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경제학’을 고발하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3.1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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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을 위험에 빠뜨린 경제 법칙과의 ‘부적절한 동거’ 실상 파헤쳐

격세지감을 최근 경제학 관련서 출간에서도 느낀다. 자기계발서 성격까지 띤 온갖 투자 성공기들이 경제학 서적 판매대를 메웠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최근에는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어서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있기 전만 해도 미국에 투자하라는 주식·부동산 관련 정보서까지 나왔는데, ‘글로벌 위기’ 국면에 힘을 얻은 듯 세계 경제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저질러놓은 해악들을 고발하는 책들이 줄이어 출간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사회주의자이거나, 시장 경제에서 실패한 자의 악담 정도로 얕잡아보았을 성싶은 책들이다. 그러나 결국, 세계화의 그늘에 얼마나 비참하고 악랄한 것들이 있는지 하나 둘 까발려진 상황에서는 이런 책들이 반란을 일으키듯 일제히 일어서는 것이다.

최근 나온 <적과의 동침>은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매일 식탁에 오르는 생선의 유통 경로에 얽힌 경제 커넥션까지 분석하는가 하면 세계 경제를 얼게 만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배경까지 샅샅이 뒤지는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자본주의의 실체를 밝힌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악당 경제학’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해냈다.  

저자는 “우리는 행복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악당과 손을 잡았고, 그들의 논리에 따라 살고 있다. 지구상에 노예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착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첨예한 대립, 모기지론으로 멋진 집을 사고 펀드로 금세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세계인의 망상, 저지방 식품이 날씬한 몸매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 은행과 신용카드가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콩고 아이들의 피가 서린 반지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커플들…. 이렇게 아이러니한 모든 상황은 우리가 ‘악당’과 ‘동침’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21세기가 노예 시대의 절정을 맞은 까닭

▲ 경찰에 검거된 러시아 매춘부들(위)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그늘이다. ⓒ연합뉴스
이 책이 눈에 띄는 것은 주장하는 내용의 경제학적 논리보다 저자가 전하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평범한 사람의 삶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정의 냉장고에 들어 있는 바나나에, 결혼반지의 금에, 신발장의 신발에 현대판 ‘노예’들의 핏빛 신음 소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노예 하면 흑인 노예를 연상해 지금은 노예가 거의 사라진 세상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21세기에 노예 시대의 절정을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엔이 최근 노예 제도가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예 제도가 번성하게 된 것은 바로 자본주의와 세계화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탐욕에 말려든 세계인들, 어릴 때부터 노동에 뛰어드는 제3세계 아동,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사람들, 경험을 대가로 싼값에 쓰고 내쳐지는 젊은 인재들…. 저자는 이 또한 모두 사실상 현대판 노예라고 말했다.

‘노예’를 양산하고 부리는 ‘악당’은 악질적으로 부를 챙기고 착취를 가하는 일부 자본가들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광범위한 의미로 경제 활동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부정적인 그림자를 말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기업화되는 매춘,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중국의 ‘짝퉁’ 산업,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소금, 아프리카 노동력을 착취하는 세계 기업 등은 검은 돈을 창출하는 ‘악당’이 경제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진실을 철저하게 은폐해온 사실들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잠복해 있는 악당과 ‘동침’을 거부하고 무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커져 사회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새로운 ‘경제적 종족주의(Economic Tribalism)’, 즉 유교·이슬람·성서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윤리적 결속력으로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저자의 논리 하나를 정리하면 이렇다.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된 자본주의의 무법자들 때문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 이슬람 금융은 더욱 굳건한 힘을 발휘했다. 그 이유는 이슬람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치, 즉 샤리아(Sharia; 이슬람의 법체계) 때문이다. 이슬람 금융에서는 돈을 생산적인 수단으로써만 이용할 것을 권장하며 투기를 금하고 있다. 이자놀이나 헤지펀드, 사모펀드, 금융 파생상품은 자산을 약탈해 현금을 부풀리는 상품이라는 인식 아래 금기시되고 있어 발붙일 곳이 없다. 지금의 경제 모순과 끝없는 불황의 해답을 이슬람 금융에서 찾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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