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부활한 ‘독종’들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5.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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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최준석·SK 고효준 선수, 부상·방출 아픔 딛고 강한 의지로 재기 성공

▲ 두산 최준석 선수는 홈런 1위, 타점 2위를 달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권시형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는 화려하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는 초라하다.”

고액 연봉과 많은 인기. 초라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프로야구 선수와 ‘초라함’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크게 드러날 뿐 오랜 세월 음지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가 더욱 많다. 그들은 단순히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언제든 유니폼을 벗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가라”라는 구단의 한마디면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끝이 날 수 있다. 어떤 법적 보호나 배려도 받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고달픈 삶의 연속인 셈이다. 2009년 시즌 한국 프로야구 시즌 초반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두 선수, 고효준(26·SK)과 최준석(26·두산)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차가운 외면의 시간을 이겨내고 당당히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4월29일 현재 고효준은 2승 무패, 평균 자책점 2.38을 기록하며 당당하게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준석은 타율 4할9리, 7홈런, 23타점을 기록하며 쟁쟁한 거포들을 제치고 홈런 1위, 타점 2위를 달리고 있다.

‘발전할 수 없는 선수’ 낙인


고효준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롯데에 2차 1순위로 지명되었지만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공은 빨랐으나 제구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백인천 당시 롯데 감독은 고효준의 훈련 자세에 문제가 있다며 그를 “발전할 수 없는 선수”라고 단정지었다.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구해와야 한다”라는 격언도 백 전 감독의 실망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SK가 고효준에게 관심을 보이며 제2의 야구 인생이 열렸다. 1군에 올라와 몇 차례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주류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그의 제구력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최준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도 몸무게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의 육중한 몸매는 겉모습만으로도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다. 그의 파워에 주목한 김경문 두산 감독이 그를 트레이드로 영입했을 당시 세상은 “저렇게 덩치만 큰 선수를 어디에 쓰느냐”라며 김감독을 비웃었다. 최준석 역시 김감독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법 기회가 있었지만 확실히 자기 것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어느새 그에게 앞서 수없이 많이 사라져간 ‘그저 힘만 좋은 선수’들처럼 잊혀져갔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말이 있다. 잘 풀리는 인생이야 걱정할 것 없는 말이지만 좀처럼 되는 일 없는 인생들에게는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 진리이다.

최준석은 두산 이적 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 김경문 감독의 배려가 따뜻하게 그를 감싸주었다. 하지만 최준석 역시 봄날의 평화를 오래도록 누리지는 못했다. 2007년 1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이름을 알렸지만 그해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 후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2008년. 동계 훈련 부족은 최준석의 발목을 잡았고, 점차 그의 자리는 ‘날쌘돌이’ 오재원에게 돌아갔다. 2008년 그가 출장한 경기 수는 고작 67경기. 감독의 신임도 점차 얇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효준과 최준석이 다시 기회를 잡은 것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 덕분이었다. 고효준은 조웅천, 윤길현 등의 수술로 팀 마운드 사정이 크게 약화되며 마운드에 다시 설 기회를 잡았다. 흔히 말하는 ‘땜빵’ 선발로 나선 그는 첫 경기부터 꾸준히 힘 있는 공을 뿌리며 벤치의 신뢰를 얻었다. 최준석은 오재원의 부상으로 다시 주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주지 않고 있다.

하체 쓰는 법 제대로 익힌 것이 발전 디딤돌

▲ SK 고효준 선수는 제구력이 한결 나아져 선발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판’ 고효준과 최준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고효준은 고질병처럼 여겨지던 제구력이 한결 나아졌다. 최준석은 더 이상 변화구에 약한 ‘공갈포’가 아니다. 기술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효준과 최준석 모두 하체 쓰는 법을 제대로 익힌 것이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이쯤 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이전부터도 나와 있었다. 둘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안 되던 것이 어떻게 이제는 되는 것일까. 해답은 마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효준은 2008 시즌이 끝난 뒤 김성근 SK 감독을 찾아갔다.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방출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감독은 그를 크게 나무랐다. “SK에는 좋은 좌완 투수가 너무 많습니다. 제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라며 애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효준은 무릎을 꿇고 한 번 더 빌었다. “(지난겨울 결혼해) 이제는 저도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생계를 꾸려가려면 더 밀릴 수는 없습니다.” 김감독은 그제서야 고효준을 위로했다. “지금 그 마음이면 된다. 나랑 같이 다시 해보자.” 그리고 몇 달 후 고효준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데 성공했다. 높아만 보이던 1군 진입 장벽도 허물어졌다.

천재형 선수라면 몰라도 평범한 선수들에게는 ‘한결같이’ 자신의 폼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김감독이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고효준에게 가르친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했던 지도 방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고효준의 마음이었다. 마지막을 각오한 그의 단단한 의지는 끊임없는 반복 훈련으로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 

최준석도 비슷하다. 그는 지난겨울 타격 폼을 바꿨다. 하체의 중심을 좀더 오른 다리에 싣는 방식으로 치고 또 쳤다. 이전에도 시도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해보다 포기하고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것이 차이였다. 김광림 두산 타격 코치는 “예전 같으면 준석이가 조금 해보다가 안 되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정말 독을 품고 열심히 했다. 준석이의 훈련을 지켜보며 올해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고효준이 그랬듯 최준석의 변화 그 이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효준과 최준석은 늘 “너무 순해서 탈”이라는 지적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야구에서만은 누구보다 더 독하고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선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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