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혼’제헌 국새는 어디에…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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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국새 발견 계기로 행방불명된 ‘1호 국새’에 관심 쏠려

 

▲ 맨 왼쪽부터 사진 자료로만 남아 있는 제헌 국새, 2대 국새, 3대 국새. 4대 국새.

 

최근 고종 황제가 사용했던 국새가 100년 만에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지난 3월17일 문화재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이 공개한 고종 황제의 국새는 ‘황제어새(皇帝御璽)’이다. 고종이 친서에 찍은 것으로는 유일한 국새로 높이 4.8㎝, 무게 7백94g이며 거북이 모양이다. 손잡이는 금과 은의 비율이 18 대 81, 몸체는 41 대 57로 나타났다. 미국에 있는 한 교포로부터 이 국새를 구입한 국립고궁박물관측은 조만간 일반에 공개하는 것과 함께 국보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고종 황제의 국새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주목되는 것은 ‘제헌 국새(1호 국새·최초 국새)’의 행방이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5월부터 1962년 12월31일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해 각종 외교 문서와 고위 공무원 임용장 등에 사용했던 ‘제헌 국새’는 지금 행방이 묘연하다. 언제, 어떻게, 왜 사라졌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등등에 관해 아는 이가 없다.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갖고 있고 ‘제헌 국새’라는 상징성이 크지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실물을 본 사람이 없다.

본지 제806호에서 실물 사라진 사실 처음 보도

‘제헌 국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2005년 3월24일자 <시사저널> 제806호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한때 국가기록원이 중심이 되어 ‘제헌 국새’ 찾기에 나섰으나 사진 자료나 제작자 등을 밝히는 데 그쳤을 뿐 실물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은 관련 작업도 중단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제1호 국새인 ‘제헌 국새’는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5월5일 국새 규정을 공포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가로 세로 6.06cm 정방형에 한자 전서로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조 옥새 전각장의 후손인 고 석불 정기호 선생이 전통 제작 방식인 주물 방식을 통해 만들었다. 서울에서 ‘천상당’이라는 도장집을 운영하던 박균달씨가 정부로부터 국새 제작을 의뢰받고 석불 선생에게 제작을 맡겼다. 글씨는 고 성재 김태석 선생의 작품이다. 이는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관인대장에 나와 있는 기록이다.

3년 이상 ‘제헌 국새’의 행방을 추적했던 국가기록원 지찬호 연구관은 “우연히 석불 정기호 선생의 회고록인 ‘고옥새간회정’이라는 책의 표지를 뜯어보니 개인(開印·인장을 열어본다) 과정의 것으로 보이는 인장 자국 3개가 발견되었다. 남긴 회고록에 ‘대한민국 국새는 내가 만들었다’라는 글도 남아 있었다”라고 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이 인장 자국을 관인대장에 찍힌 제1호 국새의 것과 비교해보았더니 ‘거칠지만 동일한 인장’이라는 검증 결과가 나와 실제 제작자가 석불 선생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은으로 만들어진 ‘제헌 국새’는 실물은 없지만 다행히 1958년 11월에 찍은 사진 11컷이 남아 있다. 인뉴(손잡이)의 모양이 독특하다. 보통 국새의 인뉴는 용이나 봉황인데 이 국새의 인뉴는 알 수 없는 모양이다. 국가기록원의 요청을 받고 사진을 살펴 본 경기대 연구교수 손환일 박사도 모양을 특정하지 못하고 ‘영수(靈獸·영적인 짐승)’라는 답을 내놓았다. 관계자들은 한때 사진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실물을 재현해볼까도 생각했으나 플라스틱으로 한 번 만들어보는 정도에 그쳤다. 인뉴의 모양만 놓고 보면 제헌 국새로서의 품격과 상징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고종 황제가 사용했던 국새의 인뉴가 거북이가 머리를 약간 들고 있는 듯한 모양을 취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아도 디자인이나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

‘제헌 국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지찬호 연구관은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50~60년대 당시 국새를 사용했던 관계자 여럿을 면담했으나 실체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사용 경험 등은 들려주었지만 국새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연구관은 “고종 황제의 국새처럼 해외에서 발견된다면 망신스런 일이다.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 때 사용했던 것인 만큼 꼭 찾아야 한다. 이번 고종 황제의 국새를 되찾은 것을 계기로 제헌 국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실물을 찾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4대 국새’ 사용…국새 의장품도 고루 갖춰

국새는 헌법공포문 전문, 훈·포장증, 중요 외교문서 등에 날인되는 나라의 인장으로 대통령령인 ‘국새 규정’에 근거해 사용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의 특수 금고에 보관되어 보통 한 해 1만5천회 남짓 사용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국새는 ‘제헌 국새’에 이어 거북이 모양의 ‘2대 국새’는 1963년 1월1일부터 1999년 1월31일까지 사용했고, ‘3대 국새’는 1999년 2월1일부터 2008년 2월21일까지 사용했다.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는 “지금 사용하는 봉황 모양의 ‘4대 국새’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 2월22일부터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자로 되어 있는 ‘제헌 국새’를 빼고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한글 도장이다.

‘2대 국새’는, 실물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으나 누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확실한 자료가 없다. 인뉴는 거북이 모양인데 기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든 것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대 국새’는 199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었다. 가로 세로가 10.1cm로 일본 국새보다 각각 0.1cm가 크다. 서예가 여원구씨가 글씨를 쓰고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조각을 담당하는 등 각 분야에서 엄선된 전문가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국새에 금이 가 있는 사실이 드러나 모양은 멀쩡했지만 만든 지 9년 만에 교체되는 운명을 겪었다.

현재 사용 중인 ‘4대 국새’는 2005년 10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지난해 1월 완성되었다. ‘제헌 국새’를 만든 석불 정기호 선생의 제자인 세불 민홍규씨가 단장을 맡아 전통 제작 방식으로 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크기는 ‘3대 국새’보다 줄어들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9.9mm이다. 재질은 금 합금이다. 다회끈(저고리보를 묶는 끈), 배안상(국새를 찍을 때 사용하는 상), 배안상 복건(배안상 위에 까는 천), 인궤 내함(국새를 보관하는 함), 호갑(인궤를 넣는 함), 국새 함장(각종 의장품을 보관하는 장) 등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새 의장품 16종도 만들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제작했다.

국새는 나라의 혼과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번 고종 황제의 국새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제헌 국새’를 찾기 위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이 다시 펼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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