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 ‘잔불’ 다시 키우나
  • 박일한 (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09.04.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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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용산구 중심, 매수 문의 크게 늘어… “일부 사람들 투자 목적이 과장된 것”

▲ 최고의 투자처로 꼽히고 있는 한남동 뉴타운.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4월7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종합상가 내 한 중개업소. 몇 주 전부터 이곳에서 상담을 받아왔다는 중년의 한 고객은 이날 1단지 42㎡를 7억4천만원에 계약했다. 그는 마포구에 주택을 갖고 있었다. 이번 계약은 투자 목적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5억2천만원에 급매물로 나왔던 것이다. 단 5개월 만에 벌써 2억원이 올랐지만 그는 더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날 이 중개업소 김 아무개 사장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매수를 원하는 사람들의 매물 동향을 물어보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김사장은 “지금은 그저 단순히 가격 동향이나 확인해보려고 연락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계약금을 준비해놓고 구체적으로 상담해온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용산구 한남동 중앙선 전철 한남역 주변 중개업소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3일 서울시가 한남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 계획을 공고한 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수 문의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한남역 인근 ㅅ공인중개소 이 아무개 실장은 “매물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물건은 싹 다 들어갔다.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두어들이고 호가를 높이고 있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이 지역 다세대 주택 중 대지 지분 26㎡는 올 초 3억1천만원이었으나 현재 3억6천만원으로 올랐다. 대지 지분 1백90㎡인 단독주택은 2주 전만 해도 9억5천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11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를 시작으로 서초, 송파, 목동, 분당 등 버블세븐 지역은 물론, 성남 등 경기 남부 지역까지 집값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 성동구 성수동 등 강북 지역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1주일 사이 수천만 원씩 호가가 오른 경우가 많아 매수 대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집주인들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정부의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매물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런 추세를 놓고 부동산 경기가 저점을 통과하고 조만간 회복기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몇 주 사이 급변하는 시장 분위기는 정보업체들이 최근 내놓는 각종 데이터만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닥터아파트는 4월 초, 지난 3월까지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 값이 최고점을 기록했던 2006년 11월 시세와 비교해 90%까지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재건축 아파트 상승세는 강남 지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집마련정보사에 따르면 4월6일 기준 서울 재건축 아파트 매맷 값은 3.3㎡당 3천13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서울 지역 재건축 아파트의 매매가가 3.3㎡당 3천만원 밑으로 떨어진 지 6개월 만에 다시 회복된 것이다.

재건축에서 시작한 집값 상승세는 매매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부동산뱅크가 서울 지역 아파트 1백21만8백45가구를 대상으로 시가총액을 조사한 결과, 4월4일 기준 6백68조5천2백75억7천3백26만원으로 지난 3월 마지막 주 시가총액과 비교해 7천7백37억5천100만원이나 늘어났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서울 지역 아파트의 시가총액이 7천2백억원(2월 말 대비 3월 말 기준) 떨어졌지만 단 한 주 만에 모두 회복한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 6개월 만에 회복

▲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은마아파트. 한때 12억원을 호가했지만, 현재는 8~9억원 사이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최근 빠르게 집값이 회복되자 바닥론이 확산되는 것도 사실이다. 강남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바닥은 지났다”라고 강조하고 있고, 부동산 정보업체 상담 가운데는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매매를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내용이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집값 상승 분위기에 대해 ‘너무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라는 반응이다. 경기 회복이 선행되지 않는 가운데 최근 들썩이는 것은 개별 호재에 대한 국지적 현상일 뿐 매수세가 따라붙어 상승 추세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신중론을 펴는 곳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다. 건산연은 4월8일 ‘건설 부동산 경기 수정 전망’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로 인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 향후 실질소득 감소와 주식시장 침체로 금융 자산 손실액이 커진 만큼 부동산을 처분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가계가 늘어나면서 매수보다 매도 수요가 높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건산연은 “현재의 일시적 반등은 급격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 부담 완화와 양도세 중과세 폐지, 일부 저가 매물의 거래 증가, 잡셰어링 등 더딘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제한적이고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수요 회복세는 다시 위축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최근 집값 상승세 추이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호가’ 중심의 오름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매수세가 따라붙지 않는 가운데 각종 호재로 인해 집주인들의 기대치만 잔뜩 반영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집값 상승 움직임이 뚜렷한 곳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 마포구 상암동,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 등은 호가는 크게 뛰었지만 거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각 지역마다 최근 랜드마크 빌딩 프로젝트, 뉴타운 개발 등의 호재가 발표되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로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PB사업부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일부 거래되고 호가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매수세가 이를 따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강남 재건축 수요 외에는 일반 아파트 매매에 적극적인 고객을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지역 재건축의 경우는 상승의 이유가 뚜렷하다. 지난 4월1일부터 시행된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 개정안’에 따라 용적률이 완화되고 임대주택 의무 비율이 사라지는 등 서울 시내 저층(5층 이하)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성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 중과가 폐지된 상황에서 자금 여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 투자 목적으로 이들 재건축 매물을 노리고 있는 것일 뿐 대규모로 매수세가 따라붙을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미래에셋생명 이명수 부동산팀장은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은 주로 호가만 움직이는 것이다. 사업성이 개선된 개포주공, 은마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등 일부가 들썩이는 것을 가지고 전체 시장이 좋아질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실수요자가 관망세를 이어가면서 강북 지역이나 수도권의 다른 지역은 추가 하락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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