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신 몸’ 고이 가소서
  • 김연수 (생태사진가) ()
  • 승인 2009.04.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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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귀향을 앞둔 호사비오리 한 쌍이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북한강 상류인 강원도 춘천시 의암댐과 강촌 사이의 강변에서 월동한 이들은 4월 초 고향인 러시아의 비킨 강, 이만 강 유역과 백두산 지류로 돌아간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호사비오리는 전세계에 1천여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멸종위기종이며 국제 보호조이다.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녀석들도 모두 합쳐봐야 50마리 안팎이다.

호사비오리는 워낙 귀한 놈이라 1990년대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 수집광인 한 부호가 러시아의 조류학자 세르게이 스미렌스키 박사에게 1쌍을 채집해주면 2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었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르 강 유역 무라비오브카 오지에 생태학교를 운영하던 스미렌스키 박사는 그 돈이면 학교 시설을 보강하고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사라져가는 호사비오리 1쌍은 20만 달러보다도 더 가치 있는 세계의 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호사비오리의 개체 수가 10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때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 11월에 일본인 타카 씨가 서울 근교의 경기도에서 포획해 수집한 것과, 1912년 4월 북한의 함경북도에서 미국인 앤드류 씨가 수집한 유조 한 쌍이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유일한 기록일 뿐, 그 생태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존재 여부가 불분명해, 국내에서는 조류도감에 사진조차 없었고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강원도 철원·김화·춘천, 경남 진주, 충북 청원 등지에서 겨울철에 소수가 발견되자 문화재청은 2005년 3월 천연기념물 448호로 새로 지정했다.

호사비오리는 유난히 맑은 물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들이 즐겨 찾는 먹이가 1급수에서 사는 물고기들인 것 같다. 이들과 형태가 비슷한 비오리는 많은 개체 수가 전국의 하천에 넓게 분포하지만, 호사비오리는 1급수 중에서도 주로 강의 상류로 찾아온다. 철원 한탄강, 진주 지리산 계곡, 청원 금강 상류 등 겨울에 이들이 찾아오는 곳은 수질도 깨끗하지만 풍광도 비슷하다. 그들은 폭이 넓지 않고 근처에 산이 붙어 있는 하천의 양 폭을 따라 움직이면서 먹이를 잡는다. 1997년 이들의 번식지인 러시아의 이만 강 유역을 탐험한 적이 있는데 주변 분위기는 한국의 월동지와 흡사했다.

호사비오리의 번식 생태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다. 1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던 러시아 학자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호사비오리는 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다고 하는데 숫자가 워낙 적어서 둥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이들의 개체 수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지구의 자연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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