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50원 내리면 삼성전자 매출 3조원 감소”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5.1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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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증권 ‘환율 민감도’ 조사 결과 입수·분석 / 환율 급락에 따라 주요 기업 희비 엇갈려

원·달러 환율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기아차 같은 대표 수출 기업은 환율 하락으로 수익 악화가 불가피하다. 환율이 50원만 하락해도 영업이익이 적게는 10%, 많게는 6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포스코, CJ제일제당, 대한항공은 환율 하락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원자재 수입 단가가 낮아지고, 외화 차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일부는 영업이익이 3배 가까이 늘어나리라고 전망된다.  

이 조사 결과는 <시사저널>이 대우증권 리서치센터가 작성한  ‘주요 기업의 환율 민감도’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환율 하락으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삼성전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 4천7백억원을 기록해 분기 실적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고환율 덕에 수출이 살아나면서 애널리스트들이 예상치 못한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최근 환율이 급락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환율이 50원 하락할 때마다 삼성전자 매출은 3조원씩 줄어들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환율이 1천2백50원(기본 가정)에서 1천2백원이 되면 연 매출은 81조5백80억원에서 78조4천1백90억원으로 감소한다. 환율이 1천1백50원까지 떨어지면 연 매출은 75조7백80억원까지 추락한다. 영업이익 하락폭은 더 크다. 환율이 100원만 내려도 영업이익은 3조4천3백억원에서 2조5천2백80억원으로 26.3%나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환율 하락시 LG디스플레이·삼성SDI·현대차도 수익 악화 전망

LG디스플레이, 삼성SDI 같은 디스플레이 업종도 환율이 하락하면 2분기 적자 폭이 확대될 전망이다. 대우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변동에 따른 두 회사의 매출액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나 영업이익의 적자 폭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LG디스플레이는 기준 환율에서 50원씩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 적자는 -8백31억원, -1천1백35억원으로 확대되었다. 삼성SDI 역시 적자 폭이 각각 -1백1억원과 -1백94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우증권 디스플레이 담당 황준호 애널리스트는 “삼성SDI나 LG디스플레이는 총 매출 대비 외화 매출 비중이 90% 이상이다. 환율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에 대한 이익을 본다고 해도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영업이익이나 경상이익 감소는 불가피하다”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LG이노텍과 삼성테크윈도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하락에 따른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LG이노텍은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2%, 7% 감소하고, 삼성테크윈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76%와 8.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나 기아차 역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 전망이 좋지 않다. 지난해 현대차는 세계 금융 위기 여파에도 1.1% 매출 신장을 이루어냈다. 세계 자동차업계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는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 도요타의 매출이 28.4% 줄어든 터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일본 자동차와의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7.4%로 도요타자동차와의 격차를 지난해 11.7% 포인트에서 올해 8.7% 포인트까지 줄였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7.2%까지 상승해 일본차와의 격차는 14.5% 포인트에서 10.5% 포인트로 줄어들었다.

환율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현대·기아차그룹 실적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1천2백50원 기준으로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매출은 각각 3.66%와 9.7% 감소한다. 영업이익은 현대차가 51%, 기아차가 85.49%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난 1분기 현대차 판매 대수는 이미 30% 가까이 감소했다. 이를 기준으로 환율이 50원만 떨어져도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3.2%까지 떨어지고, 기아차는 -5.3%로 적자 전환된다. 

같은 업종이라도 회사마다 환율 민감도가 다르다. 수출 기업이라도 일부 업체는 환율이 내릴수록 영업이익이나 경상이익이 오른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2위인 하이닉스가 대표적 사례이다. 하이닉스는 환율이 50원 하락하면 영업이익이 5.1% 늘어나고, 100원 하락하면 10.2%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G전자 역시 환율 변동에 따른 매출이나 영업이익 하락 폭이 경쟁사에 비해 미미하다. 대우증권 통신장비 담당 박원재 애널리스트는 “LG전자는 25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 부채를 안고 있다. 하이닉스도 외화 부채 비중이 높다. 환율이 내려가면 두 회사는 금융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원자재 수입 비중 높은 철강업종 등은 환율 하락할수록 수익 개선

자동차업계에서는 GM대우차가 환율 하락 덕을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된다. GM대우차는 지난해 9천억원이나 되는 파생상품처분 손실을 입었다. 국제통화기금(IMF) 회계 기준에 따라 국내 파생상품 관련 회계 처리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GM대우차는 앞으로 3년 동안 파생상품 평가 손실 8천7백50억원을 지난해 회계장부에 반영했다.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환율 폭탄’까지 맞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진행되고 있는 환율 하락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이다. 김종도 GM대우차 전무는 “(환율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파생상품 평가 손실액이 올해 이익으로 환입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철강업종은 환율이 하락할수록 수익이 개선된다. 동국제강은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영업이익이 3천80억원에서 8천4백1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다. 현대제철이나 포스코도 환율 하락에 따라 영업이익 증가율이 14~17%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우증권 철강 담당 양기인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포스코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원료 구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5백억~6백억원가량 손실 폭이 커진다.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데다, 환율 하락이 이어지면서 원가가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 동국제강, 현대제철, 포스코 순으로 수익에 긍정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실적 악화 대책 마련 시급

식품업계 역시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 개선이 예상된다. 원재료 수입 비중이 높고 외화 부채가 크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원자재 7억5천만 달러어치를 수입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장·단기 외화 부채는 5억8천만 달러에 이른다. 외화부채 가운데 30%가량을 환헤지한다고 가정하면, 환율 100원 하락시 순이익이 30% 증가한다. 영업이익은 환율이 50원 낮아지면 6.7%, 100원 하락하면 13.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이나 삼양제넥스, 삼양사, 대한제분 같은 식음료업체도 전분당이나 설탕, 밀가루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환율 하락으로 원가가 하락하므로 2분기부터 수익 개선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항공, 정유, 화학 업종도 환율 하락을 반긴다. 항공이나 여행 업계는 최근 원화 가치가 오르기 전까지 환승 수요나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으나 내국인 수요가 줄면서 손실을 입었다. 외화 환산 손실마저 늘어나면서 이중고를 겪었다. 대한항공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 66억원을 기록했으나 외화 환산 손실이 5천2백63억원까지 늘어나면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환율이 떨어지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환율이 100원 하락하면 대한항공 매출은 5.7% 빠지지만, 영업이익은 30.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도 매출은 5.9% 하락하지만 영업이익은 60.2% 늘어난다. 석유화학·정유업계 대표주자인 LG화학과 SK에너지 역시 100원 하락 기준으로 영업이익이 각각 4.6%, 13.76% 늘어날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구조 특성을 감안하면, 금융 위기 국면과 함께 환율이 경제성장률이나 경상수지 같은 거시지표뿐만 아니라 산업별·기업별 수익 구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원·달러 환율 1천2백50 선은 그동안 심리적이나 기술적으로 지지선 역할을 해왔다. 최근 이 환율이 무너지면서 기업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변수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율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라

매출 증가한 국내 기업들, 실적 개선 기대는 아직 일러

환율 급락 상황과 관련해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환율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국내 기업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이 환율 상승이라는 외부 요인 덕이다. 환율이 오르자 기업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환율이 떨어지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한득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2000’에 포함된 국내 기업 44곳의 매출액 변화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글로벌 2000에 포함된 기업들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은 24.3%로 전년 13.2%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아졌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각각 0.5%(전년 대비 -6.4%), 7.8%(전년 대비 -0.7%), 5.4%(전년 대비 -1.9%) 정도임을 감안하면 선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매출 증가율을 달러 기준으로 바꿔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국내 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5.1%로 일본(11.4%), 미국(7.8%), 유럽(13.1%)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순이익 역시 2.1%로 일본(3.5%), 유럽(4.9%), 미국(6.9%)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한득 연구위원은 “지난해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15.5% 절하되었다. 지난해 4분기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외화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전년 동기에 비해 48%나 상승했다. 이에 반해 엔화나 유로화는 달러에 비해 각각 7.3%, 13.9% 강세를 보였다”라고 지적했다. 이한득 연구위원은 최근 확산되는 경기 개선 기대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국내 기업이 예상 밖으로 선전하면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내수 경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해외 수요도 빠르게 확대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 징후를 종합해볼 때 경기 회복에 거는 기대는 다소 성급하다”라고 강조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초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천6백원대를 위협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분위기가 역전된 것이다. 이제는 환율이 1천100 선이 깨질지 여부를 고민해야 할 처지이다. 정득환 일평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의 환율 변동성 확대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함께 역외 환투기 세력의 한국 외환시장 공격, 정부의 방조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로 평가한다. 정부 정책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제 금융시장이 급변했지만 그 전조 현상은 이미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환율 변동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탓에 세계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정득환 소장은 “정책 당국은 환율 수준을 결정하는 모든 변수를 망라해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이 시나리오를 통해 환율 변동을 사전에 시뮬레이션 해서 각각의 경우에 따라 대응 방안을 미리 설정해놓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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