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뭉칫돈 어디로 흘러갔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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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게이트’는 이제 봉하마을을 흔들고 있다. 검찰이 밝혀야 할 ‘노무현 패밀리와 돈’에 얽힌 4대 의혹을 추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섰다.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 4월7일 오후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저의 집(부인 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해 그 돈(100만 달러)을 받아서(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사용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다”라는 사과문을 올리면서부터이다. 그는 검찰에 스스로 목을 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의 ‘고백’은 정가 안팎에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정권을 주름잡았던 ‘386 그룹’들의 힘이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노 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진보·시민 사회 진영에도 상당한 여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과 돈’은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03년 당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였다. 그는 ‘가난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불과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돈과 관련한 온갖 구설에 올라 있다. 그 자신뿐 아니라 형, 아들, 조카사위, 측근들이 골고루 도마에 올랐다. 조만간 ‘노무현 일가’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검찰청사에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박연차 게이트’를 계기로 불거진, 검찰이 밝혀야 할 ‘노무현과 돈’에 얽힌 4대 의혹을 추적했다.

▒장수천 빚 갚기 위해 100만 달러받았나?

노 전 대통령이 ‘빚’을 언급하면서 그가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채무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4월8일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에 있었던 한 인사는 “장수천 사업을 하면서 생겼던 빚 문제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마음에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95년 10월 친구가 설립했던 장수천에 보증을 섰다. 그런데 1996년에 이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5억원 정도를 추가로 투자해서 아예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리고 장수천 임원들을 측근들로 채웠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 사무국장 출신인 홍경태씨가 1996년 12월에 대표이사로 등재되었고, 1998년 11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 친구인 선봉술씨가 대표이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사무장이었던 최도술씨 등이 이사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등으로 경영 부실이 누적되었고, 지난 2000년쯤에는 34억4천여 만원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 빚을 갚지 못하자 2000년 8월 장수천에 보증을 섰던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와 선봉술·오철주 씨 등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의 땅과 상가가 압류되어, 경매로 11억3천만원에 팔렸다. 뿐만 아니라 장수천이 위치해 있던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공장 부지도 경매로 넘어가 지난 2001년 6월 2억3천여 만원에 팔렸고, 공장 설비도 2억원에 넘어갔다. 정치자금을 받지 않고서 직접 돈을 벌어 ‘생활 정치’를 해보겠다던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거액의 빚덩이만 남긴 채 그렇게 좌절되었다.

그런데도 남은 빚이 18억9천여 만원이었다. 그러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이기명씨의 경기도 용인 땅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19억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장수천의 악몽’은 계속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1996년 장수천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대표이사를 맡겼던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 홍경태씨가 생수 자동화 설비를 담당했던 서 아무개씨에게 빚졌던 5억여 원이 해결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홍씨는 지난 2006년 채무 탕감을 조건으로 서씨의 청탁을 받고서 건설 공사 수주 과정에 개입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고, 지난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그러면서 5억여 원의 빚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이 오래 정치를 했고 원외 생활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세를 지다 보니 남은 빚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밝힌 것도 장수천 빚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노 전 대통령 재산, 재임 중 7억6천여 만원이 늘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3년에 공개한 재산은 2억5백52만4천원이다. 그러던 것이 퇴임하던 지난해 4월15일 관보에 공개한 재산은 9억7천2백24만2천원이다. 재임 5년 동안에 7억6천여 만원이 늘었다. 본인, 배우자, 장남, 손녀의 재산을 합친 것이다. 재산이 증가한 원인은 주로 ‘예금 증가와 펀드 투자’이다. 대통령의 연봉은 1억5천여 만원에 달한다.

주목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채무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관보에는 몇 곳에 ‘채무’가 있다. 2002년 11월 대통령 후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 목록에는 3억2천4백여 만원의 채무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하고 나서 3개월 뒤인 2003년 2월 신고한 재산 목록에는 이 부분이 사라졌다. 당시 어떤 돈으로 이 채무를 변제했는가를 놓고 의문이 일기도 했다.

2003년 재산 공개 당시에 청와대 관계자가 “노 전 대통령이 살던 명륜동 빌라를 매각한 돈으로 이 채무를 갚았다”라고 밝혔으나, 2004년 재산을 공개하면서 이 빌라의 매각 잔금 2억6천만원이 새로 늘었다고 신고했기 때문이다(<시사저널> 제750호 참조). 정권 초이고 다른 현안이 많을 때라 별다르게 주목되지 못했으나 이 채무 매각 대금의 출처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이후 재산 공개에서 사라졌던 ‘채무’는 2008년 4월15일 재산 공개 때 다시 나타난다. 사저를 신축하는 데 공사비를 보태기 위해 부산은행에서 4억원, 현대캐피탈에서 6천7백만원을 대출받았다고 나와 있다.

‘빚’을 갚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시기는 2005~06년이다. 하지만 이때는 재산 공개 목록 어디에서도 ‘채무’를 볼 수 없다. 대통령이 된 지 1년 만인 2004년 재산 공개 때 노 전 대통령의 재산은 2003년보다 4억5천여 만원이 늘어났다. 2004년에는 5천8백여 만원이 불어났다. 2005년 시점에서 벌써 노 전 대통령의 재산이 취임 당시보다 6억원 이상 증가했다. 물론 어느 정도 ‘빚’은 자신의 재산으로도 충분히 갚을 만한 능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빚’의 정체와 실제로 100만 달러를 ‘빚’을 갚는 데 쓴 것인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들 건호씨의 ‘유학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으로 간 것은 2006년 9월이다. 재산 공개 서류를 뜯어보면 당시 건호씨는 8천여 만원을 유학 비용으로 쓴 것으로 나와 있다. 건호씨가 다니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생활할 만한 정도의 돈이 회사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회사 지원금과 자신이 마련한 8천만원으로 미루어보면 ‘유학’ 때문에 별도의 돈이 나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건호씨가 유학을 간 얼마 뒤 재계 소식통들 사이에 ‘박연차가 돈을 대줬다’라는 등의 소문이 돌았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왜, 박연차의 돈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재정적인 후원자 3인방이 있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기인 정화삼 전 제피로스골프장 대표가 그들이다. 강회장은 회삿돈 2백6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회장도 횡령과 탈세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정대표는 노건평씨와 함께 세종증권 매각 로비를 청탁하고 수십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 전 대통령 패밀리의 ‘돈줄’이 꽁꽁 묶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말 사석에서 만난 한 친노 인사는 노 전 대통령과 이들 3인방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회장이나 박회장, 정회장 등과 두루 만나기는 했다. 하지만 강회장과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혈연적 동지’ 관계라고 보면 된다. 비즈니스맨 가운데 대통령과 흉금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는 눈빛 하나만 봐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은 박회장에 대해서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을 세워놓고 만나는 것 같았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박회장에 대해서는 그저 사업가라는 인식이 강한 듯했다. 정화삼 대표에 대해서는 건평씨의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박회장은 1971년 경남 김해에 정일산업(태광실업 전신)을 세웠고, 당시 세무공무원이었던 건평씨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지난 2006년 노 전 대통령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봉하마을의 사저 부지 일부를 박회장의 ‘자금 관리인’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이 매입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팔면서였다.

노 전 대통령과 ‘혈연적 동지’ 관계인 강회장은 봉하마을 개발 사업을 위해 설립한 ㈜봉화에 지난 2007년 9월 50억원, 2008년 12월 20억원을 각각 투자비 명목으로 내놓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은, 일단은 적법한 투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가 되는 돈은 박회장 주머니에서 노 전 대통령 패밀리로 흘러들어간 6백만 달러(60억원)이다. 이 가운데 100만 달러(10억원) 정도는 2005~06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거쳐 권양숙 여사에게 건너갔다고 노 전 대통령은 밝혔다. 그런데 출구가 어딘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2월 조카사위인 연철호씨가 박회장에게서 투자비 명목으로 빌린 5백만 달러(50억원)도 미스터리이다. 연씨의 투자 회사에 실제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노 전 대통령측으로 흘러갔는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관여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5백만 달러의 용도와 사용처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봉하마을에 떨어진 돈 폭탄, 우연인가?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낙향을 전후해 ‘돈 폭탄’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되어 의혹이 제기된 돈도 있지만 원래부터 계획되어 집행 중인 돈도 있다. 하지만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관계없이 집행되는 사업들도 덩달아 의혹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박연차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 간) 5백만 달러는 화포천 개발에 쓰라고 준 돈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포천은 김해에서 낙동강에 이르는 21.2km의 하천이다. 김해시는 지금 이 하천을 개발하고 있다. 김해시청 조성문 환경보호과장은 “화포천 개발은 람샤르 총회 개최와 관련되어 200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올해까지 25억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2011년까지 60억원을 들여 습지를 보전하고 생태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 계획이 잡혀 있다. 국비가 70%, 시도비가 30% 지원되는 환경부 직접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박회장의 말이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화포천 말고도 김해시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하는 데 9억8천만원, 봉하마을 광장에서 생가까지 하천을 복개하는 데 5억원, 봉하마을 주차장을 만드는 데 12억원 등을 들였다. 김해시가 발표한 ‘봉화산 관광자원 개발사업 기본 계획서’에 따르면 75억원을 들여 봉하마을 관광생태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한때 진영시민문화센터 건립 등 관련 사업들을 통틀어 ‘봉하마을에 4백90억원이 투입되었다’라고 공세를 펼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노 전 대통령과 직접 관련된 돈은 35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박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빌려준 15억원도 ‘봉하마을’로 들어갔다. 검찰은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짓는 데 쓴 것을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서 밝혀야 할 대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연철호 5백만 달러와 화포천의 관련성 여부’이다. 다른 하나는 강금원 회장이 설립한 ㈜봉화에 투자한 70억원의 행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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