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얄미워’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3.1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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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보호 명목으로 WBC 차출에 ‘제동’…각국 성적에까지 영향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도쿄돔에서 열린 한국 대표팀 공식 연습에서 추신수(맨 왼쪽)가 트레이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기 전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라는 이름은 한국 대표팀의 희망과 같은 의미였다. 대표팀은 구성 당시부터 큰 진통을 겪었다. 박찬호(필라델피아 필리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김동주(두산 베어스) 등 지난 10년간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투타의 기둥 선수들이 모두 대표팀을 고사하며 전력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추신수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WBC 조직위원회에 “보이콧할 수도 있다”라는 압력까지 넣은 결과 대표팀 합류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추신수 역시 “대표팀에서 반드시 뛰고 싶다”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약해진 한국 대표팀의 전력을 뒷받침해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정작 추신수는 지난 3월9일 끝난 WBC 1라운드(아시아 예선)에서는 이렇다 할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야구는 잘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단순히 성적상 도움이 안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의 합류 여부가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는 점이다. 다행히 한국은 순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1-0으로 꺾으며 1위를 확정하고, 2회 연속 아시아라운드를 1위로 통과했다.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면 추신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아니 추신수가 아니라 그의 소속팀 클리블랜드가 주요 타깃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추신수가 왼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면서 불거졌다. 추신수는 하와이 전지훈련을 마치고 3월1일 도쿄에 입성한 뒤 트레이너를 통해 “팔꿈치가 좀 아프다”라고 털어놓았다. 추신수는 지난 2007년 말 왼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바 있다. 그때만 해도 큰 일로 번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 트레이너들의 1차 진단은 단순 근육통. 보고도 그렇게 올라갔다.

추신수, 지명타자로 3경기만 나설 수 있어

그러나 다음 날 대표팀이 발칵 뒤집혔다. 추신수의 소속 팀인 클리블랜드에서 훈련부터 자제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WBC 담당 의사가 진료를 한 뒤에야 훈련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 전력이 있는 선수인 만큼 무리한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 구단 입장이었다. 며칠 뒤에는 더 나아가 아예 대표팀에서 빼줄 것을 요청해왔다. 당시는 이미 최종 엔트리가 결정된 상황. 추신수가 빠지면 다른 팀보다 1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불리한 입장에 놓일 뻔했다. 결국, 클리블랜드 구단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팀 지정 의사의 3각 협의가 끝난 뒤에야 ‘지명타자로 3경기만 나설 수 있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WBC의 창설 배경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WBC는 축구의 월드컵이나 마찬가지인 대회이다. 그러나 규모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월드컵은 국가 간의 대리전 성격이 강한 축구의 특성상 클럽팀보다 소속 국가의 비중이 더욱 크다. 수천만 달러짜리 몸값 선수라도 클럽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드컵에 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클럽팀 소속 국가의 불매 운동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WBC는 야구의 유일한 최고 리그인 메이저리그가 주관하는 대회이다. 야구의 세계화가 슬로건이지만 그 속에는 메이저리그의 수익 창출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거가 각국의 대표로 출전해, 국제 대회로 분위기를 타면 메이저리그가 다른 세계로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WBC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딜레마가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모임이다. 바꿔 말하면 WBC의 이익이 구단의 이익을 넘어설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메이저리그 구단 입장에서 보면 WBC에서 자신들의 선수가 부상당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당장 소속팀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몸값부터 그렇다. 경기당 수억 원을 챙겨가는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에 결장하게 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팀의 몫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조금의 부상만 있더라도 출장 자체를 막고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추신수는 아직 신인급 선수이지만 팀 내 최고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구단의 행태가 한국 대표팀에서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대체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렇다. 마쓰이(뉴욕 양키스), 우에하라(볼티모어) 등 적어도 5명 정도의 대표급 선수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장하지 못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러고도 꽤 풍성한 라인업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달랐다. 메이저리거라곤 추신수 한 명뿐이었다. 그의 공백은 당장의 큰 손해로 이어진다는 계산이 나왔고 결국, 더욱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카는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현역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인 알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는 결국, 구단의 반대로 도미니카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푸홀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표팀 합류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시즌이 끝나고 받은 가벼운 팔꿈치 수술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세인트루이스는 “시즌 후 수술받은 선수는 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라며 푸홀스를 만류했다. 푸홀스의 몸값은 1천6백만 달러. 거액을 안겨야 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푸홀스를 험난한 경기에 내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푸홀스는 자신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카는 그외에 블라디미르 게레로(LA 에인절스)도 부상 전력 탓에 대표팀에 합류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게레로 역시 현재 경기를 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상황이다.

도미니카 야구는 메이저리그가 출발점이자 마지막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렇다 할 반론도 못해보고 주축 선수의 이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승 후보로까지 꼽혔던 도미니카는 WBC 1라운드에서 약체 네덜란드에 덜미가 잡히며 탈락하고 말았다. 다른 훌륭한 선수들도 많았지만 ‘정신력’ 부분에서 일찌감치 상처가 많이 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이완은 이번 대회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에까지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이완 내 프로팀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유력 프로팀들은 부상을 이유로 주력 선수 차출을 거부했다. 타이완은 어쩔 수 없이 젊은 선수들과 마이너리거들 위주로 팀을 짜야 했다. 결국, 결과는 참패의 연속.

왕첸밍 투수 가진 타이완도 번번히 좌절

비단 이번 대회뿐 아니다. 타이완은 아직 단 한 번도 최강의 전력으로 대표팀을 출범시킨 적이 없다. ‘타이완의 박찬호’라 할 수 있는 왕첸밍 때문이다. 왕첸밍은 타이완을 넘어 메이저리그 최고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이다. 그러나 그는 늘 팔꿈치 부상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는 선수이다. 타이완은 늘 왕첸밍의 합류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번번히 양키스측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가 양키스를 떠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이 된다. 김인식 감독은 “국제대회에 나와 보면 때로는 투수가 90%의 전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적인 투수 왕첸밍을 앞세운 타이완은 두려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한국과 일본 중 한 팀만 제치면 세계 무대로 뻗어나갈 기회를 얻게 되는 타이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궈홍치, 후친롱 등 LA 다저스 소속 선수들도 합류하지 못했다. 부상 위험이 그 이유였다. 타이완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며 보다 많은 선수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때문에 타이완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거만 놓고 보면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화. 엄밀히 말하면 메이저리그화가 타이완 야구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성과를 국제 대회 성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내면에는 역시 메이저리그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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