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잡는 표적 치료법 나올 것”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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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세 국립암센터 면역ㆍ세포치료연구과 석좌연구원 / “암세포만 공격하는 치료제 개발해”

ⓒ시사저널 박은숙

세균과 같은 외부 이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면역이다. 면역세포는 외부 침입자를 공격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생명체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면역기능이 거꾸로 작동해 멀쩡한 몸을 공격하고, 그래서 각종 장기를 손상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s)으로 당뇨와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에 걸리면 면역을 억제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이지만, 외부 세균에 의한 감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래서 완치가 거의 안 되는 병으로 유명하다. 

권병세 국립암센터 면역ㆍ세포치료 석좌연구원은 면역조절기능으로 각종 난치병과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낸 세포면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앞으로 면역기능을 유지하면서 질환을 일으키는 면역세포만 제거하는 표적 치료법이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권석좌연구원으로부터 최신 치료법을 들어보았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은 무엇인가?

세밀하게 분류하면 70~100여 종으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종류가 많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류머티스성 관절염, 1형 당뇨, 크론병(crohn’s disease), 루푸스(lupus)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질환은 근육, 피부, 내분비계, 갑상선, 위장, 대장, 혈액, 혈관 등 모든 장기에서 발생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손목과 무릎 등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1형 당뇨는 췌장의 베타세포에 이상이 생겨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게 하며,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에 염증을 일으킨다. 루푸스는 주로 20~40대 여성에게 잘 생기는 전신성 염증질환이다. 이 질환들은 공통적으로 면역세포가 주범이다.

체내 항원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는 어떤 것인가?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는 CD4+, CD8+, 조절세포(Tr) 등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CD4+와 CD8+ T세포가 우리 몸을 공격해서 장기 손상을 초래하기도 하고, B세포의 자가항체(autoantibodies) 생산을 돕는다. 자가항체도 항원을 공격하기 때문에 장기를 손상시키기는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1형 당뇨와 다발성경화증은 T세포(CD4+, CD8+)에 의해 발생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루푸스는 자가항체에 의해 발병한다. 참고로, Tr세포는 CD4+와 CD8+ T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신체를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있다면 이를 방지하는 기능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 몸은 크게 두 단계로 면역세포의 신체 공격을 방지한다. 중심면역관용(central tolerance)과 말초면역관용(peripheral tolerance)이 있다. 태아에게 면역세포가 생성될 때 우리 몸을 공격하는 세포만 제거하는 기능이 중심면역관용이다. 가슴뼈 뒤쪽에 있는 내분비샘인 흉선(가슴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체내 항원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100% 제거하지는 않는다. 외부 항원과 비슷한 체내 항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는 남게 된다.

따라서 우리 몸에는 자신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면역세포의 반응을 감시하는 기능이 말초면역관용이다. 이런 기능을 Tr세포, T세포 공동 자극분자 중 CTLA4와 필요 없는 면역세포를 제거하는 Fas-FasL 등이 주로 한다. 이런 말초면역관용의 균형이 어떤 이유로든 깨지면 병이 생기게 된다. 

▲ 제1형 당뇨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는 면역세포(CD4 , CD8 T세포)이다. 사진은 작은 점으로 보이는 면역세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

어떤 이유에서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나?

유전과 환경이 주요인이다. 같은 항원이라도 면역세포가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독특한 항원제시 수용체(MHC)’이다. MHC에는 클래스 1(class 1)과 클래스 2(class 2)가 있는데, 클래스 2가 자가면역질환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MHC class 2 DQ8이라는 물질은 인슐린 펩티드를 항원으로 인식하고 T세포에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면 T세포가 베타세포를 공격해서 인슐린 분비가 잘 되지 않는다. 이것이 1형 당뇨이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 불균형, 약물 등이 있다.

꽃가루에 민감한 사람이 잘 걸리는가?

그렇지 않다. 외부 이물질에 민감하다고 해서 이 질환에 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체력이나 건강 상태가 좋은 사람은 면역기능도 좋다고 볼 수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면역기능은 유전적인 요인에 많이 기인한다. 참고로, 면역기능이 좋은 젊은 사람은 웬만한 자극에 잘 견디지만 노인은 면역력이 좋지 않아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같은 노동 강도라도 쉽게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다. 면역기능이 좋아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후천적인 면역 형질도 자손에게 옮아가는가?

과거에는 후천적 면역 형질이 자손에게 옮겨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산모의 후천적 면역 형질이 태아에게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천식과 알레르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산모와 태아가 혈액을 통해 여러 가지 세포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를 면역세포교환(microchimerism)이라고 한다.

전신성(systemic)과 장기특이성(organ specific)의 차이는 무엇인가?

면역세포 중에는 전신의 항원에 반응하는 것이 있고, 특정 장기의 항원에 반응하는 것이 있다. 전자가 전신성 질환이며 루푸스가 대표적이다. 면역세포가 DNA와 같은 세포핵 내의 항원을 공격한다. 후자는 특정 장기의 단백질 같은 항원을 공격하는 장기특이성 질환이다. 예를 들어 면역세포가 췌장 세포의 단백질을 공격하면 1형 당뇨이고, 관절막의 항원을 공격하면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다.

인종에 따라 이 질환의 특징이 달리 나타나는가?

그런 연구 결과는 보고된 바 없다. 다만, 1형 당뇨가 옛날부터 북미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1형 당뇨 발생 건수가 많이 늘었는데, 이는 식생활 등 외부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크론병은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었다. 그러나 육식 생활이 늘어나면서 이 질환이 증가했다. 인종 차이보다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모 입장에서 보면 태아도 이물질이다. 그런데 태아는 왜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지 않는가?

그 이유가 자가면역질환의 치료법을 찾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다. 태아와 태반 사이에 IDO라는 효소가 산모의 면역세포를 억제하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따라서 산모의 면역계에는 태아를 자신의 신체로 인식하는 면역관용(tolerance)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메커니즘을 치료에 이용할 수는 없는가?

IDO와 유사한 물질을 만들어 면역억제제를 개발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성공한다면 자가면역질환 자체뿐만이 아니라 장기 이식 환자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장기는 평생 외부 항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질환이 여성에게 주로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은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 루푸스 환자 가운데 여성이 95% 이상이다. 류머티스성 관절염도 여성이 남성보다 2~3배 높다. 무엇보다 이 질환은 면역항진 기능이 있는 여성 호르몬(estrogen)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의 관절액과 혈관에서 여성 호르몬의 비율이 남성 호르몬(androgen)보다 높게 나타난다.

이밖에 ‘면역세포 교환’과 ‘X염색체 비활성화 불균형’도 이 질환이 여성에게 잘 생기는 이유이다. 그러나 크론병은 남녀에게 비슷하게 생기고, 강직성 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은 남성에게서 잘 발생한다.

면역억제 기능이 있는 남성 호르몬을 이용하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나?

남성 호르몬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으며, 여성 호르몬의 전구물질(전 단계 물질)을 억제하는 치료제도 연구 중이다. 다만, 성호르몬은 적은 양의 변화로도 심혈관계 등 여러 장기에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남성 호르몬을 이용한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주 치료보다 보조 치료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감염 우려 때문에 면역억제가 최선의 치료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질환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인병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다. 증상도 만성적으로 지속되며, 대체로 장기의 영구 손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완치는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억제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암이나 감염질환에 노출되므로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 면역억제제는 스테로이드처럼 모든 면역기능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이토카인(cytokine) 등 염증을 일으키는 인자만 선택해서 차단하는 약도 개발되었다. 이런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것이 치료에 효과적이고 부작용도 적다.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어떻게 보는가?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화두는 선택성(selectivity)이다. 감염이나 부작용 걱정을 덜면서도 병을 일으키는 인자만 제거하는 치료법이 많이 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병을 일으키는 주범인 CD4+ T세포만 제거하는 치료제 같은 것이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뼈까지 손상시킨다. 파골세포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치료법도 필요하다.

자연 치유를 기대할 수는 없는가?

과거에는 이 질환을 일으키는 세포가 몇 개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의 세포들만 관리하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세포들의 역분화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병에 걸리면 자연 치유는 안 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루프스에 걸린 여성 환자가 아이를 가지면 크게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개발한 면역치료제(anti-4-1BB)의 효능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암 치료를 위해 anti-4-1BB라는 면역치료제를 개발했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CD8+ T세포를 증식시켜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 이 약을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면 항암제 자체의 독성을 떨어뜨려 항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CD4+ T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자가면역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1형 당뇨는 가족력 등을 따져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갑자기 당뇨라는 소견을 듣게 되지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베타세포가 죽은 것이다. 베타세포가 다 사멸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 금주와 금연 등 건강한 생활로 환경적 유발 인자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가면역질환이 신장질환과 관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루푸스의 예를 들자. 전신성 질환이어서 항원이 많고 항체도 많다. 이것이 항원과 결합해서 항원항체결합체(면역 콤플렉스)가 생긴다. 이는 신장을 통해 배출되어 몸에 쌓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핏줄로 되어 있는 신장에 걸린 면역 콤플렉스가 염증을 일으킨다. 또, 면역 콤플렉스는 연쇄적으로 신장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신부전 등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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