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와 <워낭소리>의 메시지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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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는 때때로 한 시대의 흐름을 기록하는 ‘현대 생활 백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청률 판도에 따라 당대의 정서적 경향성을 가늠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중무휴로 쏟아지는 드라마의 폐해를 지적하는 소리도 적지 않지만, 대중의 환호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심지어는 ‘막장’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난이 쏟아질수록 시청률은 더 오르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곤 한다.

바야흐로 드라마 전성시대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상의 대화는 드라마 품평으로 가득하다. 최근에 가장 크게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는 뭐니뭐니 해도 <꽃보다 남자>와 <아내의 유혹>이다. 이들 드라마를 모르면 대화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에는 이 두 드라마를 유머러스하게 비튼 패러디물도 풍성하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 드라마들에서는 최근 들어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나쁜 남자’ 혹은 ‘나쁜 여자’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주인공들은 위악(僞惡)적이든 아니든 외면적으로 나쁘면서도 강한 캐릭터이다. 대중이 이끌리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는 여자들에게 휘둘리면서 유약한 면모로 일관하는 <아내의 유혹> 속 남자 주인공이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것과 대비된다. 대중이 우유부단하고 지리멸렬한 인물보다 거칠더라도 현실 돌파 능력이 있는 인물에 더 많이 감정 이입을 하고 대리 만족하는 것은, 요즘 같은 낙담과 궁핍의 시대에 그리 놀랍지 않을 일이다.

판타지와 극단적인 구성으로 버무려진 드라마들이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무기력감이 그것을 자극하고 유인한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득세하는 것도 막장적인 요소가 강할수록 감정 이입의 강도도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어느 광고 문안처럼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 된다면 이런 드라마가 과연 기를 펼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을 넘겼지만, 애초에 부르짖었던 ‘실용’은 아직도 기진맥진이다. ‘서민 경제부터 챙겨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같은 대통령의 말은 넘치지만 실체적으로 드러나는 정책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약하고 모호하다. 정치 또한 ‘막장’이라는 비판을 들어가며 폭력과 말 바뀌기의 오래된 장면을 재탕하고 있다. ‘실용’이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당면한 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실용이다. 실용이 위에서 아래까지 고루 스며들려면 말보다 몸이 앞서 전진해야 한다.

관객 2백만을 넘어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워낭소리>에는 생애의 마지막을 동반하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교감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마음을 내내 붙들어매는 것은, 세월 앞에 무력한 심신을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에게 온몸을 바치는 두 주인공의 헌신이다. 그 지극한 헌신이야말로 무한 감동의 최고 판타지이다.

지금 이 땅에는 자기 일신의, 자기 세력의,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서 온몸을 던지는 정치인은 넘쳐나지만 오로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지는 정치인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심금을 울려줄 ‘워낭’의 소리는 아득하고, 이대통령이 지난 정권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엎어놓은 것만이 유일한 업적으로 꼽히는 대통령이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은 벌써부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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