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가 새도 당하고만 산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3.1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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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 주민들 “우리에게도 감시 권한을”

▲ 주민 대표들이 아파트 관리비 내역서를 확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영무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하늘마을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가 줄줄 새고 있다”라며 임대아파트 관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관리비 편성이나 집행, 감시·감독의 권한이 없어 관리 주체가 회계 관리를 잘못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늘마을 주민들이 관리비가 부당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지난해 11월. 주민 임소정씨(가명)는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 싶어 관리비 집행 내역을 뽑아봤다. 그랬더니 불필요하게 나가고 있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당직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당직비가 매월 1백20만원씩 1년 가까이 지출되고 있었고, 특근 식대도 매월 20만원 안팎씩 꼬박꼬박 나가고 있었다. 임씨가 거주하는 3단지뿐만이 아니라 1, 2, 4단지에서도 똑같이 당직비와 특근 식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를 모두 합치면 7천만원가량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당시 관리소장이었던 ㅇ씨는 “직원들이 24시간 격일 근무를 한다. 주 40시간을 초과했기 때문에 연장 근무 수당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임금이 올라간다. 대신 당직비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금액을 추가로 할당하게 되면 법에도 저촉되지 않고 임금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임씨는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 급여 명세서를 보면 야근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 분양 아파트에서도 똑같이 24시간 격일 근무를 하는데 당직비 명목이 없다”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주민들은 ㅇ씨의 비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진욱씨(가명)는 “인터넷 업체가 지급한 홍보비가 2단지 잡수입 통장에는 들어왔는데 나머지 1, 3, 4 단지 통장에는 입금되지 않았다. 업체에 확인한 결과 ㅇ씨의 개인 통장으로 입금했다고 하더라. 또 다른 단지에서는 알뜰시장에 참여한 업체들이 1년 계약금으로 5천8백만원을 지급했는데 1단지는 1천4백만원만 지급했다. ㅇ씨가 알뜰 업체를 선정하면서 계약금 일부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직하는 사람 없는데도 당직비 꼬박꼬박 나가

이런 정황도 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한참 승강이를 벌인 뒤에야 관리비 내역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임씨는 “임대아파트 관리 규약을 보면 주민들 요구가 있을 때에는 관리 내역서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해도 처벌 조항이 없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가 내는 관리비가 어떻게 쓰여지는지 보는 것인데도 언성을 높이고 싸워야 할 정도로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힘이 없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이 관리비 운용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라고는 이 업체에 위탁관리를 맡긴 대한주택공사에 민원을 넣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일반 분양 아파트라면 주택법에 의거해 회계 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임대아파트라 하더라도 임대 사업자가 민간 건설회사라면 회계 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늘마을처럼 임대 사업자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대한주택공사 및 지방공사인 경우에는 회계 감사를 청구할 수 없다. 임대주택법의 맹점이다.

하늘마을을 관리하는 서울지역본부 고양광역관리단은 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양광역관리단 방서용 부장은 “관리 용역업체와 주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이들이 협의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우리가 중간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감사 활동을 펼쳤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더 이상의 인터뷰는 사양하겠다. 이 문제가 8~9월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으면 그때 다시 취재하러 와라”라며 더 이상의 응답을 거부했다.

고양광역관리단의 이러한 태도에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리 용역업체도 불만을 터뜨렸다. 용역업체 관리소장이었던 ㅇ씨는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문제가 불거지니깐 일단 나를 해임시키더라. 관리단은 우리 업체가 알아서 해결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식이다. 차라리 회계 감사를 실시해라. 내 잘못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으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보상할 것은 보상해주는 것이 공정하다. 지금처럼 주민들이 개인 소견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다툼을 벌이게 되면 나만 바보가 되는 꼴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일산시의 하늘마을 아파트 주민들은 관리비 부당 사용을 감시할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사저널 임영무

임대아파트 관리 시스템, 법적 근거 미비해 주민만 ‘피해’

대한주택공사는 하늘마을에 최초로 시행된 통합 관리 시스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하늘마을은 임대아파트 최초로 통합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시범 아파트이다.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한 명의 관리소장이 1, 2, 3, 4 단지를 모두 관리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관리소장의 급여 내역서를 보면 중식 보조비 6만원, 업무 추진비 25만원, 주택관리사 자격증 수당 30만원 등이 각 단지별로 모두 책정되어 있다. 주민들은 이것이 무슨 통합 관리 시스템이냐고 반발한다.

관리소장이었던 ㅇ씨는 “주택관리사 자격증 수당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대한주택공사가 어떻게 승인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나의 자격증 수당은 30만원이 아니라 1백20만원으로 승인이 난 것이다. 업무 추진비도 100만원으로 책정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1인당 중식 보조비는 6만원인데 왜 관리소장만 24만원이냐고 물었다. “4개 단지를 관리하니깐 만나야 하는 사람이 일반 관리직원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한주택공사 서울주거복지사업단 주택관리팀 이승희 대리는 “당시 관리소장의 월급을 승인해준 직원은 퇴사하고 없다. 통합 관리 시스템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기본적인 규정에 근거해 행정 담당자가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 관리소장의 월급이 5백19만원으로 책정된 것이 과다하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임대주택법과 통합 관리 시스템의 법적 근거 미비로 애꿎은 임대아파트 주민들만 피해를 받고 있다. 관리 용역업체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이다. 전국임대아파트연대회의 김영관 기획실장은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나 임대료를 내고서도 의사 결정 권한이 없다. 임대 사업자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주민들이 법의 보호는커녕 직접 권리를 찾아나가야 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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