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사들이 사모 펀드의 운영자들과 짜고 유명 공연물을 내세워 모은 자금 가운데 수백억 원을 빼돌려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혀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사모 펀드에 투자했다 거액을 날린 자산운용사들과 공연기획사를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고,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원도 뒤늦게 감사를 하겠다고 나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건은 대신투신운용의 한 펀드매니저가 거액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알려졌다. 대신투신운용은 자사의 ‘대신사모투자신탁 K16호’ 등을 운용하던 펀드매니저 권 아무개씨가 지난 2년간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를 잡고 올해 초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는 권씨가 모두 2백8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지난 2월 구속 기소했다. 권씨는 최근 2년여 동안 30여 개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고객 돈을 빼내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횡령액 중 일부가 유명 공연기획사들로 흘러간 사실을 중시하고 조사를 벌였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자금을 추적하면서 유명 공연기획사 대표 여러 명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펀드매니저와 공연기획사들이 결탁해서 공연과 관련되어 모은 사모 펀드에서 조직적으로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안광용 트라이프로 대표 등을 지난 4월24일 구속했다.
대신투신운용 등 상당수 펀드에 피해…금감원도 실태 점검 나서
안대표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돌아온 고교알개> 등을 선보여 공연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기획사 대표이다. 특히 지난 1970년대 이덕화와 임예진이 출연한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진짜진짜 좋아해>의 경우 40~50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지난해 공연시장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5억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안대표는 라이벌 기획사인 이룸이엔티가 지난 2008년 5월 기획한 <조용필 40주년 콘서트> 공연권 양수확인서를 위조해 권씨가 운용하던 펀드에서 30억원을 투자금으로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별도로 펀드에서 20억원을 대출받아 자신 소유의 휴먼 법인인 (유)에이케이와이컴퍼니의 채무를 상환하는 형식으로 빼돌린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문제는 안대표가 벌인 사기 행각의 피해자가 대신투신운용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연장 건물에 설정했던 근저당권을 임의로 말소해 지난 2월 마이에셋자산운용 펀드에서 28억원에 담보대출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2008년 4월부터 11월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11억5천만원의 펀드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확인된 안대표의 횡령 액수는 90억원에 달한다.
안대표와 비슷한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최남주 이룸이엔티 대표는 현재 도피 중이다. 최대표 역시 최근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십계> 등을 국내에 선보인 공연기획계의 거물이다. 그는 뮤지컬을 수입해 공연하는 과정에서 펀드 자금을 끌어들여 1백1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이면서 펀딩받았던 72억4천5백만원을 횡령했다. 이와 함께 다른 여러 펀드에서도 12억원 이상을 가로챈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현재 공연기획사들과 펀드 운영자들이 짜고 벌인 횡령 건수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공연기획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이들 회사 관계자 20여 명을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획사들이 펀드 운용자와 짜고 대신투신운용을 제외한 3~4개 운용사 펀드에서 거액을 횡령한 정황을 잡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공연기획사 간에 어떤 경로로 돈을 빼돌릴 수 있었는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어떤 회사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도 “수사 중이다”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회사의 경우 펀드 하나의 피해 규모만 70여 억원대여서 수사가 진전될 경우 그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자산운용사들 사이에 펀드 부실 관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추가로 펀드 손실이 확인될 경우 투자자들의 줄소송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펀드매니저의 횡령 사실이 확인된 대신투신운용은 이미 소송에 휘말려 있다. 대신측의 사모 투자에 참여했던 미국계 ‘대신 라발로(Daishin Ravallo USA 2nd,LLC)’는 대신투신운용을 상대로 2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특히 문제의 사모 펀드는 공연기획사들이 자금줄로 애용하고 있어 이같은 횡령 사건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공연용 특별자산펀드의 국내 설정액은 1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설정액이 4조5천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2년여 만에 2.5배 정도 시장이 성장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횡령 사건이 있었음에도 내부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사실상 통제 장치가 없는 사모 펀드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예고된 악재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공연은 공동 제작사나 스폰서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 펀드 개념이 도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제작자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펀드매니저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양자 간에 불미스러운 거래가 생겨나 자주 공연계의 도마에 올랐다는 것이다.
'특별’한 데 투자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