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뒤 ‘펀드’가 울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5.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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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공연기획사, 펀드매니저와 짜고 공연 관련 사모 펀드에서 수백억 원 횡령

공연기획사들이 사모 펀드의 운영자들과 짜고 유명 공연물을 내세워 모은 자금 가운데 수백억 원을 빼돌려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혀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사모 펀드에 투자했다 거액을 날린 자산운용사들과 공연기획사를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고,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도 뒤늦게 감사를 하겠다고 나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건은 대신투신운용의 한 펀드매니저가 거액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알려졌다. 대신투신운용은 자사의 ‘대신사모투자신탁 K16호’ 등을 운용하던 펀드매니저 권 아무개씨가 지난 2년간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를 잡고 올해 초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는 권씨가 모두 2백8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지난 2월 구속 기소했다. 권씨는 최근 2년여 동안 30여 개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고객 돈을 빼내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횡령액 중 일부가 유명 공연기획사들로 흘러간 사실을 중시하고 조사를 벌였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자금을 추적하면서 유명 공연기획사 대표 여러 명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펀드매니저와 공연기획사들이 결탁해서 공연과 관련되어 모은 사모 펀드에서 조직적으로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안광용 트라이프로 대표 등을 지난 4월24일 구속했다.  

대신투신운용 등 상당수 펀드에 피해…금감원도 실태 점검 나서

 안대표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돌아온 고교알개> 등을 선보여 공연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기획사 대표이다. 특히 지난 1970년대 이덕화와 임예진이 출연한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진짜진짜 좋아해>의 경우 40~50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지난해 공연시장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5억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안대표는 라이벌 기획사인 이룸이엔티가 지난 2008년 5월 기획한 <조용필 40주년 콘서트> 공연권 양수확인서를 위조해 권씨가 운용하던 펀드에서 30억원을 투자금으로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별도로 펀드에서 20억원을 대출받아 자신 소유의 휴먼 법인인 (유)에이케이와이컴퍼니의 채무를 상환하는 형식으로 빼돌린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문제는 안대표가 벌인 사기 행각의 피해자가 대신투신운용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연장 건물에 설정했던 근저당권을 임의로 말소해 지난 2월 마이에셋자산운용 펀드에서 28억원에 담보대출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2008년 4월부터 11월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11억5천만원의 펀드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안대표의 횡령 액수는 90억원에 달한다.

안대표와 비슷한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최남주 이룸이엔티 대표는 현재 도피 중이다. 최대표 역시 최근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십계> 등을 국내에 선보인 공연기획계의 거물이다. 그는 뮤지컬을 수입해 공연하는 과정에서 펀드 자금을 끌어들여 1백1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이면서 펀딩받았던 72억4천5백만원을 횡령했다. 이와 함께 다른 여러 펀드에서도 12억원 이상을 가로챈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현재 공연기획사들과 펀드 운영자들이 짜고 벌인 횡령 건수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공연기획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이들 회사 관계자 20여 명을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획사들이 펀드 운용자와 짜고 대신투신운용을 제외한 3~4개 운용사 펀드에서 거액을 횡령한 정황을 잡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공연기획사 간에 어떤 경로로 돈을 빼돌릴 수 있었는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어떤 회사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도 “수사 중이다”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회사의 경우 펀드 하나의 피해 규모만 70여 억원대여서 수사가 진전될 경우 그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자산운용사들 사이에 펀드 부실 관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추가로 펀드 손실이 확인될 경우 투자자들의 줄소송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펀드매니저의 횡령 사실이 확인된 대신투신운용은 이미 소송에 휘말려 있다. 대신측의 사모 투자에 참여했던 미국계 ‘대신 라발로(Daishin Ravallo USA 2nd,LLC)’는 대신투신운용을 상대로 2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특히 문제의 사모 펀드는 공연기획사들이 자금줄로 애용하고 있어 이같은 횡령 사건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공연용 특별자산펀드의 국내 설정액은 1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설정액이 4조5천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2년여 만에 2.5배 정도 시장이 성장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횡령 사건이 있었음에도 내부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사실상 통제 장치가 없는 사모 펀드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예고된 악재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공연은 공동 제작사나 스폰서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 펀드 개념이 도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제작자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펀드매니저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양자 간에 불미스러운 거래가 생겨나 자주 공연계의 도마에 올랐다는 것이다.


'특별’한 데 투자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특별자산펀드, 자산운용사가 운용 맡아 통제 장치 ‘허술’

지난 4월 말, 금감원은 8개 운용사가 운용하는 특별자산펀드에 대한 운용 실태를 검사한다고 발표했다. 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가 사모 특별자산펀드에서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의 자금 가운데 약 2백80억원을 부당 편출입해 일부 손실이 우려된다고 밝힌 직후이다. 아직도 펀드의 자산을 매니저가 유용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된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이런 현상이 일반 펀드에서까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대해 해명이 필요한 것 같다.

우선 이번 사건이 특별자산펀드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별자산펀드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이 아닌, 다른 자산에 특화되어 있는 펀드이다. 특별자산펀드는 선박이나 천연자원, 항공기, 농산물 등 특별한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모아진 자금이다. 한때 관심을 모았던 와인 펀드나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 펀드,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엔터테인먼트(영화나 공연기획 등에 투자되는) 펀드도 특별자산펀드로 분류된다. 투자 대상에 관계없이 모든 펀드의 운용은 자산운용사에서 맡는다.

운용 과정 관련 책임은 운용사가 부담해야…내부 통제 방안 시급

사모로 많이 운용되는 특별자산펀드가 시장의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투자한 부동산 펀드들은 대출한 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받지 못해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만기까지 예정한 분양이 이루어지지 않아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최근에 알려진 것만 해도 ‘골든브릿지특별자산17, 18호’, ‘하나UBS클래스원특별자산투자신탁 제3호’ 등이 대표적이다. 해운업의 불황으로 선박 펀드도 고전하고 있다. 용선사가 임대료를 주지 않아 소송에 휘말리면서 우리은행, 농협, 우정사업본부 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코리아퍼시픽펀드’의 투자 대상 선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억류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해당 펀드의 주가는 폭락했다. 이들 펀드는 정상적인 펀드의 운용 과정에서 경제 상황의 급격한 변화로 불가피하게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사모 펀드라는 이유로, 투자 대상이 특별하다는 틈새를 노리고 고객의 자금을 개인 자금처럼 유용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역설적으로 사모 특별자산펀드의 경우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향후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사점도 주고 있다. 사모 펀드는 지속적인 자금 모집이 필요하지 않고,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투자가 용이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투자를 위해 필요한 제도이다. 특별자산펀드의 경우 기존의 전통적인 상품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투자 수단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금력이 부족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운 우리 문화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엔터테인먼트 펀드는 국민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자금을 지원하는 통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 막대한 자금과 오랜 투자 회임 기간이 소요되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이나, 향후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 되어줄 녹색 산업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 인프라 펀드나 녹색성장 펀드 등도 규모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투자 기간이나 위험 구조로 볼 때 이들 펀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사모의 형태로 조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모 펀드, 특별자산펀드들에 대한 관리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자산운용사들의 펀드 운용이나 관리 방식은 불법적인 사설 펀드나 유사 펀드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매니저나 투자 대상 회사의 관련자들이 고객이 믿고 맡긴 자금을 유용했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잘 만들어진 법률이나 규제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부정을 막을 수는 없다. 특히 사모 펀드는 소수의 수익자를 대신해 투자를 하는 만큼 공모와 동일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결국, 운용의 결과가 아닌 운용 과정에 관련된 책임은 운용사가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모 펀드와 관련한 내부 통제에 대한 정비와 매니저의 윤리의식을 고취시킬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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