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든 칼, 이제 누구를 겨누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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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천신일 등 모두 ‘뜨거운 감자’…살아 있는 권력에 얼마나 다가갈까

 

▲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가 4월30일 오후 1시 20분경 대검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오른쪽). 노 전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렸다(왼쪽). ⓒ시사저널 임준선(왼쪽), 주간사진공동취재단(오른쪽)

 

5월의 햇살은 눈부신데, 임채진 검찰총장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큰 폭풍우는 일단 지나갔다. 헌정사상 세 번째라는 기록을 남기고 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를 마쳤다. 하지만 정작 임총장의 고민은 다른 데에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수사를 어떤 모양새로 산뜻하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애써 뽑아든 칼을 쉽게 칼집에 다시 넣으려 하지 않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구속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 검찰 수사가 3라운드로 넘어가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바이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여권 인사들과 관료들로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도 이미 나왔다. ‘표적 수사’ ‘보복 수사’라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엄정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예리하겠는가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하는 목소리이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는 “지금의 대검 중수부를 보면 지난 2003~04년의 대선 자금 수사로 정국을 주도했던 ‘안대희 드림팀’을 보는 듯하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탄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쉽게 멈추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일선에서 “이번 기회에 ‘검은 돈’의 실체를 낱낱이 다 밝혀내야 한다”는 의기 어린 목소리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즉, 수사 실무진에서는 더 많은 것을 들여다보려 하고 있고, 또 이미 상당 부분 속도를 내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주변의 한 관계자는 “오랜 특수수사의 경험에서 보면, 여기저기 각각의 의혹 조각들이 생각지도 않게 어느 한 줄기에 의해 서로 연관되어 줄줄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의혹을 갖고 많은 부분을 함께 들여다본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검찰 수사가 비단 ‘박연차-노무현 돈 거래’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수사의 본류인 ‘박연차 게이트’를 연결 고리로 해서 다른 의혹들까지 상당 부분을 넘나들며 폭넓은 수사를 펼쳤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그런 정황은 다른 쪽에서도 일부 포착되었다. 한 인사는 최근 참고인 자격으로 자주 대검 중수부의 부름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 거물 정치인의 또 다른 비자금에 대한 의혹과 연관되어 있는 인사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는 딱히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검찰은 어떤 연관성을 두고 들여다보는 듯했다는 전언이다. 그는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력해 보였다. 오히려 내가 검찰 수사에 다소 불신감을 나타내자,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파헤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이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검찰 주변에서도 읽힌다. 한 관계자는 “밖에서는 자꾸 (검찰이) 수사를 적당한 선에서 덮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검찰 내부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하나의 수사를 할 때 거기에 관계되는 검찰 내부 인사가 여러 명이다. 수사 과정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는데, 그 여러 명의 입을 다 막을 수 있겠는가. 수사 범위를 처음부터 한정해서 여기까지만이라고 설정하고 나머지를 아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까, 수사 과정에서 나온 진실을 덮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이 좀더 큰 그림으로 보고 있는 수사의 방향은 어디일까. 조심스럽게 거물급 인사들의 비자금과 대선 자금 의혹이 거론되고 있다.

대선 자금 수사는 크게 두 갈래이다. 2007년 대선 자금 수사와 2002년 대선 자금 수사가 그것이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현재 계속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거론되고 있다. 천회장의 수사 여부에 따라서는 현 여권과 권력 심층부로도 검찰 수사가 미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4월27일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천회장 수사는 박회장과 관련된 것만 본다. 대선 자금 쪽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주목된다. 검찰 지휘 라인에서 이른바 ‘선 긋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다. 검찰 내부 분위기에서 묘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고, ‘박연차’를 넘어 대선 자금까지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것을 반영한 언급으로 보인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2007 대선 자금 수사 없다”

또 하나의 가닥은 2002년 대선 자금 수사이다. 이미 이 수사는 노무현 정권 초기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며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된 사건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내가 쓴 불법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재신임을 받겠다”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완결판이 아니었다는 새로운 의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3라운드 수사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사로 천회장과 함께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있다. 라회장은 박회장의 개인 계좌로 50억원을 입금한 사실이 드러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이미 대검 중수부에서 라회장에 대해서는 전담팀까지 구성하며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관계자는 “본인 관련 계좌는 물론 아들 계좌까지 상당 수준의 조사가 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의 시선이 비단 50억원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를 계기로 해서 또 다른 돈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라회장 비자금 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그 파급 효과가 노무현 정권뿐만 아니라 그 이전으로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번 정치 공세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이른바 ‘DJ 비자금’ 의혹과 ‘2002년 대선 자금’ 의혹이 다시 본격적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 또한 박연차 게이트로 다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중요한 관심사는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또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아예 작심을 하고 다 파헤쳐보자고 나설 경우 국기가 흔들릴 수도 있다”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이다. 과장된 것일까. 도대체 검찰이 잔뜩 의심을 가진 채 찾으려고 하는 ‘검은 돈’의 실체는 무엇일까. 과연 외부적 요인에 상관없이 지금의 수사 기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검찰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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