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것들’ 뭉쳐 더 독해진다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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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바이러스는 어떻게 인간을 공격하는가 / 돌연변이 속도, 다른 미생물의 100만 배

인플루엔자A가 맹위를 떨치며 지구촌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4월13일 멕시코에서 발견된 인플루엔자A는 무려 1백5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WHO는 이 질병이 세계적인 유행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고, 미국은 공중 보건 비상 사태를 선포하는 등 인플루엔자A 잡기에 발벗고 나섰다. 왜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까지 옮겨져 세상이 떠들썩하게 된 것일까.

 인플루엔자A는 인간·조류·인플루엔자A의 혼합 변종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특정 병원체에 의해 발병된다. 사람이 독감에 걸리듯 돼지도 독감에 걸리는데, 미국과 멕시코에서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이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가장 독하고 폭발적으로 유행하며 원래 다른 종(種)의 생물에 전염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A형임에도 다른 종인 사람에게 전염된 이유는, 돼지 몸 안에서 인간·조류·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여 변이를 일으킨 혼합 변종이기 때문이다. 돼지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의 수용체를 모두 갖고 있어서 두 바이러스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다. 

또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A형이라 해도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나 돼지와 직접 접촉한 사람에게 드물게 감염되기도 한다. 인플루엔자A는 호흡기 질환이다. 따라서 돼지고기나 돼지 육가공품을 먹었다고 해서 감염되지는 않는다.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는 71℃ 이상의 온도에서 가열하면 죽기 때문에 익힌 돼지고기는 100%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지구상에는 4천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그중 100여 종이 사람의 몸에 병을 유발한다. 바이러스가 인체를 공격하는 ‘무기’는 헤마글루티니와 뉴라미니데이즈이다. 호흡을 통해 바이러스가 체내로 침투하면 헤마글루티니데이즈가 호흡기 점막세포에 달라붙는다. 점막세포로 들어가 증식한 바이러스는 점액질에 싸여 뭉쳐진 형태로 세포를 깨고 나온다. 이때 뉴라미니데이즈가 바이러스를 흩어지게 해 다른 점막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돕는다. 따라서 치료제는 뉴라미니데이즈의 기능을 저해해 바이러스가 증식 못하고 죽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는 이물질이 몸 안에 침투하면 항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항체는 이물질에 반응해 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보유하고 있는 항체가 없으면 외부에서 주입을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죽음에 이른다. 사람의 면역체계가 이물질을 인식해 바이러스와 싸울 때 독감 바이러스는 이에 맞서 표면 구조를 끊임없이 바꿔나간다.

바이러스는 변신의 명수이다. 돌연변이의 속도가 다른 미생물에 비해 무려 100만 배나 빠르다. 동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갑자기 변성하면서 종(種)의 경계를 뛰어넘어 사람으로 숙주를 바꾸는 경우가 가장 무섭다. 손을 쓰지 못해 답답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쩌면 인간이 바이러스를 극복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백신이 개발될 때마다 자신의 유전 정보를 변화시켜 새로운 모양을 갖추어 또 출몰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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