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문화재에도 봄 올까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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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탐욕의 역사와 반환운동의 현실과 미래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 중 한 권이 반환되는 줄 알고 감격했던 날이 있었다. 1993년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장면은 TV를 통해 방영되었는데, 그것이 약탈 문화재 반환의 시발점이 될 줄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과 분노를 안겨준 일이 되었다. 그 일이 프랑스의 TGV 구입과 관련이 있었고, 프랑스 관계자들에게는 반환 의사가 거의 없었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문화 전문 외교관 중 한 명인 김경임 교수가 쓴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 유명 약탈 문화재 29선을 다룬 책이다.  김교수는 이 책에서 당연히 우리 문화유산의 수난사에 더 많이 애통해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반환운동의 기치를 드높이는 내용이다. 김교수는 “문화재는 한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증언하는 고귀한 유산이다. 그렇기에 문화유산은 그것이 태어난 땅, 그것을 만든 민족의 품 안에 있어야 한다. 훼손되고 약탈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은 우리 시대 모든 문명인의 의무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잦은 외침과 일제 식민 통치를 거치면서 우리 문화재도 많은 수난을 당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가 빼내 간 규장각 도서도 불법 반출 문화재의 표본이다.

▲ 헨더슨 컬렉션에 전시되어 있는 우리 문화재들. ⓒ홍익출판사 제공
1950년대 말 한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이 수집해 반출해간 한국 문화재 이야기에는 기가 막힌다.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자신의 외교관 지위를 이용해 5년여 동안 한국 문화재를 헐값에 수집해 갔다. 이것이 이른바 헨더슨 컬렉션이다. 헨더슨 컬렉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도난품인지 도굴품인지 혹은 지정문화재를 포함하고 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헨더슨 컬렉션은 단일 문화재가 아니라 한국 문화재의 특성을 보여주는 광범위한 규모의 최고급 문화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문화재에 대한 의식과 정책들이 확립되기 전인 가난한 한국에서 한 중견 외교관이 개인적 치부 수단으로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약탈하듯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세계적인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문화재 약탈과 박물관들의 탐욕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약탈 문화재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고, 한 편의 영화 같은 범죄의 흔적이 있으며, 반환을 놓고 벌이는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아울러 저자는 개별 문화재들에 대한 역사적 서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재 반환운동에 대한 각국의 입장과 논리를 꼼꼼히 살핌으로써 약탈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대응 자세를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문화재 반환운동의 반대편에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있다. 비유럽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대거 소장하고 있는 이들은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 시대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데, 국제 사회의 문화재 반환운동을 반대하는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류 보편 박물관 선언문’으로 반환 거부해

박물관들이 반환을 거부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2002년 18개 박물관이 참여해 발표한 ‘인류 보편의 박물관 선언문’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다른 문명과 교차하는 인류 보편의 문화재는 한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며, 박물관에서 다른 문명과 비교됨으로써 그 지속적 중요성이 인식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원래 장소에서 뿌리 뽑혀 온 문화재, 즉 ‘원 장소 맥락’을 상실한 문화재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했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런 이유를 내세워 박물관의 시대적·지역적 전시 현황이 새로운 맥락이므로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은 그 문화재에 부여된 새로운 맥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역공격하고 있다. 부자 박물관들의 이기적인 집단행동으로 지탄받고 있는 이 ‘인류 보편 박물관 선언’은 문화재 반환운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저자는 “문화재를 잃은 국민은 그 문화재의 소유권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 때문에 법도 관행도 없는 상황임에도 반환운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잠잠했던 중국이 문화재 반환운동의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약탈 문화재로 배를 채우는 박물관들이 ‘불법성과 비윤리성’의 부끄러움을 알고 순순히 내놓으리라고 믿는 것은 ‘도덕성’ 때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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