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부대’, 어디까지 뻗었나
  • 정락인 ·안성모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08: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이 공기업 1백1곳을 분석한 결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만에 기관장과 감사 대부분이 대통령 ‘충신’들로 채워졌고 교체한 자리만 70%가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림 이재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이 따른다. 옛날에는 패한 국가의 보물, 곡식, 토지 등을 빼앗아 참전한 장수들에게 하사했다. 만약 전리품이 없다면 목숨을 걸고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병사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끝나면 전리품 잔치가 벌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명박 정부도 대선에서 승리한 후 곧바로 논공 행상에 들어갔다. 선거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떡고물’이라도 받아먹기 위해 정권 핵심부로 몰려들었다. 역대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중에서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공기업의 임원 자리는 대표적인 ‘전리품’에 비유된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전체 공공기관은 2백97개이다. 공기업(24개), 준 정부기관(80개), 기타 공공기관(1백93개)이다. 기관장과 감사를 합쳐 5백88개, 이사·비상임 이사 3천여 개 등 약 4천개의 자리가 주어진다. 어지간한 공신들은 기여도에 따라 한 자리씩 챙겨줄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공기업의 ‘탈정치화’를 위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임원 선임 제도와 임기 보장제 등을 제도화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는 공기업 개혁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공공기관장들을 ‘CEO형 전문가’로 발탁한다며 공모에 나서기도 했다. 공기업 개혁을 내세워 지난 정부에 임명된 기관장과 감사들에게는 사퇴를 강요했다. ‘임기제 보장’을 외치던 기관장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줄줄이 사퇴해야만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공기업의 기관장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현 정부 들어서서 임명된 주요 공기업 기관장 중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 맨 왼쪽부터 허준영, 안택수, 임인배, 김광원. ⓒ왼쪽부터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유장훈

     

 

기획재정부 관할 공공기관은 2백97개에 자리만 4천개

<시사저널>이 공기업 24곳을 비롯해 1백1곳의 공기업과 준 정부기관을 분석한 결과 기관장과 감사 자리 대부분을 지난 대선 때 캠프나 대통령직인수위, 정책자문단, 한나라당 등 여권 출신 인사들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낙하산 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어서면서 물갈이 수순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관장과 감사의 67.7%인 1백36명이 현 정부 들어 임명된 이들이다.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처럼 조직 통폐합 등을 앞두고 있어 공석인 6곳까지 합치면 70% 넘게 교체된 셈이다. 이제 지난 정부에서 취임한 공기업 수장은 18명에 불과하다. 특히 주요 공기업 24개 중에서는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황해성 한국감정원 원장만이 남았다.

기관장과 감사의 연령은 50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이 넘는 56.5%에 이른다. 특히 56세에서 60세까지가 37.9%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최연소는 이성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감사로서 올해 41세이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보좌역을 거쳐 17대 국회에서 30대 의원으로 활동했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데 따른 ‘달래기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젊은 기관장은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올해 51세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인 강위원장은 영화평론가로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노조와 갈등이 지속되면서 사퇴 요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최고령은 75세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감사를 맡고 있는 신찬수 삼화회계법인 회장이지만 비상임 감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다음인 이재환 이사장이 72세로 가장 연령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민정당에 이어 신한국당에서 국회의원 재선을 지낸 이이사장은 여권의 원로 인사 중 한 명이다.

출신 지역 면에서는 44.1%를 차지하는 영남권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그 가운데서도 대구·경북(TK)이 부산·울산·경남(PK)을 0.5% 차이로 쫓아가는 모습이다. 기관장만을 대상으로 하면 4% 이상 차이로 앞서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취임한 기관장의 경우 28.3%가 TK 출신이다. 반면, 같은 시기에 임명된 호남권 출신 기관장은 13.5%로 전체를 대상으로 했을 때(17.6%)보다 약세가 뚜렷하다. PK 출신도 전체 영남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같은 ‘TK 강세’ 현상은 출신 학교를 살펴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기관장과 감사의 출신 고교 순에서 경북고를 비롯한 경북사대부고, 계성고, 김천고 등 이 지역 학교 다수가 상위에 올라있다. 특히 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 중 23%가 대구·경북의 명문고를 나온 인사들이다. 최근 취임한 허준영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경북고와 고려대를 나온 허사장은 경찰청장을 지냈다. 정계 입문에 나섰다가 우여곡절을 겪은 후 철도공사 사장에 임명된 후 ‘낙하산 인사의 정점’이라는 비난과 노조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영남대 출신 약진 눈에 띄어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김광원 마사회 회장 등도 ‘보은 인사’ 논란에 휘말린 이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이다. 모두 15대에서 17대까지 내리 3선을 지낸 한나라당 중진 의원 출신이다. 최재덕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신종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양용운 환경관리공단 이사장 등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서 활략한 인사들도 여럿 된다. 건교부 차관을 지낸 최사장은 경제 2분과위에서 활동했고,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출신인 김사장은 기후변화에너지 TF에 참여했다. 두 사장은 경북고 선후배이기도 하다. 역시 인수위 자무위원을 지낸 양이사장은 경북사대부고를 나왔다.

출신 대학은 서울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영남대의 강세가 눈에 띈다. 영남대는 서울대-고려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기관장과 감사를 배출했으며 기관장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고려대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CEO 출신 기관장인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이수화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이 이 대학 출신이다. 이채욱 사장은 삼성물산 출신으로 GE코리아 회장을 지냈고, 이수화 사장은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지낸 금융 전문가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대통령의 외곽 지지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공동상임의장을 맡았던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도 영남대를 나왔다. 이대통령의 후보 시절 상임특보를 지내기도 한 엄이사장은 이듬해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에서 고배를 마셨다. 역시 ‘보은 인사’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다. 경북대를 나온 박봉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도 대표적인 TK 인사로 꼽힌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정책기획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하기도 한 박이사장은 공단에 오기 직전까지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있었다.

현 정부 들어 기관장으로 취임한 호남 인사의 경우 대부분 관료 출신들이다. 노동부 차관을 지낸 노민기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출신인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경찰대학장을 지낸 정봉채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여수지방해양수산청 청장 출신인 민경태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관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김주훈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친여 호남 인사로 꼽힌다. 조선대 총장을 지낸 김이사장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체육·청소년 분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이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인수위 시절에는 정책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전남 진도 출신으로 한국시민사회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김동흔 한국청소년수련원 이사장은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