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5월, 어깨동무한 음악
  •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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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음악제, ‘음악을 통한 화합’에 눈길…무슬림과 유대인 연주자가 한 무대 서기도

▲ 2009 서울국제음악제 포스터. ⓒSIMF 제공

각종 기념일과 행사로 가득한 5월. 음악계에서도 5월은 행사의 달로 통한다. 지난 몇 주 사이 이름난 해외 연주 단체와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이 이어져 음악 애호가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5월의 마지막 주를 장식하는 특별한 음악 축제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5월30일까지 열리는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가 음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음악을 통한 화합’을 모토로 힘찬 출발을 알린 서울국제음악제에는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을 꼼꼼히 살펴보니 비슷비슷한 클래식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평범한 음악제와는 달리 프로그램마다 동시대 음악 작품들이 발표되어 참신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작곡가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가 내한해 직접 자신의 <교향곡 제8번>을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와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 등 뛰어난 음악가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끈다. 또, 음악제 개막 첫날인 지난 5월22일에는 무슬림의 바이올리니스트 무사하자예바와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실로아가 함께 화음을 맞추며 ‘음악을 통한 화합’을 구현해내어 화제가 되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들을 정리해보았다.

▲ 세계적인 작곡가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 ⓒSIMF 제공

현대음악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이들이라도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에 소개되는 현대음악은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음악제에서 주로 연주되는 펜데레츠키의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에 작곡된 최근 작품들로 ‘신(新)낭만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듣기 좋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펜데레츠키는 젊은 시절 노노와 슈토크하우젠의 영향을 받아 다소 전위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당시 그의 작품에는 인접한 여러 음들을 한꺼번에 소리내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군(音群)작법’ 등 실험적인 작곡 기법이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19세기 낭만주의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과 인연 깊은 펜데레츠키

이번 음악제에 소개되는 펜데레츠키의 작품들 중 <샤콘느>(2005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된 <폴리쉬 레퀴엠> 중 마지막 4악장으로 펜데레츠키의 신낭만주의적 감성이 잘 녹아든 작품이며,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의 협연으로 연주되는 <라르고> (2003년)는 첼로의 표현력을 잘 살려낸 작품으로 첼로 음악 문헌에 길이 남을 만한 명곡이다. 낙소스(Naxos) 레이블로 녹음된 펜데레츠키의 <라르고>에서도 독주를 맡아 호연을 들려준 바 있는 노라스는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다.

음악제 마지막 날인 5월30일에 한국에서 초연될 예정인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8번>은 2007년에 작곡된 최신작이다. 그날 펜데레츠키는 직접 지휘봉을 잡고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이 교향곡을 연주할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할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펜데레츠키는 오래전 한국에서 열린 그의 <교향곡 제5번> 연주회에서 서울시향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내한하는 거장 펜데레츠키는 오케스트라와 독창, 합창이 어우러진 12악장 구성의 대작 <교향곡 제8번> ‘무상의 노래’를 한국 청중들에게 처음 선보이게 된다. 아이헨도르프의 <밤>과 릴케의 <가을의 마지막> 등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텍스트가 성악과 기악이 어우러진 그의 교향곡 속에 어떻게 녹아들지 주목된다.

서울국제음악제에서는 이번 음악제만을 위해 위촉된 신작이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5월27일에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연주회에 선보이는 김은혜의 <피아노 3중주>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음악제 홈페이지에 소개된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곡은 숫자 ‘3’의 상징성에 주목한 작품으로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 ‘우아한’ ‘감상적인’ ‘독창적인’이라는 흥미로운 세 가지 악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국경과 세대를 넘나들다

서울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작곡가 류재준의 <진혼교향곡>(2007년)이 연주되는 5월29일 공연도 눈여겨볼 만하다. 낙소스 레이블로 발매된 그의 음반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세련된 음악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 정주영 회장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20세기라는 한 시대를 접으며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애쓰다 간 전(前) 세대에게 바치는 진혼곡이기도 하다. 

다양한 세대와 국적을 포괄하며 음악 속의 화합을 추구하는 다채로운 출연자 선정도 이번 음악제의 독특한 점이다. 5월22일 개막 공연을 장식한 무슬림의 바이올리니스트 무사하자예바와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실로아의 협연 무대도 특별했지만, 26일과 27일 금호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실내악 연주회에는 떠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세대의 음악가들과 아시아의 실력 있는 음악가들이 다수 출연해 관심을 모은다. 특히 27일 공연에서 독창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김소옥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실내악단 엠퍼러 트리오, 중국의 뛰어난 첼리스트 리웨이, 루빈슈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일본의 피아니스트 나오미 이와세의 앙상블 무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5일 금호아트홀에서 펼쳐지는 노라스와 고토니의 듀오 무대야말로 이번 음악제의 실내악 공연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훌륭한 지휘자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고토니와 실력파 첼리스트 노라스는 이번 공연에서 야나체크의 훌륭한 실내악 작품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동화>와 마르티누의 <첼로 소나타 제2번> 등 참신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실로 비범한 음악가들에 의한 비범한 프로그램이다.

클래식 음악의 죽음이 거론되고 있는 이 시대에 서울국제음악제의 새로운 시도는 다소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의 흥행 공식에 따른다면 스타급 연주자에 기대거나 우리 귀에 익숙한 곡목 선정이 필수적이겠지만, 서울국제음악제는 스타 연주자 중심이 아닌 실력 위주로 출연자를 선정하고 이 시대 청중에게 낯선 동시대 작품들을 포함한 과감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서울국제음악제의 과감한 시도는 과연 옛 음악의 반복 재생에 안주해 화석화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음악회 문화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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