로 꼽고 대대적인 육성안을 발표했다. 이른바 ‘닷컴’을 표방한 벤처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IT기업들의 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국, IT 산업은 거품으로 사라졌다. 덩달아 벤처기업들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산업계는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지금의 ‘녹색 성장’도 결국, ‘IT’와 같은 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녹색 뉴딜을 ‘녹색 도박’이라고 표현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녹색 뉴딜 사업=대형 건설사 배 불리기’라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월11일 한국신용정보(한신정)가 낸 ‘정부의 경기 부양 대책이 건설회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는 “정부의 ‘녹색 뉴딜 정책’은 그린 홈 건설 등 일부 건축 사업을 제외하고는 사업의 상당 부분이 4대강 살리기, 경부·호남 고속철도 조기 완공, 녹색교통망 구축 등의 토목 사업이다”라고 설명했다.

한신정은 앞으로 대형 건설사와 중견 이하 건설사의 수주 물량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결과적으로 대형 건설사의 시장 지배력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결국, 녹색 사업이 대형 건설업체에게 공사가 몰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예고했다.

일자리 창출은 어떨까. 정부는 4대강 살리기(28만개), 녹색 교통망 구축(16만개), 녹색 정보인프라 구축(2만개), 대체 수자원 확보(3만개) 등 전체 36개 사업을 추진해서 9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녹색 뉴딜 사업을 통해 창출될 수 있는 일자리의 96% 이상은 ‘단순 노무직’이다. 그것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한시적인 자리에 불과하다. 때문에 ‘청년 일자리’ 창출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다.

▲ 지난 1월28일 녹색성장기본법에 대해 시민 사회단체들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진보신당 제공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펴낸 시황 분석 자료를 통해 정부의 녹색 뉴딜 정책이 금융권 부동자금을 실물로 이동시켜 ‘그린 버블’을 잉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팀장은 “그린 뉴딜 정책은 지난해 10월부터 실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글로벌하게 추진되는 공통 어젠다이다. 몸통은 ‘뉴딜’인데 ‘그린’이라는 포장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뉴딜 정책으로 인해서 성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재차 상승한다면 그야말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달고 다니는 일시적 경기 회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린이라는 포장이 필요했다. 뉴딜 정책의 성공 여부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천문학적으로 풀린 시중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기 회복을 이끌어낼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녹색 성장에 대한 섣부른 전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거품에 그쳤을 때의 산업·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경기 부양이나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정부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녹색 미래’를 설계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 2월2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녹색박람회(그린페어 2009).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2월25일 청계광장 입구에 여러 동의 천막이 옹기종기 자리 잡았다. 이곳에는 녹색미래실천연합(이하 녹실련)에서 주최하는 ‘그린페어 2009’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S KOREA,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수력원자력, 환경관리공단,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등이 참여했다.

보도자료가 맞다면 이 자리는 말 그대로 참여 단체들의 친환경적인 최신 기술을 구현하는 장소여야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차세대 박막 태양전지 기술 등을, 에너지관리공단은 신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체험 전시물을, 대한주택공사는 현재까지 개발된 에너지 절약에 관한 기술들을 전시해야 했다.

일단 그러기에는 부스 자체가 대형 천막처럼 좁았다. 기술을 체험하거나 전시하는 장비 대신에 기존 홍보 영상을 재현하거나 관련된 기술을 설명하는 부착물이 자리 잡았다. 에너지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어제까지 다른 행사를 준비하다가 이쪽으로 넘어와서 준비했다. 하루 만에 만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준비 기간이 매우 부족한 나머지 한쪽 구석에서는 한창 벽에 붙일 문구를 만들고 있었다. 참가 단체의 한 관계자는 “높은 분을 통해 2월 중순쯤에 연락이 온 것으로 안다. 우리도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기존의 홍보물을 재활용하는 수준이다”라고 전했다.

녹실련측은 “참관객이 25만명에 이를 것이며 이번 박람회가 국민에게 녹색 성장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끔 해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녹실련은 지난해 11월20일 창립발기인대회를 열었고 그린페어 행사를 불과 5일 앞둔 2월20일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녹실련은 한반도 대운하를 적극 지지했던 ‘친환경물길잇기전국연대’와 ‘디지털미래연대’가 주축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녹실련 회원들은 지난해 12월29일 한반도 대운하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있는 ‘4대강 하천 정비사업’ 중 나주 영산강 생태하천 사업 착공식에서 정비사업 착공을 환영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해 정부의 관심을 반영했다. 행사는 1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청중이 모여 ‘녹색 성장’을 만세 삼창하면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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