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을 하긴 했는데…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3.16 22: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일보, 1천5백억원 투자해 베를리너 판형으로 교체…광고주들은 “두고 봐야”

▲ 중앙일보가 3월16일부터 판형을 바꾸자 조선과 동아가 긴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중앙일보가 승부수를 던졌다. 신문 판형을 3월16일자부터 기존 대판의 71% 크기인 베를리너 판형(가로 323㎜×세로470㎜)으로 바꾸었다.

중앙일보는 일본 도쿄 기계제작소(TKS)에서 2006년(2대)부터 2007년(4대)까지 신형 윤전기 여섯 대를 들여왔다. 도입 당시 한 대당 가격은 2백50억원. 모두 1천5백억원을 투자한 셈이다. 신형 윤전기는 48면을 동시에 컬러로 인쇄하는 것이 가능하고, 시간당 발행 부수도 최대 9만부에 달한다. 기존 대판 윤전기가 최대 6만~7만5천부 정도인 것에 비하면,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신문을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월6일부터 베를리너 판형으로 일요일 신문인 중앙선데이(SUNDAY)를 발행해오고 있다. 1년 정도 제작하면서 이미 실험을 한 셈이다.

이보다 앞서 2006년부터 중앙일보는 자체 디자인연구센터에서 베를리너판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서체를 개발하고, 독자와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기 위해 1천여 명에 달하는 패널단을 운영했다. 그런데 판형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한때 “중앙일보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라는 소문이 언론계에 나돌았다. 윤전기 등을 도입하면서 엄청난 환차손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유권하 전략기획팀장은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여러 기업들이 키코(kiko·환율이 일점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 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 상품)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엔화 차입금 문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루머가 돈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존 대판보다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10여 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의 유력 신문들은 판형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77개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신문의 60% 이상인 100여 개 신문이 판형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유에스에이투데이 등도 크기를 줄였다. 특히 이번에 중앙일보가 교체한 베를리너판은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스페인의 엘파이스와 같은 유력지들이 잇따라 채택한 것이다. 이처럼 판형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유팀장은 판형을 바꾸는 배경에 대해 “기존 대판 크기의 신문이 너무 커서 독자들이 읽기가 불편하다는 지적이 안팎으로 많았다. 이에 대판의 정보량과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베를리너판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중앙이 ‘과감하게’ 판형을 바꾼 것은 독자 수를 늘리고, 광고 물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언론사의 최대 수익원인 광고량 증가가 핵심일 것이다. 당연히 중앙은 광고주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에 베를리너판이 나오기 전부터 광고주 등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새 판형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지난 3월10일에도 롯데호텔에서 광고주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열었다. 중앙일보측은 “대부분의 광고주들이 판형 변경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그런데 광고주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시 설명회에 참석했던 한 광고주는 “새 판형이 참신하기는 한데, 판형만 바꾼다고 해서 당장 광고 물량을 늘릴 수는 없다. 앞으로 새 판형에 대해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독자 수가 늘어나게 되면 자연히 광고량과 단가도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독자가 늘어난다 해도 올해 광고 예산이 이미 책정되어 있는 데다, 경기가 안 좋아서 광고를 더 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판 크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이 베를리너판에 빨리 익숙해질 것인지도 관건이다.

신문업계에서는 중앙일보가 판형을 축소함으로써 종이와 잉크 값 등 원·부자재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중앙일보측은 이에 대해 “제작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판형을 바꾸면서 종이의 질을 높였고, 지면 수도 늘렸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

중앙일보가 판형을 교체한다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다른 신문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신문협회 회장단 회의의 주요 주제로 논의되었고, 관련 보고도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3대 메이저 신문사에 속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다. 양사는 중앙일보측에 베를리너판 채택을 재고해주기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대신, 대판보다 크기가 작은 뉴욕타임스 판형으로 3사가 함께 교체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동아일보는 대판 윤전기를 교체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베를리너판으로 바꾸려면 윤전기를 새로 들여와야 한다. 재정적으로 막대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조선·동아일보가 중앙일보측에 뉴욕타임스형으로 똑같이 바꾸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뉴욕타임스 판형으로 교체하려면 대판형 윤전기를 변형시키기만 하면 된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지면의 이미지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조선·동아일보의 논리였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이를 거절했고,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했다.

이처럼 중앙일보는 판형을 바꾸는 승부수를 던지며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를 선택했다. 이제 남은 변수는 중앙일보의 변신이 독자와 광고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태풍이 될지, 미풍이 될지는 머지않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