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연구 ‘뿌리 내릴’ 곳은?
  • 석유선 (의학 전문 프리랜서) ()
  • 승인 2009.03.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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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등은 ‘가속도’, 한국은 ‘정체’최근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가 대안으로 등장

▲ 3월9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줄기세포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척수 손상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짐 랑게빈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9일(미국 현지 시간) ‘연방정부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재개하는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발 줄기세포 전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인간 윤리 저촉을 이유로 지난 2001년 8월 ‘이미 확립된 배아 줄기세포주 연구에만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하고 새로운 배아 연구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라며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중단한 지 8년 만에 일어난 획기적 변화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한 주 정부 차원에서는 막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꾸준히 연구를 계속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해왔다.

국내외 과학자들은 오바마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미국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그야말로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될 것이라고 부러움 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동욱 교육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연세대 의대 교수)은 “부시 전 정부의 지원 제한에도 미국 연구자들은 주 정부 지원금이나 민간 연구비로 주로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많이 해왔고 그동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정부의 지원 재개 결정은 학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 미국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황우석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줄기세포 연구의 전부 아니다

이렇게 미국이 발빠르게 치고 나가는 동안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는 아직도 황우석 파동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 황박사가 논란을 일으킨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마치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의 전부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배아 줄기세포’는 난자와 정자의 수정으로 생긴 수정란 유래 배아 줄기세포를 의미한다. 연구진들은 보통 불임 부부가 아기를 갖기 위해 체외 수정을 한 후 임신에 사용하고 남아 폐기 처분될 운명의 수정란 배아를 가지고 ‘수정란 유래 배아 줄기세포’를 만든다.

전세계 대다수 학자들은 이같은 수정란 유래 배아 줄기세포와 배아를 사용하지 않는 ‘성체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팀만 해도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윤리논란에서 자유로운 ‘역분화 배양 방식의 줄기세포(iPS, 일명 유도만능 줄기세포)’ 연구가 일본을 필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4년의 냉각기를 거치면서 막대한 자금력을 쏟아붓는 미국, 영국, 일본 등에 비해 숨이 가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비단 배아 줄기세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기초 연구 분야 지원부터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과 ‘될성 부른 나무’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현재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 주자는 미국이다. 미국의 제론(Geron) 사는 올해 1월 연방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배아 줄기세포를 활용한 척추손상치료제의 임상 시험을 허가받았다. 세계 최초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시행된 것이다. 뒤이어 ACT 사 실명 치료제와 인공 혈액, 노보셀 사 당뇨병 치료제도 임상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영국도 런던 대학과 뉴캐슬 대학 등에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 중이고, 동물 난자에 사람 핵을 이식하는 이종 간 체세포 복제 연구도 허용했다. 일본도 교토 대학이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역분화 방식의 줄기세포 연구를 이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황우석 박사가 연구책임자로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 신청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신청을 불허했고, 차바이오텍 정형민 박사팀의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신청도 보류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해 수암연구원 현상환 자문교수단장(충북대 수의과대)은 “정부 정책 결정자들이 편향된 결정을 내렸다. 여론이 무서워서 연구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라며 당분간 재심의 신청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차바이오텍 관계자는 “정부가 지적한 부분의 재검토를 통해 4월 초쯤에 재심의를 요청할 것으로 안다”라며 연구 계획 진행 의지를 전했다.

학계에서도 생명윤리 논란이 있지만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역시 장단점이 있는 만큼 연구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노재경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연대 의대 교수)도 최근 라디오 대담에 출연해 “3월 말 내지 4월께 차바이오텍 연구 계획 재심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무조건 불허하거나 무조건 승인한다고 (줄기세포 연구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기초를 잘 다져야 된다는 생각이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역분화 배양 방식은 윤리 논란 벗어날 수 있어…정부 지원 절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윤리 논란에서 자유로운 역분화 방식을 통한 만능 줄기세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차병원 김광수 박사팀이 난자 없이 쥐의 신경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능 줄기세포(iPS)를 만든 데 이어 서울대 강수경 교수팀이 저분자 화합물을 이용해 성체세포의 역분화에 성공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연구 중인 박세필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iPS는 2007년 <타임>이 선정한 과학기술 업적 1위에 선정되었으며 체세포 복제에 따른 윤리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일본 교토 대학에서만 이 연구를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약 4백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라며 우리 정부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영국, 일본 등은 자극을 받아 한층 줄기세포 연구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비는 2007년 3백50억원, 지난해는 되레 3백44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답보 상태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한 해 줄기세포 연구비로 약 1조원 이상, 영국은 1천3백90억원, 일본은 1천6백70억원, 프랑스는 6백30억원 등을 쏟아붓고 있다.

지원액 차이가 크다 보니 자연히 기술 경쟁력도 점차 떨어지는 추세이다. 2006년 한국의 줄기세포 기술 경쟁력은 세계 7위로 평가 되었고, 2007년 우리나라 배아 줄기세포 누적 논문 수는 세계 4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허 경쟁에서는 이미 10위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평가되는 데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한풀 꺾인 것도 연구자들을 힘 빠지게 한다.

한 줄기세포 연구자는 “4년 전 (황박사 논문 조작) 사태 이후 마치 줄기세포 연구 모두를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있다. 휴일 없이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자에게는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과 응원도 절실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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